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냉국만 보면 마음이 쓰린 이유

요리젬뱅새댁

by 사공리셋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진정한 지인이자 가족이 되어가는 집들이 의식.

못한 뒷이야기를 푸는 조금은 가까워지는 듯한 그런 자리.

친구들을 초대하는 집들이는 마냥 즐겁다.


시댁 친인척의 집들이.

많은 친인척들이 가까운 곳에 옹기종기 모여 살다 보니 자연스레 시댁 어른들만 초대할 것을 어른들의 뜻에 따라 숟가락만 더 얹히면 된다는 그 뜻에 따라...

또 서른 명이 되었다.


사람들을 초대해서 간단히 한 끼 음식을 차려내는 게 보통 일이 아님은 틀림없다.

더구나 친하거나 편하지 않은 사람들을 상대로 '요리젬뱅새댁' 타이틀을 스스로 부여하고 사는 나로서는 마음 부담만 백배였다.


'어떻게 되겠지, 하면 다된다' 막무가내 정신과 이럴 때만 세상 누구보다 친한 나의 절친이자 정신적 지주인 엄마가 계시니 겁나지 않았다.


우린 6월에 결혼을 했다.

여름에 결혼을 하고 보니 집들이도 한여름에 치러질 수밖에 없었다.

집들이를 하기로 한 날 일주일 전부터 일하는 틈틈이 인터넷을 서치 하면서 메뉴를 정하고, 레시피를 찾고, 장 봐야 할 재료들을 메모했다.


더운 여름 뜨거운 국을 대신할 메뉴로 오이냉국! 을 정했다.

엄마가 해주시던 한여름의 시원한 오이냉국을 떠올리면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아지던 메뉴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마음이 쓰릴뿐이다.


집들이 당일 아침 남편은 대청소를! 나는 부엌으로! 우리는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따르릉~

"네 어머니~도와주실 것 없어요~괜찮아요~"

걱정하시는 시어머님의 전화에 괜찮다는 말만 남발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미 친정엄마가 해다 준 나물반찬이 냉장고에 들어 있었고, 연필 쥐고 공부한 레시피가 내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었던 덕분이었다.


초대한 시간이 다되어가자 시어머님을 비롯하여 한 명, 두 명... 벨을 누르기 시작했다.

조금 일찍 오신 분들은 부엌을 드나들며 음식을 날리고 세팅을 도와주셨다.

그 타이밍에 나는 한쪽 구석에서 서서 오이냉국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미 오이 수어 개를 손수 채 썰어둔 덕에 상큼한 맛을 낸 물에다 얼음만 동동 띄우면 될 일이었다.


오이를 한가득한 채 썰어둔 대형 볼에 물을 따르고 간장, 식초, 설탕......

그런데 맛이 이상했다.

분명히 레시피대로 했는데 맛이 너무 이상했다.

'아... 이거 왜 이렇지? 뭐가 부족한 건지, 뭐가 과한 건지 감도 없다...'


"어머니, 이거 맛 좀 봐주세요"

첫맛에 인상 쓰시며

"이거 뭐 넣었노?"

"그냥 레시피대로 넣었는데.... 요"

"이거 못 먹는다, 버려라!"

"네????????"

"버려라" 버리시려는 제스처를 취하시려다 볼안에서 산더미 같이 쌓인 오이들이 울고 있는 게 눈에 보이신 건지, 그냥 구석에 놓아두고 돌아서버리신다.

당황하며 서 있는 나와, 어머님의 버리라는 말을 들으신 친인척들이 "왜?""무슨 일인데?""내가 한번 보자" 한 마디씩 건네심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못 먹는다!"로 대처하실 뿐이었다.


"못 먹는다! 됐다"는 말은 '살려낼 수도 없고 복구할 수 도 없을 만큼 형편없다'라는 말로 재해석되어 내 가슴에 비수처럼 꽂히고 있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내 감정에 이름을 붙인다.

가.슴.아.프.다


이 감정이 왜 생겼는지 생각해본다.

외면당한 산더미같이 쌓인 오이채가 마치 나의 수고로움까지 내팽개쳐진 느낌 때문에.

그동안 열심히 준비해온 과정이 오이냉채 하나로 큰 구멍이 생겨버렸다는 느낌 때문에.


내 마음이 원하는 건 무엇이었을까.

오이냉채가 아름답게 복구되었더라면.

복구되지 못할 만큼 형편없는 음식일지라도 수고로움마저 내팽개치지 않을 정도의 시어머님의 한마디 위로가 함께였었더라면.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 게 나를 위해 좋을까.

그때는 왜 그렇게도 다 잘하고 싶었던지 모르겠다.

그저 어른들께 칭찬받고 싶은 1-2년 차 새댁의 마음은 비슷했을 것이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맛없는 음식은 고스란히 남아 음식쓰레기가 되는 것을 보면서 성의가 중요한 게 아니라 맛이 중요하다는 그 당연한 사실을 직접 경험해보고 나서야 알았다.

시어머님이 오이냉채 갔다 버리라고 한 게 나한테 뭐라 한 것도 아니다.

맛이 형편없어 복구하기도 힘들다는 사실을 알려주셨을 뿐! 오이냉채와 나를 연결시키지 말자.

나의 수고로움은 내가 알아봐 주면 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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