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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공리셋 Feb 13. 2022

시댁 관례 도장깨기 1탄

남편 생일 파티는 네 가족이 하는 걸로

시댁 관례 깨부수기에 나섰다.

흔희 말하는 도장깨기의 특정 분야를 선정하는 것 까지는 똑같지만 당연하다 여겨온 불합리한 것들에 대한 깨부수기의 개념의 도장깨기라는 어휘를 빌려 써보았는데 비장함과 각오를 내포한듯한 어감이  맘에 든다 


우리 네 가족, 동서네 네 가족, 시부모님까지 열 가족이 생일파티를 한다.

결혼하고 12년 차이니 아이들이 희한하게도 두 명씩 같은 해에 태어나서 둘째들이 8세가 되니 7년째 10명의 생일파티를 열명이 모여서 해오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에는 식당을 나갈 수도 없었고, 결국 각자 집에서 했어야 했는데 두말하면 잔소리.

며느리들이 음식을 차려야만 했다.

솔직히 말하면 진짜 기억이 나지 않는 건지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건지 코로나가 터지기 몇 해 전부터는 식당을 이용하기 시작했다는 건 확실하다. 아마 그때도 비장하게 남편을 찔러서 그러자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코로나로 인해 에서 또 음식을 차려내야 하는 상황이 와버렸다.

3년째 코로나가 이어지면서 작년에는 동서가 본인의 생일상을 집에서 열명이 함께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나는 일 엄마라 낮에 도와줄 여력도 없었고, 불합리하다 느끼지만 가족 간의 일이라 딱히 나서서 목소리를 내기도 뭐했다.

아마도 도련님이 나선 것 같은데 하네마네 소리가 들려서 '이번 생일 파티는 조용히 넘어갈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는데 동서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형님, 저희 집에서 하기로 했어요"

"뭐? 동서 생일이잖아"

"그러게요... 어쩌겠어요, 식당에 열명이 들어갈 수가 없는데"

"그럼 네 가족이 단란하게 하면 되지!"

"그러자고 저희가 말씀드렸는데 아버님이 전화와 서는 섭섭해서 안된다고 하셔서..."

섭섭한 건 며느리 본인이 섭섭해야 하는 건데 이건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굳이 며느리 입장에서 말하자면 '시어머님이 한번쯤 며느리상 차려주시면 안 되나?'라는 생각을 했지만 형님인 나도 못해주는데 그냥 그렇게 하루 열식 구 먹고 헤어 나오게 되었다.

손님으로 가서 먹기도 미안하고 동서와 눈을 마주치기도 불편한 건 나만 그런 거였을까.

부엌에서 동서를 돕지만 나 또한 손님 모드였기에 마음이 불편했다.


3개월 뒤 내 생일이 되었다.

굳은 의지로 무작정 식당을 잡았다.

홍길동이 떠올랐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각자 테이블에서 남남처럼 앉아 밥을 먹게 되었다.

아이들 두 명 며느리 두 명해서 여섯 명이 한 테이블에서 먹고 시부모님과 남편들  한 테이블에 앉았다.

이 또한 아름다운 그림이 아니었지만, 시어머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게 해 드렸다. 

식후 다과상에 생일 케이크를 위해 우리 집으로 모였다.

열명 생일상 음식 한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까 딱히 다과상은 말할 거리가 되지 않았다.


그다음 타자는 우리 집 첫째 아이의 생일이었다.

위에서도 말했듯 낮시간에 휴가를 쓸 수도 있지만 사무실 상황상 그날은 쓸수도 없었기에 결국 누가 음식을 했을까? 육아를 하고 계신 나의 친정어머니가 외손자 생일상을 차려주시는 마음으로 10인분을 준비하셨다. 나물은 퇴근길에 사 오고 전은 주문하고 찰밥과 미역국은 친정어머니의 몫이었다. 

잡채는 양심상 엄마에게 하지 말라고 말하고 하루 전날 해놓고 출근했다가 퍼져서 못 먹는 사태가 벌어졌다.

퇴근길 시어머니와 통화하는데 왈,

"옆에 동서한테 도와달라고 하지"

"제가 시간이 안돼서 엄마가 도와주셨어요"

아무 말씀 없으셨다.

내 새끼 생일파티에 열명 파티하자고 모이는 리도 아니고, 물론 조카 생일도 함께 하려던 계획이라(두 녀석이 생일이 이틀밖에 차이 나지 않아서) 동서가 도와야 한다는 의미를 둘 수는 있었지만! 동병상련. 결론은 그렇게 또 해치웠다.

그동안 지 시간를 돌아보니 이의를 제기하거나 불만을 토할 도 없었다.

길들여지는 게 무섭다고 그냥 가족문화라 여기며 지나왔다.


다음 타자인 올해 첫 생일을 맞은 우리 남편의 생일 3일을 앞두고 있었다.

나는 최근에 퇴사를 했고, 삶이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두었던 불합리하다 생각 했던 것들을 하나씩 바로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내면의 갈등을 겪는 중이었다.

음식을 잘하지도 못하지만, 이제 퇴사해서 친정어머니 편안하게 해드리고자 하는 마음이었기에 손을 빌릴 생각이 더 강하게 없고보니 그냥 더욱 나에게는 생일상 차리는게 큰 일이다.

때마침 시어머니 전화가 걸려온다

"네, 어머니~"

"00이 생일 어쩔 거고?"

"뭐, 식당 알아봐야죠"

"애들 때문에 식당 가겠나?"

"그럼 어떡해요"

이미 시어머니 목소리가 별로인게 느껴진다.

"집에서 할 거면 갈비 들어온 거 있는데 가져다 하라고"


집에서 하라는 소리깉은데 싫음.

