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공리셋 Aug 28. 2020

나를 닮은 딸, 너는 커서 말이지!

아이의 미래를 내 맘대로 결정짓지 않아요.

여기까지인가?

내 생각의 한계가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한계를 규정짓고 있진 않은지에 대한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마음을 나누면 이야기가 통하는 친한 언니가 있다.

마음결이 비슷하고, 둘 다 아이를 키우고 있으니, 공통 관심사가 육아이기도 하다.


"쟤를 보면 꼭 나 같아, 으휴.."

"나도 우리 둘째를 보면 꼭 나 같단 말이야... 으휴"

여기서 '으휴'는 맘에 안 드는 구석을 똑같이 닮았다는 말일 것이다.


언니는 피아니스트.

나는 공감 잘하는 일반 회사원.


"왜?"

"아니 며칠 전에 지 친구랑 트러블이 있었는데, 곱씹으며 마음 아파하는 거야! 

그 감정의 고리를 끊어버리려고 내가 엄청 애쓰는데 두고두고 한 번씩 끄집어내서 또 말하고 또 말하고 해...

그게 스스로를 얼마나 힘들게 하는데..."

"그 감정을 정리하는 게 힘들어서 그런가? 잘은 모르겠지만 음악 하는 언니 유전자 아니야?(하하)"

"그래서 더 속상한 거지! 나도 많이 힘들었거든. 우리 엄마는 먹고살기 바빠서 내 그런 감정 읽어줄 시간이 어딨었겠어? 근데 쟤는 내 어릴 적 모습이 보이니까 그 힘들었던 감정을 끊어주려고 타일러도 보고 혼내도 보는데 안 변해! 보고 있으면 속상하고 답답하고 그래..."

"그게 단점이자 강점이라면 결국 예술가 기질인데? oo이도 언니처럼 음악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유전자 무시 못하지만! 아이의 미래를 규정지어버린다는 게... 그러게다... 에휴"



나도 그랬다.

우리 둘째 딸, 볼수록 나의 판박이였다.

어쩜 외모만 아빠지 기질이며 성격이 그렇게도 나를 닮았는지.

나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느낄 정도였다.


아이 네 살 때 엘사 공주옷을 입고 어린이집에 등원한 적이 있었는데, 하원하고 나오면서 갑자기 멈추더니 엘사 공주옷을 가리고 있던 점퍼를 막 역어달라고 요구를 하는 거였다.

'얘가 갑자기 왜 이러지?'생각하며 요구대로 점퍼를 열어 주었다.


늘 하원후 향하던 놀이터.

이웃집 아이 엄마들이 앉아있는 곳을 향한다.

물론 엄마가 그곳을 갈 거라는 것을 알기에 가나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 앞을 이유 없이 서성인다.

누군가 빠르게 눈치채고 "아이고! oo이 엘사 공주옷 입었네?! 이쁘다" 그 말에 입이 함박이다.

그때서야 비로소 원하는 것을 얻은 듯 미끄럼틀로 뛰어갔다.

다른 엄마들이 박장대소를 하고 웃었지만, 나였다...


늘 이쁨을 독차지받고 싶었던 욕심쟁이!


감정이 바로 행동으로 나타난다.

'여자아이라서 그런가, 눈치 빠른 둘째라서 그런가'라고 생각했는데

볼수록 타고난 예민한 기질이 보였다.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에 조용히 눈물을 닦는다.

즐거운 음악에 흥이 넘쳐 박자를 타며 몸을 흔든다.

엄마가 울면 옆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린다.


감정선이 유난히도 예민했던 그래서 다치기도 많이 했던 나!


'oo 이는 엄마만큼이나 예민하구나.

딸아, 예민해서 좋은 거보다 힘든 게 더 많던데...

예민한 감정을 다루는 방법 중에 하나가 어떤 하나에 몰입해 보는 거더라.

무언가에 몰입하면 네가 밖을 향하는 시선이 조금 차단돼서 편해질 거거든...

그래서 너를 위해서 엄마가 생각한 게 있는데

악기를 배우자! 음악가가 되든 뮤지션이 되든.

음...

노래 부르는 거 좋아하고, 춤추는 거 좋아하니까 뮤지컬 배우도 좋겠다.

음...

발레리나도 이쁘더라.


예체능이라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엄마의 머릿속에 생각해낸 그 몇 가지.


이런 생각을 해봤다는 말을 언니에게 했다가 아주 혼이 났다.

"네가 그렇게 생각을 함과 동시에!

아이의 미래를 정해버리는 거야!

부모가 생각하고 판단해서 결정해버린 무의식 중의 행동들이 아마 아이의 미래를 그리고 끌고 가버릴지도 모른다는 거지! 전혀 다른 뛰어난 강점이 잠재되어 있는 아이일 수도 있는데 말이야..."


아차! 했다.

'내 생각의 한계와 순간 판단의 오류가 아이의 미래를 이렇게 단정 지어버릴 수도 있겠구나'


다시 지우개로 지워버렸다.


깨.끗.하.게
















작가의 이전글 여행이 피곤하다 느낄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