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하지 말고, 그냥 기록하세요.

갈피를 못 잡는 마음이 회복되는 ‘기록의 힘’

by 안세정

감사일기를 펼치고 날짜를 쓰다가, 2025를 적었다가 ‘맞다, 2026년이지?’하며 다시 지웠다.

이제 겨우 2025년이 적응이 된 것 같은데, 2026년이라니, 여전히 낯설고 어색하다.

어찌 보면, 달력 한 장 바뀌었을 뿐인데, 마음 한쪽의 미세한 떨림은 좀처럼 가시지 않는 듯하다.

기대인지, 두려움인지, 설렘인지 모를 진동이 가슴 깊은 곳을 가볍게 건드리고, 생각들은 느슨하게 풀렸다가 다시 조여 오기를 반복한다.


며칠째 마음이 정돈되지 않았다.

해야 할 일들은 많지만, 궁극적으로 내 삶의 목표를 산뜻하게 세워 그에 준하는 과정을 만들어가는데 여전히 혼란스러운 감정이 밀려왔다.

머릿속은 마치 온종일 소음 속에 분주한 도시처럼, 이유 없는 무거움이 어깨를 오래 붙잡고 있었다.


말하기도 싫고, 설명할 힘도 없고, 그냥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만 싶은 날들.

그럴 때마다 나는 늘 같은 자리로 돌아간다. 어떻게 할까? 무엇을 할까? 무엇이 내 마음이지? 등등의 해석을 멈추고,

그저 가만히 펜을 쥐고 쓰기 시작한다. 말이 아니어도 되고, 문장이 완성되지 않아도 되고, 심지어 설명조차 필요하지 않다.


그저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옮겨놓는 기록을 한다. 뜻밖에도 그 가장 단순한 행위자체가 나를 차분하게 해 준다.

생각의 생각 속에 빠져들기보다, 지금 내 상태와 감각부터 그대로 적다 보면 흩어졌던 마음들이 조금씩 모아지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이 약해지면 본능적으로 ‘왜 그런지’를 먼저 따지려 한다.

‘왜 이렇게 초조하지?’, ‘왜 아무것도 하기 싫지?’, ‘왜 자꾸 비교하지?’, ‘왜 이렇게 마음이 모자란 것처럼 느껴질까?’ 등등....

하지만 이런 질문들은 오히려 상처 난 마음을 더 깊이 파고드는 칼날이 되어 나를 더 작아지게 하거나 자책하게 하는 경우가 더 많다.

나 역시 이런 치열한 고민과 고뇌 속에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진정한 회복’은 분석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봐주는 것이라는 걸 말이다. 그 기록은 아주 단순하다.

‘오늘, 마음이 조금 무겁다.’

‘숨을 깊게 쉬었는데도 가슴이 조여 온다.’

‘아침 햇살이 따뜻했는데, 몸은 따라주지 않았다.’

‘조용한데도 머릿속은 소란스럽다.’


이게 끝이다. 해석도, 의미도, 결론도 없다.

그저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적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마음에 기력이 없을 때, 이성적 사고나 ‘생각’은 도리어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정서가 흩어져 있을 때는 인지적 처리가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때 필요한 것은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생각보다 앞서 있는 감각을 기록하며 마음을 붙잡는 게 더 중요하다.


이건 영적인 일과도 닮아 있다. 나는 마음이 흐려질 때마다, 자연스럽게 ‘기도’와 ‘침묵’으로 들어간다.

누군가의 목소리도 최소한으로 줄이고, 전화도 받지 않고, sns도 하지 않고, 내면의 진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멈추고, 가만히 머무르는 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감각해 보는 것이다.


오늘 아침, 창가에 조용히 다가가 커튼을 열고 환-한 햇살이 내 얼굴과 몸을 감싸는 것을 느끼며 가만히 누워 있었다.

주어진 일들 속에 오래 분주했던 내 몸과 여러 가지 상황, 뜻밖의 사건들로 상처 난 마음들이 그 환한 빛으로 깊이 치유되는 듯했다.

