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한 사람들이 너를 외롭게 하지
"아기는 어떻게 하고 나왔어?"
나는 답한다. 남편이 있잖아. 맞은 편에 앉은 기혼 남자들이 다시 묻는다. 아니, 남편한테 애를 맡기고 불안하지도 않아? 전혀. 일순간 내 남편은 세상 가장 자상한 남자로 호평된다. 칭찬이 과할수록 내게는 한끗 차이의 빈정이다. 그런 남편 안 만났으면 이런 외출 꿈도 못 꿔. 복인 줄 알아.
남편과 나는 함께 아기를 돌보겠다고 1년 넘게 육아에 몰두했다. 중간중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번 건 나였다. 남편은 아기를 씻기고 밥을 해 먹이고 놀아주는 데 익숙하다. 아니, 익숙함을 넘어 예술적인 수준이다. 구차한 기분이 들어 이런 설명들을 굳이 덧붙이진 않는다. 자족하며 사는 우리 삶이 구차한 변명거리로 소비되고 싶지 않으니까. 이보다 행복하긴 어렵지 않을까 생각할 만큼 우리의 육아와 가족관계는 이상적이다. 나는 남편이 존경스럽고, 때때로 내가 돈을 벌 수 있음에 감사한다.
역으로 묻는다. 아기는 어떻게 하고 나오셨대? 남자는 눈을 동그랗게 뜬다. 와이프가 있잖아. 홀아비 취급을 받는다고 느낀다. 다음 질문이 준비되어 있지만 나는 삼키기로 한다. 혼자 있는 아내한테 애를 맡기고 불안하지도 않나? 당신이 그럴 리 없다는 걸 안다. 부모(아빠)가 자식을 돌보는 사실이 이례적이고 주목받을 일이라면, 더 이상의 대화는 진전되기 어렵다. 그래요, (남자든 여자든)배우자가 자녀를 돌보고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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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8개월부터 13개월의 시기, 남편은 6개월 동안 직업훈련학원에 다녔다. 오전 8시 반에 나가서 저녁 7시를 넘겨 돌아왔으니 여느 풀타임 직장인과 다르지 않은 루틴이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주말을 제외한 날들을 남편 없이 홀로 육아했다.
8개월 차 아기는 사랑스러운 만큼 번거로웠다. 여덟 개의 이가 났고 하루 두 끼 이유식을 먹었고 세 번 젖병을 물었다. 곧잘 막무가내로 힘을 썼는데 치아가 잇몸을 뚫고 나오느라 불편했는지 내 팔을 집요하게 물어뜯었다. 붉은 잇자국은 한나절이 지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이유식을 먹일 땐 숟가락을 뺏고 몸을 뒤틀었다. 살아온 날의 대부분이 젖을 물거나 젖병을 빨아 배 채우는 식이었으니 도구와 친할 리 없었다. 온 얼굴에 이유식을 묻히고 울며불며 보채는 아기를 달래면서 바닥과 의자에 묻은 음식물을 치웠다. 몸을 닦인 서너 장의 거즈수건은 음식물이 굳기 전에 손빨래했다. 아기의 짜증 소리가 이명처럼 몸을 떠나지 않았다. 자기 전에는 두통약을 먹었다.
남편은 아기를 돌보기 위해 수업 후 칼같이 집으로 돌아왔다. 강의 내용이 어려워서 교실에 남아 복습하는 수강생이 여럿이라고 했다. 아기가 있는 본인이 그 속에 낄 순 없는 거라며 아쉬워하지도 않았다.
수강생 중 하나가 회식을 하쟤. 어느 날은 돌아온 남편이 투덜거리듯 말했다. 주도자가 강의실을 한 바퀴 돌면서 연락처를 모으더란다. 하루 9시간을 같이 보내는데, 모임이 있을 법 했다. 취업준비생들은 대부분 나이가 어릴 테고, 같은 분야의 친분을 미리 쌓아두는 게 나쁘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하필 때가 한창 코로나 시기였다는 것. 신천지로 뒤집어진 시국이라 회사들이 막 재택근무 시스템을 들이고 식당들은 텅텅 비어 셔터를 내리고 혈육 간에도 만남을 미루던 긴장의 날들이었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돌도 안 된 아기가 있었다.
남편은 회식 주도자에게 아기를 돌봐야 해서 어렵다고 거절했다. ‘아기가 있다'는 사실을 그리 중대하게 여기지 않은 사람들은 남편을 거듭 설득하려 했다. 그들의 공감력과 해석력에 한탄한 남편은 급기야 평소에도 말을 섞기 거북해했다. 대신 쉬는 시간마다 아기 사진과 동영상을 봤고 점심시간이면 영상전화를 걸었다. 아기가 눈에 밟힌다고 했다. 그리고 혼자 감당 중인 내게 미안해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수강생의 반은 기혼자였다. 주도자는 나이 마흔에 유치원생 딸이 있었고. 가정이 있는 사람들이 저녁에 모여서 게다가 코로나 시기에, 제 정신이 아니야. 아이가 있는데 어떻게 밤에 놀겠다고 집을 비우지. 남편에게는 참으로 이상한 사람들이었다. 수강생들은 첫 회식에 맛을 들였는지 그 후로도 종종 술자리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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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식이었다. 밖에 나가면 나도 남편도 외로웠다. 남편은 술자리를 권하는 지인들을 매번 거절해야 했고 때마다 유난 떠는 사람이 되어갔다. 아기가 있는 게 무슨 상관이냐며 너 변했다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놀러오는 건 언제든 환영이라고 집 방문을 제안했지만 대안을 말하는 그에게 오히려 서운해했다. 다른 세계에 사는 쓸쓸함이 불어났다.
나는 나대로 외로웠다. 이해를 구걸하고 싶지 않아서 외로웠다. 혼자하는 외출이 기껏해야 한달에 한 번 될까 말까 하는데 "아기는 어떻게 하고 나왔어?" 라는 질문을 첫인사로 받는 게 분했다.
하지만 내게는 친구들이 있었다. 꾸준히 집으로 찾아와서 아기를 기뻐해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피곤할 텐데 아무것도 준비하지 말라며 식사거리와 디저트를 챙겨오는 사람들이었다. 덕분에 편한 복장으로 긴긴 대화를 나누었다. 집에서 아기를 돌본다는 이유로 이탈한 친구가, 내게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여자들이 공감대가 넓다는 말은 사실 이상의 사실이었음을 나와 남편 모두가 절감했다. 이쯤에서 내 외로움의 이유를 정정해야겠다. 나는 지극히 진실되고 제대로 된 내 남편 때문에 더불어 외로워졌다. 남편의 외로움이 외로웠다. 남편의 씁쓸함이 씁쓸했다.
끝내 말하지 못한 속마음은 이렇다. 친구의 소중한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그 따위 친구들은 어쩌다 스쳐지나간 행인만도 못 해. 죄다 사라지라 그래. 그 얄팍한 의리로 어디 가서 우정이니 뭐니 소리도 말라 그래! 하지만 남편에게는 잠깐의 서운함일 뿐이고 언젠가 다 회복하고 싶은 관계들이다.
남편은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데 밖은 왜 이렇게 외로운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