며느리가 둘에 열명이니 다섯 번을 생일상 차리는  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이었다.

사실 남편 생일이 있기 일주일 전 설 연휴에 열식 구가 4박 5일로 제주도를 다녀온 후라 여독이 채 풀리지 않은 상태였기에 더더욱 강한 반발이 들었다. 제주에 여행 간 게 아닌 열식 구가 북적이 집에서 밥해먹으러 간 거였기 때문에(딱히 식당을 갈 수도 없고, 실내여행지를 갈 수가 없었기에) 시댁 살이 후유증이 채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내면의 갈등을 겪으며 이렇게 결정 못하고 미루고만 있다 왠지 집에서 하게 될 것 같아 급하게 식당에 전화를 돌렸다.

서로 아는 척하면 안 되니 룸을 두 개 잡던지 아예 출입 불가인 식당이 대부분이었다.


며느리들 본인 생일상도 본인이 차려야 하는 마당에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코로나에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열명 생일파티 관례를 깨부수기로 마음먹었다.

"큰 형님이 간다!!, 동서야 기다려!!!" 멋지게 외쳐보고 싶었지만, 남편을 시켰다.


"코로나 언제 끝날지 모르겠고, 이번 생일은 모이지 말자고 말씀드려"

남편이 불편한 표정을 보인다.

"내 생일에 그럼 당신이 열명상 차려 줄 거야?"

... 불편한 표정과 계속해서 묵묵부답이다...

우리 남편만의 특징이다. 급작스런 제안에 생각이 필요하거나 판단이 서지 않을 때이다.

기다려줘야지 싶었다.

냉랭한 시간을 지나고 출근한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식당 예약?'

'내가 알아서 할게' 답변이 돌아왔다.

한참 후에 '내가 말했다' '응 알겠어' 그렇게 우린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퇴근한 남편의 얼굴 밝지 않았지만, 부모와의 관례를 깨는데 본인도 엄청난 용기를 냈을 거라는 생각에 별말하지 않고 일상처럼 대했다.

자세히 알고 싶지도 않았고, 남편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여겼기에 한 발짝 떨어져 지켜볼 뿐이었다.


남편의 생일 당일 아침 동서에게서 놀라움과 만감에 찬 목소리로 전화가 걸려왔다.

"형님, 진짜예요? 안 먹는 거?! 제 생일 때도 저희 남편이 그렇게 말했어도 아버님 소용없었거든요. 그런데 큰 아들 말은 먹히는군요!"

"어머님한테 말해서 최종판단과 결정은 시아버님이 하실 거라 진짜 생일인 오늘을 지나 봐야 이게 먹힌 건 줄 알 거 같으니 오늘을 지나보고 얘기하자"


우리 집안의 분위기였다.

군대랑 다를 바 없는 시아버님 아래로 부대장(시어머니), 행동대장(아들), 부대원들(며느리, 아이들)이 있었다.

부대장쯤 되는 시어머니께 통보를 했다는 남편의 말을 듣고 '아, 아직 끝난 일은 아니구나, 긴장은 놓지 말자'싶었는데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순간은 생일날이 지났기에 먹혔다는 게 확실해진 후 만감이 교차하면서 글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2주 뒤 시어머니의 칠순 생일이 기다리고 있다.

어른 두 분 생신상은 얼마든지 차리고 즐겁게 모일 수 있으나 

열명 생일파티에 열명 모이는 건 그만하는 걸로!


다음번 도장은 명절에 친정 가기!이다.

남들은 놀랜다.

"명절에 친정을 안가?"

"가긴 가지! 평소에"  

"아니! 명절에 말이야"


친정이 도보 15분 거리, 시댁이 차로 15분 거리이다.

친정을 명절에 굳이 가지 않아도 되는 이유라고 치면 이게 이유가 되어 버렸다.

물론 스스로 합리화시키고 설득시켜 본 결론이다.

남편이 가족회사라는 이유로 함께 연휴를 지내야 하고 그럼 그 연휴에 시아버님이 나서서 제주행 또는 가까운 여행지 티켓을 끊어버리신다. 갈래 말래? 가 아닌 어디 갈래?로 질문이 시작된다. 그럼 우리는 알아서 명절 연휴 전후로 친정을 들렀다 오면 되는 거다. 명절 제사를 지내고 여행을 갈 때에는 하루 이틀의 여유가 있었기에 그때 친정도 다녀오고 다했지만, 시댁에 명절 제사가 없어지면서 명절 연휴는 그냥 여행 일정처럼 되어버렸다. 코로나가 터지면서는 가까운 곳으로 집에서 모여서 노는 그냥 무조건 함께였어야 했다.

네 가족의 단란한 여행과는 차원이 다르다.

군대에서 단체여행 가는 기분으로 나서면 된다.

열명이 흩어지는 거 싫어하신다. 맥주 한잔의 여유도 아이들이 모래사장에 모래놀이를 하는 것도 열명이 움직이려면 자제해야 할 것들이 많다. 열명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게 원칙이라 자유일정이 없다고 생각하면 어떤 여행인지, 분위기는 알 거다.

나는 혼자 에너지를 채우는 사람인지라 렌터카 차키를 빌려서 차에 혼자 앉아 있다가 돌아가기도 했다. 여행지라기보다 조금 다른 곳에 가족들이 옮겨가 있는 느낌이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고 여행지에서 코드는 각자가  취향이 다른 거고 부부마저도 잘 안 맞는데 열 명의 취향이  존중될 수 없다는걸 깨달은 이후로 그랬다.

지금까지 한 시간 거리에 사는 친정 오빠네 가족을 명절에는 만나본적이 없기에, 새언니도 친정을 가야 하기에 친정 오빠네 보는 것에 의미를 두기보다 명절에 친정도 가야 한다는 것 도전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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