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사랑스러워하지 마라
남편은 반년이 지나도록 손목을 회복하지 못했다. 아기를 안고 달래다가 힘 좋은 몸부림에 꺾였고 연약해진 부위는 사소한 동작에도 고통의 파문을 불렀다. 그런 그가 여전히 나보다 요리를 많이 하고 잠을 줄여 일한다.
손 쓰기를 멈추지 않으면 나을 수 없다는데 끝내 아무 것도 포기하지 않는 남편을 보니 심경이 복잡했다. 말릴 수가 없었다. 목욕 시키기나 잠 재우기조차 내게 내어주지 않았다. 아빠의 손길에 익숙해진 아기가 칭얼댄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는 그가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일이 년이니 계속하겠다 고집부렸다. 부모됨에 있어 한동안은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고, 누구든 다치게 될 일은 둘 중 하나만 아픈 게 낫다고도 했다. 나는 안쓰럽고 미안했다가 조금 수치스러웠고 내심 죄책감이 들었다. 자녀를 돌보는 부모 둘 중 한 사람만 아프다는 사실. 둘 중 아픈 이는 내가 아니라, 내 사랑하는 배우자라는 사실. 그의 부상 앞에서 성한 몸이 미안했다.
새벽부터 다섯 식구의 식사를 준비하고 밤에도 마지막으로 잠자리에 드는 당신. 아이들의 친구이자 선생이자 엄마 역할을 충실히 해 온 당신은 남편인 내게도 소홀함이 없었지...
결혼 10주년을 맞은 친구의 포스팅이다. 시작이 대충 저랬다. 함께한 세월에 대한 감사, 사랑과 의리 같은 것을 표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가족을 위해 하루 족히 12시간 이상 노동하고 아이들을 야무지게 챙기는 내 사람이 얼마나 부지런하고 대단한지 벅찬 감정이 읽혔다. 짠하고 가여우면서도 존경스러운. 이 글을 빌어 얘기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그대의 수고를 면면이 인지하고 있다는 것, 때마다 표현하진 못했지만 모든 희생이 눈물겹게 고맙다는 것, 그러므로 그런 아내를 계속 응원할 거라는 것도.
한 구절 한 구절에 사래가 들렸다. 어떻게 그 긴 세월 너 혼자 일찍 잠자리에 들 수 있어. 밤에라도 아내를 쉬게 하고 설거지와 거실 정리, 건조가 끝난 옷가지 개기 정도는 했어야지(한 번씩 선심 쓰듯 하는 것 말고). 가끔이나마 유튜브라도 켜고 식사준비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자녀에게 친구가 필요하고 선생이 필요하고 부모가 필요할 때 너는 어떤 역할을 온전히 네 것으로 맡았나. 혹시 자기관리한다며 헬스장 가거나 취미활동 한답시고 자리를 비워버린 건 아니겠지. 설마 그 정도 바닥은 아니겠지.
그의 아내는 앞으로도 십 년, 이십 년을 꾸준히 희생하며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육아의 무게를 아내의 작은 골격에 짐 지우고 심지어 그 위에 올라타서 이른 아침과 늦저녁 밥상 차림을 받는 결혼 생활은 사랑인가 유린인가. 칭찬과 연민은 오만하다. 칭찬에 따라 더하고 덜하는, 육아와 가사는 그런 가벼운 의무가 아니다.
개인의 경험은 제한적일 테지만 내가 봐 온 아빠들은 사실 그랬다. 대부분 떳떳했다. 자식을 돌보느라 뼈가 어긋나고 누구보다 이르게 일어나 음식을 준비하는 아내를, 은근히 결혼한 보람으로 여기는 눈치였다. 아내를 딛고 얻은 아침저녁의 안정을 뿌듯해했다. 옆 사람이 닳고 닳아가는 모습을 사랑스러워하는, 그 희생을 자랑스러워하는 심정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배우자를 무임 노역자 쯤으로 착각한 건 아닌지 의심이 들곤 했다.
두 손으로 가볍게 찢던 봉지과자를 나는 지금도 가위 없이 열지 못한다. 힘이 안 들어간다. '힘이 안 들어가'는 2년 전만 해도 내게 추상의 표현이었는데 겪어보니 격한 실제였다. 액셀을 밟아도 막상 타이어에 바람이 빠진 느낌이랄까. 뜻대로 되질 않는다. 돌려 따는 음료수 역시 한번에 열 수가 없게 됐다. 출산 이후로 손목이 헐거워졌다.
아기 생후 5개월까지도 손끝을 사용하는 모든 활동이 손가락 관절의 통증을 동반했다. 단추를 잠그다 비명을 지르는 일이 잦았다. 앉을 때마다 무릎에서는 소리가 났다. 뚝 하는 소리에 남편은 울상이 되어 물었다. "다리에서 난 소리야, 방금?" 시들해진 나를 볼 때마다 겁 먹던 남편은 필사적으로 부지런해졌다. 더 일찍 일어나고 더 늦게 잤다. 네가 아픈 모습이 싫다고 말하는 고백과 실천에서 절절한 사랑을 느꼈다. 못난 남편을 만나 이토록 고생을... 따위의 감성은 꺼낼 일이 없었다. 몸소 애쓰는 모습이 사랑이었다.
거리에서 엄지손가락 보호대나 손가락 고정 지지대를 찬 여자들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심장이 쓰라린다. 그 손으로 홀로 유모차를 끌고 아기띠를 매고 장을 본다. 많은 생각이 들지만 그 생각은 되도록 남편에게 공유하지 않는다. 손목이 멀쩡한 나는 깁스를 한 남편에게 어떤 말도 꺼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저들의 남편도 아내의 손을 보며 같은 생각을 할까, 다만 그런 생각을 한다.
언젠가부터 육아 분담 관련 이야기가 나오면 거짓말을 했다. 전부 번갈아 반반으로 나눠서 하죠. 나는 질타를 피하고 싶었다. 네 배우자는 반년이 지나도록 손이 낫지를 않는다니, 잘 조력했어야지! 질타한 사람이 없는데도 질타를 받았다. 속에서 내가 나를 후리는 질타였다. 심지어 묻지 않은 말을 주절거리기도 했다. 손빨래를 자주 했더니 이것 봐, 일년이 지나도록 습진이 낫지를 않는 거 있지! 그러면서 가장자리에 때 묻은, 검지를 두른 밴드를 보였다. 왜 묻지도 않은 말을 하고 있는 거야, 나는 또 나에게 물었다. 나는 떳떳할 수가 없다.
남편이 감당한 부상의 기간은 평생 민망할 것이다. 저 몸으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한다는 사실을 차마 내 입으로 말할 수 없다. 묵묵히 나서는 남편을 지켜보며 낯뜨거운 마음으로 보조할 뿐이다. 어떻게 사랑하는 이의 희생과 부상이 당연하다고, 원래 그런 거라고, 숭고하다고, 나중에 보상해주겠다고 감히 쉽게 말할 수 있나. 고생의 흔적이 남는 건 지켜주지 못한 부끄러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