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하찮은 루틴이 나를 살렸다.

마음이 무너졌을 때, 나를 살린 건 하찮은 루틴이었다.

by 안썬


어느 날, 유튜브에서 행주를 깨끗하게 소독하고 빠는 법이라는 짧은 영상을 보게 됐다.

과탄산소다와 쓰다 남은 비누조각을 물에 넣고 행주를 밤새 넣어 놓는 것.

그다음 날 물로 헹구면 행주가 깨끗하게 소독되는 것이다.

별 뜻 없이 따라 해 봤다.


그런데 깨끗하게 헹궈진 행주에서 나는 은은한 빨래냄새가 기분을 묘하게 가볍게 만들어 주었다.

별거 아니지만 내가 살림에 정성을 쏟은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 무렵 나는 심리상담을 받고 있었다.

마음에도 몸에도 힘이 없어 한껏 가라앉았었다.

계획도, 목표도 다 의미 없게 느껴지고 내가 중요시한 가치들에 배신당한 느낌마저 들던 시기였다.


그즈음 상담 선생님이 내게 말했었다.

"지금은 뭘 잘하려고 하지 말고, 힘 빼고 작고 단순한걸 하나 정해서 해보세요."

그 말 끝에 남은 공백에 우연히 떠오른 게 바로 행주 삘기였었던 것 같다.


너무 사소해서 부담이 없었지만, 이걸 루틴으로 정하고 매일 하다 보니

내가 정한 것을 오늘도 해내었다는 생각에 '오늘은 좀 더 신경 쓴 하루', '나에게 덜 죄책감 느껴지는 하루'가 됐다.


다음날, 그다음 날도 행주 빨기 루틴은 계속되었는데

무언가를 정리하며 마음도 회복되니 주변을 좀 더 살필 여력이 생겼다.

행주에서 시작된 루틴이 싱크대, 식탁 정리까지 할 힘을 만들어 주었다.


밤에는 억지로 감사일기를 써나갔다.

이 또한 내 마음의 회복을 위해 정해서 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시기 '이 세상 누구보다 내가 불행하다 느꼈던 나'는 아무리 애써도 감사한 것 한 줄 적기 힘들었다.

어느 날은 감사하지 않은데 그냥 적었고, 어느 날은 그냥 일상의 하는 일을 적고 감사하다고 기계처럼 적기도 하였다.

매일매일 반복하다 보니, 신기하게 억지로 적었던 감사했던 그 한 줄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날이 있었다.

'아, 이게 당연한 게 아니지. 감사한 거지.'라고 느끼게 되는 날이 있었고 그런 날이 반복되니

하루에 감사한 일 네, 다섯 개 정도 찾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일상에서 감사한 일을 잘 찾게 되면서 내 마음도 점점 회복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글을 적다 보니 쌓인 글들이 매일 무엇을 해냈구나라는 자신감을 얻게 해 주었고, 이어서 글쓰기 루틴까지도 확장되었다.

지금은 이렇게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고 있다.


마음이 힘들던 시기 했던 루틴들은

사실 누구에게 보여줄 만큼 대단한 것도 아니었고, 루틴이라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만만한 거지만

그렇게 하찮기 때문에 체력도 마음력도 가장 약했던 시기의 '나'조차도 지킬 수 있었다.

매일의 루틴을 지킬 수 있었기에 내가 나를 다시 믿는 마음이 생겼고 그 마음이 나를 살렸던 것 같다.


요즘은 그때보다 하루를 더 구조화해서 살고 있다.

챗 지피티와 노션을 도구삼아 회복을 넘어, 성장까지 가능하게 하는

실행가능한 루틴 설계를 실험하고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작게, 그러나 끊이지 않게 이어가는 것. 그것이 나에겐 가장 중요하고 큰 변화였다.


마음이 무너졌던 시기. 하찮은 루틴이 나를 붙잡아 줬다.

그리고 지금은, 그 작고 단단한 루틴들이 나를 조금 더 앞으로 끌어가고 있다.



작지만 계속할 수 있는 루틴이

오늘의 나를, 내일의 나를 지켜줄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오늘에도 그런 작고 단단한 루틴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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