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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공리셋 Aug 19. 2020

여행이 피곤하다 느낄 때

나의 시간 네 시간

시부모님과 우리 네 가족 그리고 동서네까지 열 가족이 함께 제주도로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매일 보는 가족도 4박 5일 붙어 있으면 싸우고 힘든데...

그래서 학교 가고, 회사 가고, 유치원 가고 그리고 저녁에 만나는 게 현실인데!!


열식 구 여행 여정 4박 5일을 시부모님과 함께였으니 며느리는 즐겁기만 했을까?


휴가를 다녀와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모를 감정이 옛 일까지 끄집어 내게 만들어서 줄줄...

허걱! 브런치에서 내 글이 어디로 불려 간 건지 만뷰를 넘는 기록을 보였다.

그렇게 분노해서 쓴 글은 아니었는데 일기 쓰듯 막 써 내려가긴 했던 것 같다.


10년 차라 며느리 내공이 깊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득도(得道) 하지 못했음이 틀림없다...


사람이 한 가지가 미우면 다 미 워보이고, 한 가지가 예쁘면 다 예뻐 보이는 법.

미운 감정도 시간이 지나면 까먹는 법.


그래서 살아갈 수 있는 것.


제주에서 김해공항에 도착한 저녁시간 비행기 연착으로 인한 저녁 7시.

마지막으로 식당에 가서 저녁을 나눠먹고 헤어지자 하신다.

뭐 늘 당연한 코스인지라 이제는 그러려니...


'내일 출근인데...'

'피곤하니 그만 헤어지고 각자 대충 먹을 법도 한데...'

'아이들꺼까지 풀어야할 짐도 산더미인데...'

'밥 먹는 거보다 쉬는 게 더 좋은데...'


언제나 기대치에 불과했다.

저녁 6시든 7시든 8시든 도착시간이 언제이든 예외는 없었다.

오후 서너 시에 도착하는 날은! 헤어졌다 다시 만나 저녁을 먹곤 했다.


끼니는 절대 거르면 안 되었고!

남기더라도 풍족하게 시켜 먹어야 하며!

열 가족이 모두 잘 먹어야 하기에 이탈은 없다!


 군대가 따로 없다...


군인이 있어야 군대가 존재하는 거다.

전쟁을 선포할만한 용기 있고 패기 있는 군인이 없었다.

남편과 도련님 시어머님은 가끔, 아주 가끔 "오늘은 그냥 각자 집에 가서 먹읍시다!"라는 말을 던지는데 우리 남편은 "간단히 빨리 먹고 헤어집시다!"라고 해서 '이 사람 왜 이러지?....' 집에 가서 시비를 걸었다.


시아버님의 찢어지게 가난하던 시절 돈이 없어 굶어도 보셨고, 자식들 굶는 건 안되니 어머님이 쌀 동냥도 해보셨다는 말을 들은 이후로 본인은 물론이고 자식들 끼니까지 집착하시게 된 사실을 알고 나서는...

그제야 나도 조금씩 내려놓게 되었다.

이렇게 이 집안의 며느리가 되어가나 보다 생각했다.

완전한 왜군이었던 내가 아군이 되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어머님, 아버님 죄송한데요... 오늘 갑자기 서울에서 친구가 내려와서 저녁을 같이 먹으러 가야 돼가지고요..."

"아.. 그래?"

"네, 저만 좀 빠질게요"

"알았다"


하지만 10년 차 며느리의 오늘 저녁은 달랐다.

나 대신 아이들과 남편만 남겨두고 나만 빠지겠다는 소심한 반란의 계획을 짰다.

포기가 안 되는 예외도 있는 거다.

여름휴가차 친정에 내려온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여테까지 아이들이 어려서도 남편에게 떠넘길 생각을 아예 하지 못했고, 어느 집단이나 세뇌가 무섭듯 당연히 묶인 일정으로 생각했기에 다른 어떠한 외부의 방해 요인이 들어와도 스스로 걸러냈다.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이고 싶은 시아버님의 마음을 알게된 이후로는 더더욱 그래왔다.


서울로 시집가서 명절이라고, 여름휴가라고 친정 내려왔다 만나자 연락이 와도, 열 가족이 여행지에 가 있거나 꽉 채워 시댁과 함께의 일정이 잡혀있다 보니 여러 가지 이유로

"이번에도 안될 것 같아..."

.

.

.

늘 안되었다.


나도 여행 좋아했다.

처음 시집왔을 때 연휴만 생기면 시부모님이 여행을 계획하시길래, '난 참 복이 많아' 이 말도 안 되는 그 프레임에서 즐겼던 기억이 난다.

아이 없이 남편과 나, 시부모님과 도련님까지 다섯 식구 사이에서는 여행지를 누릴 만도 했었기에...


하지만 임신과 출산을 거치며 생긴 아이들로 인해 어느 순간부터 여행은 행군이 되었다.

군대를 안 가봐서 행군이 얼마나 힘든지 잘은 모르겠지만 듣은 바 느낌은 안다.

젖병에 기저귀 챙겨서 떠난 비행기 안에서 밤새 우는 아이 안고 달랜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고,

무더운 날씨에 아기띠 메고 걸어 다닌 날은 어디를 간 건지 모르고 지나치는 장소도 많았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시어머님, 남편 등 아군들의 소심한 반란이 종종 있었지만 소용없이 깨지고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30년째 한 가지 사업을 일구신 아버님만의 강단에는 안 보이는 뼈대가 있으시리라...


효부라고 스스로 자칭하고 사는 이 며느리는 또 포기가 빨랐기에 지금까지 이렇게 살고 있다.


여름 휴가지에서의 일정은 4박 5일이었지만 마지막 날 저녁 일탈후 오랜 친구들과의 단 네 시간 수다타임.

그 시간의 마무리가 아니었으면 여름휴가를 보냈다고 생각지 못하고 지났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사촌들이랑 너무 잘 놀아 "엄마~"소리 백번 듣지 않아서 분명! 편했던 거는 같은데...

그. 런. 데

알 수 없는 더 피곤함...

4박 5일 여정 중에 차 안에서, 화장실 안에서, 방 안에서 나름의 혼자이고 싶은 시간을 확보해가며 지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피곤하다 느끼는 건 겪어본 사람만이 알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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