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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공리셋 Aug 30. 2020

AI니가 뭔데 내 일을 대신해?!

무기력함이 밀려왔다

'나는 입사한 지 10년이 됐고, 너는 고작 이병원에 들어온 지 3개월도 안됐는데 나보다 일을 더 잘한다고??!!!'

'뭐, 너는 10년 치 내가 쌓아놓은 데이터를 거저먹고 시작했으니까 그럴 만도 하겠다!!!'


나는 음성을 듣고 typing을 쳐서 문서화시키는 일을 한다.

제삼자가 보면 단순 타이핑 작업이라 비칠지도 모르겠지만  이 일을 하기 위해 대학에서 해부학을 공부했고, 의학용어를 외웠고, 환자기록을 보면 바로 이해할 수 있을 만큼 그렇게 나는 보건의료에 대한 지식을 쌓아서 사회에 나왔다.


10년 전 00 대학병원 영상의학과에 입사했다.


나는 환자의 MRI, CT 등의 image를 보고 판독 의사들이 녹음을 하면 녹음된 음성을 듣고 typing 하는 과정을 통해 문서화시키는 업무를 한다.

판독문(환자기록)이 완성되는 과정의 일이다.

교수님이며 전공의들과 소통하며 입사이래 내 나름의 노하우로 이제는 바쁜 의사들이 대충 말해도 알아들을 만큼의 나만의 데이터가 쌓여 숙련된 일꾼이 되었다.


10년 전 내가 입사한 첫날, 나에게는 한참 높으신 연령도 지긋하신 한 선생님께서 했던 말이 생각났다.

"이 일이 10년 뒤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혹시... 내가 하는 말 무슨 말인지 알아요?"


'이 분은 지금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걸까?'

'다른 미래를 미리 준비하라고 말하고 싶으신 걸까?'

'... 나 오늘 처음 출근했는데? 내가 맘에 안 드시나? '

'그럼 지금 저를 왜 채용한 겁니까?!'라고 반문할 밥그릇은 안되고!

딱 그 순간만 귀담아듣고 흘려버렸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10년이란 시간을 일할 수 있었을까?'

아마 벌써 퇴사했겠지 싶다.


어느 날 우연히 평소와 다름없이 판독의를 만나러 영상의학과 회의실을 지나는데 외부 업체 사람들과 일부 관계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게 보였다.

며칠 전 중간관리자 선생님으로부터 음성인식 프로그램 도입할 회사가 설명하러 한번 병원에 들를 거라는 얘기를 들은 후였다.

'설마... 그건가?'

기분이 묘했다.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에이, 뭐 설명만 하고 안 할 수도 있지 뭐...'

그런데 계속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진짜 도입되는 건가? 그럼 나는? 나 잘리는 거야?'

.

.

.

며칠 뒤 중간관리자 선생님께서 우리 사무실에 연락이 왔다.

'올 것이 왔구나...'

음성인식 프로그램이 테스트로 3대가 세분 교수님 컴퓨터에 들어올 것이고, 만족해하면 아마 차츰 늘려나갈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교수님들이 그 프로그램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할 테고 바쁜 교수님들이 과연 만족해하실지는 해봐야 알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다.


이미 오래전부터 타 병원의 실패사례 및 만족도에 대한 나쁜 내용으로 소문만 무성했기에 나 또한 도입에 대한 현실화를 반신반의하며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에 대해서는 주사위가 던져졌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체감하는 나의 업무는 확실히 줄어들고 있었다.

교수님들도 곧잘 적응하시며 사용하신다는 긍정적인 말도 들렸다.

점점 무기력해짐을 느꼈다.

'내가 출근을 하는 게 무슨 의미일까?'라는 생각까지 들기 시작했다.

그 부정적인 생각은 나를 계속해서 괴롭혔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지나며 회사를 출퇴근하는 어느 날 아침,

이런 엄마의 마음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울며불며 엄마 따라간다는 둘째가 유난히도 눈에 들어왔다.

'그래 맞아, 나 두 아이의 엄마지?'

내년이면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는 우리 큰 아이.

아직 입학하려면 6개월이나 남았지만 쉬고 싶어 졌다.


겪. 하. 게. 그리고 빠. 르. 게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회사가 아닌 집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엄마의 역할만 자처하고 있다.

남아있는 다른 선생님들에게 소식을 듣는데 이제 거의 메인 업무는 AI에게 다 빼앗긴 듯 보였다.

내 강한 자존심이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했고 시간이 흘러 지금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인데 받아들이기가 참 힘이 든다.

생각 한 끗 차이겠지만 내 머릿속은 늘 롤러코스터를 탄다.


'돌아갈 것인가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인가 그곳으로?'

'지금이 너에게는 더 너다운 일을 찾으라고 기회를 준거 인지도 몰라'

'나 창업해볼까?'

'나는 뭘 잘하지? 나는 무엇을 좋아하지?'

.

.

.

격변의 시대에 또 빠르게 적응해가는 게 사람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하지만 달라진 현실 앞에 또 한없이 작아지는 게 사람이기도 하다.

큰 그림을 그려보고 내 마음을 다 잡아야 할 시간임이 틀림없다.


나는 지금 AI에게 밀려 나의 10년 치 노하우와 데이터를 날려버리는 쓴 맛을 봤지만, 그렇다고 내가 날아가 버린 건 아니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나'라는 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AI보다 더 뛰어난 능력치를 가지고 있으니까.

'교수님' 음성인식 프로그램이 불편하지는 않으세요? 제가 그 부분을 해결해 드릴게요' 나는 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할 수 있는 AI가 절대 가질 수 없다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해야 할 것들은 AI에게 넘겨주고, AI를 어떻게 하면 더 잘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사고를 하고 융합해가는 능력치에  좀 더 집중해야 할 시간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비겁하게 피하지 말고 그렇게 나다움으로 무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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