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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스텔라 Oct 09. 2020

신생아보다 빨리 자라는 남자

남편은 그날을 돌아보며 두고두고 반성했다.

산후조리원에서 2주를 보냈다. 하루종일 아기 얘기만 하고 관리사에게 육아 조언을 구하며 매일 육아에 익숙해졌다. 나는 두 시간마다 젖을 물렸고 남편은 아침 저녁 신생아를 안고 둥실둥실 그네를 태웠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본 익숙한 동작이었다. 필요한 육아용품들을 하나둘 주문한 것도 그때였다. 남편이 때때로 집에 들러 물건 조립과 배치, 청소를 해놓았다. 2주 만에 돌아간 투룸 집은 깨끗하다 못해 윤이 났고 작은 방에는 아기침대와 모빌, 수유쿠션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구석구석 맑은 바람 냄새가 났다. 이제야 실감이 났다. 앞으로 우리 셋이, 여기서 한 가족으로 사는 거야.


우리 아기는 잠을 안 잤다. 여섯 시간, 길게는 여덟 시간을 내리 울고 울었다. 지쳐서 겨우 잠드는가 싶더니 고작 옷깃 스치는 소리에 다시 눈을 떴다. 그러면 여섯 시간 전의 우리로 돌아가 처음처럼 달래야 했다. 아기는 입을 통해 모든 절규를 내뱉었다. 오직 울음이었다.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인지라 사지의 힘을 몰아 입을 벌렸다. 그 작은 입이 온 얼굴을 삼키려는 듯 악을 쓰는 동안 손가락 발가락이 파르르 떨렸다. 목구멍이 훤히 보이는 입 안은 절망의 동굴이었고 그 속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젖을 물리고 침대에 뉘어봤다가 무릎의 반동을 주어 수백 번 그네를 태웠다. 남편과 나는 배가 고팠다.


드디어 재웠다고 안도하고 식탁 앞에서 밥숟갈을 들자마자 또 울음이 터졌다. 쇳소리가 나지 않도록 나무 수저를 들어봤지만 아기는 깼다.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 밥상으로 돌아오면 국이 식고 밥알이 차가워졌다. 실컷 볶고 끓인 음식이 어제 차린 밥상 같았다. 남편은 지친 눈으로 아쉬워했다. “다 식었네.” 우리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번갈아 밥을 먹지는 않았다. 식탁에 마주 앉는 이 시간마저 포기할 순 없었다. 남편은 미로에 갇힌 사람처럼 혼란스러워했다.


-


수유를 하는 나는 몸 안의 피가 모유로 전환되어 빠져나가면서 종일 기력이 없었다. 하루 예닐곱 번 아기를 끌어안고 모유를 먹였다. 한번에 대략 삼십 분 가까이 젖을 빨렸다. 사람이 사람을 살리도록 설계된 몸은 어찌나 엄격하게 작동하는지, 아기가 젖을 찾는 시간이면 칼같이 가슴이 차올랐고 때를 알리는 고통이 찾아왔다. 통증은 겨드랑이부터 시작됐는데 온 가슴이 저릿저릿하다가 찌르르했다. 전류가 내리는 느낌이었다. 젖몸살이 출산보다 힘들다는 말은 과장은 아니었다.


