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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Answer Jul 19. 2020

82년생 황금기

전지적 본인 시점에서 바라본 그들이 소환해준 추억과 우리 세대 이야기


다시 여기 바닷가.


MBC 예능 "놀면 뭐하니?"의 싹쓰리는 다시 나의 추억을 소환하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

난 1982년생으로서 이효리와 비를 비롯하여 많은 추억 속 스타들이 한창일 때 학창시절과 대학시절을 보냈다. 핑클과 SES의 양강 구도일 때 중고딩으로서 SES의 팬이었고 핑클빵을 먹으며 스티커 모으기에 여념이 없었으며 비가 태양을 피하고 있을 때 난 대학생으로 교수님을 피해다니고 있었다. 또, 유재석이 강호동과 함께 KBS에서 "공포의 쿵쿵타"로 인기를 얻고 있을 때 난 미팅자리에서 그 게임으로 재밌는 시간을 보내면서 에프터 신청에 전념하고 있었다.


5년 전인 2015년 초에는 우리들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 프로그램이 나타났었다.

바로 "무한도전"의 "토토가"

예전 가수들이 대거 출연했었고 그들이 인기의 정점을 찍고 있을 때도 난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학교를 다녔다. 토토가에서 무대를 꾸몄던 쿨, SES, 지누션, 터보, 이정현, 김건모, 김현정 등등이 활약할 당시 나는 카세트 테이프와 CD를 수집할 때였고 워크맨, CDP, 마이마이 등의 휴대용 음악재생기와 이어폰은 필수 아이템이었던 시절이었기에 우리들의 삶에 그들의 음악은 BGM이었다.


이전에는 "응답하라" 시리즈가 우리들의 추억소환 거리였다.
난 그 시리즈의 첫 번째였던 "응칠"세대다. 그들의 이야기가 곧 우리 세대가 경험했던 것이었다. 처음 아이돌 가수가 등장하고 대규모 팬들이 생성될 때 우리가 바로 그 팬덤이었다.

또, 난 "응사"세대와도 연결되어 있다. 그 당시 난 대학생은 아니었으나 국민학생(국민학교의 마지막 세대이기도 하다) 농구선수였던 난 연세대 농구부 즉, 신촌독수리들의 열렬한 팬이었고 나의 꿈이었다. "응사"에서의 배경도 연세대 신촌일대였기에 내게 더욱 몰입감을 주었다.

또, 난 "응팔"세대이기도 하다. 내가 그 시절 고등학생은 아니었으나 난 아파트가 아닌 단독주택가에서 이웃들이 서로 키워주며 이웃사촌이라는 말을 경험했었고 드라마 중 선우의 어린 동생 진주와 같은 세대이었기에 많은 것들이 공감되었다.



무척이나 억지스러운 연결고리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시 추억소환이 되는 요즘 1990년 후반, 2000년대 초반에 학창시절을 보냈던 내게는 이효리, 비란 대중스타가 그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세대는 참 행운이다


대중매체에서 추억소환을 할 때면 우리 세대가 경험했던 1990 ~ 2000년대가 빠지지 않기에 문화적인 혜택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덧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 각자의 경제적 여건을 서로 다르지만 TV를 비롯한 많은 매체들이 우리들의 옛 추억들을 끄집어낼 때 공감되고 향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97년 말 IMP라는 국가재정 파탄이 오기 전까지는 우리나라의 경제 황금기였고 우리는 학창시절에 그 혜택을 꽤나 받으며 살아왔다. 그 이후 국가적 어려움을 겪었어도 학생이었던 우리는 직접적인 타격을 받지 않고 살았었다. 하지만 우리 전 세대 즉 95학번부터는 취업난, 경제난을 직접 겪으며 힘든 생활을 겪은 것으로 선배들과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

2001년 대학 입학 후에는 지금의 대학생들처럼 입학 직후부터 학점과 취업 걱정을 하지 않고 나름 90년대 학번들의 캠퍼스 낭만을 경험했었다. 디아블로란 게임에 빠져 학점이 빵구가 나기도 했고 매일 술통에 빠져 살아보기도 했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란 평생 없을지도 모를 특별한 경험을 하기도 했었다. 시청 앞 광장에 모여 모두가 하나가 되는 그 경험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아주 행운스러운 것이었다.

군 전역 이후에는 지금처럼의 취업난을 겪어보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은 노력해도 안되는 것들이 아주 많지만 적어도 우리 세대까지는 노력을 하면 어느 정도까지는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현 시점에서 내 친구들을 바라보면 그렇게 생각이 든다.


이 같은 말들이 오해를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나란 존재의 경험적으로는 우리 세대는 이전 세대와 이후 세대 사이에서 그나마 "운"이 따라준 것 같다. 역으로 말해서 이전과 이후 세대는 무척이나 힘든 삶을 살았고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내 자식이 살아가게 될 세상도 그리 만만치 않아 보이기도 하고.

기성세대가 된 우리 세대가 해야 할 것들이 무엇일까? 특히 교직에 몸담고 있는 난 학생들에게 무엇을 해야하는가? 고민스럽다. 한없이 장미빛 인생과 미래를 말하기엔 현실을 너무 잘 알고 있고, 잿빛 하늘과 같은 말로 희망의 빛을 감추기에는 너무 비관적이고 어두워보이고. 공감도 한계가 있고.


"다시 여기 바닷가"


무더운 여름날 청량감을 주는 음악과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가사가

어두움보다는 밝음을,

슬픔보다는 기쁨을,

힘듦보다는 가벼움을,

이야기하듯 그렇게 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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