엄청난 감사가 밀려왔다. 그야말로, 돈으로 살 수 없는 평안함이었다. [Lk 8:50, NIV] Hearing this, Jesus said to Jairus, "Don't be afraid; just believe, and she will be healed." 꽤 오래 멈춰서 그 빛의 기운을 받고 가만히 있다가, 일어났는데 문득 존경하는 한 어르신으로부터 건네받았던 오래된 영문 신약성경을 펼쳐보게 되었다.

펼친 그곳에, 위와 같은 말씀을 발견한 것이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해라, 그러면 너의 딸은 나을 것이다....

열두 살 딸이 죽어가고 있어 예수님을 찾아간 회당장 야이로에게 집에서 한 사람이 와서 딸이 이미 죽었으니 더 이상 예수님을 괴롭히지 말라는 이야기를 전했을 때,

예수님은 두려워 떨고 있는 야이로에게 말씀하신다. "두려워하지 마, 그냥 믿기만 해. 그러면, 너의 딸은 낫는단다...." 이 한 구절의 말씀을 보며, 딸이 죽을까 봐 떨고 있는 야이로와 죽어가고 있는 딸을 상상해 보았다.

때때로 나도 이 야이로처럼 얼마나 자주 주어진 현재와 미래 사이에서 골몰하며 떨고 있나.

그리고 또 곧 죽을 것처럼 누운 딸의 모습 또한 마치 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이렇게, 지금 나에게 딱 맞는 성경말씀이 왔을까 소름이 돋을 정도로 신기했다.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세요! 여러분은 믿기만 하면 됩니다. 여러분이 믿는 그대로 현실은 이뤄집니다!”


최근 수많은 자기 계발 유튜브 영상에서 하는 말과 이 성경말씀이 일맥상통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느적느적 나를 바라보며 기록하니 그 기록이 나의 마음을 정렬시키고, 직관이 살아 움직여 순간적으로 뜻밖에 행동으로 연결되고

그것으로 하여금 내가 믿는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말씀하시려는 흐름이 어디에 있는지 확실히 알게 되는 경험.

앞으로 이러한 일들이 쌓여가겠구나 생각하니 파도치던 마음의 호수가 잔잔해졌다.


감각 기록이 쌓이면 ‘진짜 방향’이 드러난다.

사람들은 방향을 먼저 찾으려고 하고 기록은 나중에 하려 한다. 하지만 흐름은 그 반대다.

우선 현재의 나를 기록하고, 정리한 후에,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맞다. 단번에, 목표를 설정하고 방향을 잡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기록- 정리- 방향


감각 기록을 쌓아놓으면 나도 모르게 패턴이 보인다.

내가 언제 마음이 탁해지는지, 무엇이 나를 지치게 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호흡이 편안해지는지, 무엇을 할 때 기도가 더 깊어지는지,

무엇을 할 때 내 영혼과 마음이 밝아지는지 이 작은 신호들이 새해의 ‘큰 그림’을 향한 방향이 된다.

그래서 나는 요즘, 계획을 억지로 세우기보다 기록에서 올라오는 흐름을 조용히 따라가고 있다.


오늘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해석보다 기록이다.

오늘, 특별한 문장이 필요하지 않다. 이렇게만 써도 충분하다.

‘지금 나는… 이렇게 흔들리고 있다.’

‘오늘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지금 내 마음이 머무는 자리를 보고 있다.’

이 기록들은 앞으로의 기도가 되고, 삶의 방향이 되고, 하나님께서 이어 주시는 길의 조용한 안내가 된다.

우리는 결국, 해석 없이 적어 내려간 문장들 속에서 상처가 가라앉고 마음의 결이 선명해지고 새해를 살아낼 힘을 얻게 된다.

쓰다 보면, 정말로 나만의 길이 보이고 , 그렇게 단단히 살아가게 된다.


중학생 둘째 딸이 아이폰으로 만들어준 나의 미모티콘^^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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