가슴 속에는 커다란 실뭉치가 앉아있었다. 뭉치를 구성하는 실오라기 한올한올이 파지직거리며 전기를 전달했다. 아무리 피곤하고 졸려도 고통스런 통증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한밤 중에 몸을 일으켜 딴딴해진 가슴을 쥐어짰다. 가슴 속 실뭉치는 유즙이 꽉찬 유선 조직이었고, 유즙을 밖으로 잘 내보내야 유선이 막히지 않았다. 유선이 막히면 유방이 붓고 딱딱하게 뭉쳐져 극심한 통증에 시달려야 했다. 젖을 물리는 타이밍이 아닐 땐 유축기를 사용해서 유즙을 짜 냈고, 아예 돌처럼 굳어버린 가슴이 유축기로 해결이 안 될 땐 그저 해방을 기다렸다. 아기가 빨아 가슴을 비워내고 나면 고통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젖을 물리는 동안 남편은 할 일이 많았다. 서둘러 빨래를 넣고 청소기를 돌리고 밥을 차렸다. 남편은 홀로 쉬지 않았다. 쉬어도 될 텐데 그러지 못했다. 유즙으로 젖은 브래지어와 티셔츠, 아기가 물어뜯어 균열이 생긴 유두, 기력 없이 흐느적거리는 나를 보며 정신을 다잡았다. 쉼 없이 움직였다. 심지어 내가 잠이 든 시각까지 깨어 청소를 하거나 식재료를 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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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정말 겨우 남편과 내가 따뜻한 밥을 먹게 되나 하는 찰나에 아기가 울기 시작했다.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 남편은 내게 그대로 있으라는 시늉을 하고 방으로 향했다. 아무리 토닥여주고 기다려도 울음은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남편은 결국 설움 묻은 신경질을 냈다. 필사적으로 하는 중인데, 얼마나 매달려서 너만 바라보고 또 너만 보는 아내를 돌보고 있는데, 이렇게 잠을 줄이고 고생해도 밥 먹을 시간마저 허락되지 않는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참고 참다 터진 억울함이었다. "너. 엄마 아빠는 밥도 먹지 말라고 일부러 이러는 거야?" 더는 식탁에 머무를 수 없어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가여운 남편과 우는 아기는 저마다 절망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좀 쉬어, 그 감정은 위험해”


태어난지 겨우 한 달 지난 아기는 제 몸에 붙은 팔다리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제 팔의 움직임에 소스라치고, 다리를 쳐들었다가 화들짝 놀라 자지러지게 울었다. 잠이 깨면 깨서 무섭고, 잠이 들려 하면 꺼져가는 느낌을 불안해했다. 얘는 얘대로 미칠 거라고. 시력은 거의 없고 네 얼굴 내 얼굴조차 못 알아봐, 안 보여. 그게 사람인지 뭔 지 알 게 뭐야. 아기가 일부러 작정하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우리는 얘한테 서운할 수가 없다고. 그러니까 화 내지마. 남편에게 윽박지르려는 게 아니었다. 그 감정이 너무나 이해돼서 하는 부탁이었다. 갈수록 서로가 안타깝고 서로에게 미안했다.


-


남편에게 아기는 미숙한 생명이 아니라 온전한 인격체였다. 멍한 눈을 가만히 좇아서 눈빛과 몸의 진동을 해석해보곤 했다. 그럴 만한, 다 이유가 있다고 믿었다. 제멋대로 이해해놓고 또 좋을대로 응답하는 식이었다. 꿈틀거린 것 같은데 춤을 춘다며 반겼고, 꿈뻑이는 눈꺼풀을 보며 얘가 아빠한테 토라졌다고 믿기도 했다. 남편은 우는 아기 앞에서 버럭 짜증을 낸 그날을 곱씹어 두고두고 반성했다. 우리와 꼭 닮은 아기가 조금은 자신을 인정해주고 이해해주리라 기대했던 것 같다며, 육아에 미숙해서 나온 실수라고 했다. 고백은 진실했다. 이후 남편은 더욱 눈을 낮추고 몸을 낮추려 애썼다. 나는 남편이, 아기를 진실되게 사랑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는 온몸을 뒤틀며 우는 아들에게 달려가 나지막하게 말을 걸었다.

무서운 꿈 꿨어? 아빠 여기 있어, 괜찮아.


그렇게 아기의 첫 3개월은 긴박하고 애잔했다. 남편과 내가 서로를 더없이 불쌍하게 지켜보는 기간이었다. 서로를 더 깊은 사람으로 발견하는 날들이기도 했다. 남편은 신생아보다 빨리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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