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공리셋 Sep 13. 2020

아침 9시의 바깥 풍경

나에게 특권을 선물해준 AI씨

너무 행복했다.

엄마인 내가 아이들의 손을 잡고 어린이집에 등원할 수 있는 이 시간이.


7시 30분 묵묵히 집을 빠져나와 귀에 이어폰을 끼고 탔던 엘리베이터가

새로운 공간으로 느껴진다.


우리 두 녀석들이 노래를 부르고, 엘리베이터 난간에 매달리고 장난치는 모습에

이유 없이 웃음이 지어진다.

휴대폰을 꺼내 사진도 찰칵찰칵.

너무도 특별한 순간이다.


"얘들아, 엄마 차 타지 말고 걸어갈까?"

"우와~신난다~"


아침마다 아빠 차에 이끌려 어린이집에 등원해야 했던 아이들은

올레를 외치고 있었다.


그렇게 두 녀석 손을 잡고 아파트 주차장 밖으로 걸어 나왔는데,

'이건 또 무슨 그림이야?'


아침 9시의 바깥 풍경은 내가 알고 있던 아침 7시 30분의 바깥 풍경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길가에는 노란 버스와 승합차들이 줄지어 서있고,

창 밖으로 손 흔들어 주는 엄마들이 삼삼오오 모여있고,

엄마나 아빠의 손을 잡고 줄 서 있는 모습들은 지금까지 전혀 보지 못한 장면들이었다.


걸음을 늦추고 신기하듯 바라보는 나에게 둘째 녀석이 말을 건넨다.

"엄마, 우리 ooo어린이집에도 노랑 뻐쓰 있어요!"

"아~그래?!"

'엄마가 노란 버스를 너무 신기하게 쳐다보는 듯 보였구나!, 엄마는 여테껏 누려보지 못한 지금 이 순간이 특별할 뿐인 거야'


바로 뒤돌아서 오빠와 장난치며 앞서 뛰어간다.

가게에는 장사를 시작하려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고,

지나는 차량들은 온통 노란색이고,

내가 가는 걸음걸음 밟히는 낙엽들은 오늘따라 색깔이 참으로도 곱다.

'아, 맞다... 지금 가을이지?'

아이들은 엄마의 시선을 놓치지 않고 있었는지 어디서 예쁜 낙엽들을 주워다 엄마에게 건넨다.

귀찮을 만큼이나 주워다 계속 엄마 호주머니에 넣고 가기를 반복한다.

아빠와 등원했던...

아빠 출근시간 늦을세라, 엄마만큼이나 바쁘게 지내온 너희들이라 길가에 낙엽 줍는 지금이 너희 또한 특별하겠구나...


가을을 느낄 새도 없이 오갔던 일터에서 벗어나


조금 다른 시간에

조금 다른 길을 따라

조금 다른 방향으로


그렇게 나의 삶도 조금 다른 그림을 그려 볼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은 것 같아서 즐겁다.

고맙다 AI씨.


새로운 걸 시도하려 할 때마다 어떤 롤러코스터와 같은 일들이 벌어질지 모를 두려움에 그 시간 안에 지금 계속 머물러있다.

머물러만 있을뿐 시간은 잘도 흐른다.


큰 풍파 없이 사는 게 목적이고 지극히 안정적인걸 추구하는 '나'라서, 일터에서도 가정에서도 그렇게 살아왔는데 그렇게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뭔가 허무하다...


대학전공부터 꽤 많은 시간을 들였던 나의 일을 AI가 빼앗아 갔다고 생각하니 공허함이 너무 던것 같다.


그렇게 잠시 뒷갈음쳐서 빠져 나온 지금의 시간은 다른 방식으로 살아보기 하고 일상을 지내고 있다.


'AI 너 좀 똑똑하다며?이런 나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상담해 줄 수 없니?!

너의 취약점을 구지 내가 콕 찝어서 이렇게 지적질하고 싶었다!쳇'

작가의 이전글 AI니가 뭔데 내 일을 대신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