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he Answer Jul 24. 2020

나만 알아도 되는 '나'

슬기로운 자아탐구 생활-Fake와 부캐, Real과 본캐에 대하여

Fake vs Real

몇 해전까지만 해도 힙합씬(Scean)에서는 가짜와 진짜를 나누는 것이 랩 가사의 주제가 된 적이 있었다. 가령, '너네는 가면을 쓰고 힙합인 척할 뿐이고 난 리얼 래퍼'라는 식의 내용이다. 즉, 넌 '척', 나 '만'이라고나 할까. 진짜라고 여기는 입장에서는 힙합씬의 파이가 커지면서 그 열풍에 편승하려는 이들에게 경고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일리네어 레코즈 11:11 앨범 커버

부캐 vs 본캐

최근에는 유재석과 김신영을 위시한 부캐의 세상이다. 두 사람 모두 개그맨이자 MC로 이미 정상에 있었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들도 시대와 세월을 거스를 수 없는 법. 특히 유재석의 경우 인기가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던 찰나에 mbc 예능 [놀면 뭐하니?]을 통해 재도약의 기회를 잡았고 유산슬이란 트로트 신인가수란 부캐로 보란 듯이 인기의 상향 곡선을 타고 있고 이효리, 비와 함께 [싹쓰리]란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하여 음원 차트에서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 vs ?

'나답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주제를 고민하다가 힙합 레이블이자 2010년대 쇼미 더 머니와 함께 힙합을 단순히 유행이나 트렌드를 넘어 힙합씬을 힙(hip)하게 만들었고 심지어 '일리네어키즈'라는 용어까지 등장하게 만든 'ILLIONAIRE RECORDS'의 해체 소식을 접했고 '일리네어식으로의 성공'이란 말과 그 당시의 가사에서 주로 등장한 Fake가 떠올랐다. 또, 한 가지는 '유산슬'과 '둘째 이모 김다비'란 부캐였다. 다른 자아이기도 한 그들로 인해 본캐는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하지만 2020년 현시점에서 꼭 적군과 아군, 이것과 저것 등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야만 할까? 이 같은 질문과 함께 나의 Fake와 부캐는 무엇이고 Real과 본캐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졌다. 이른바 '슬기로운 자아탐구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유재석의 부캐인 트로트 신인가수 유산슬(왼쪽)과 김신영의 부캐인 둘째이모 김다비(오른쪽)

Fake와 부캐?

난 현재 교사로 고등학교에 재직 중이다. 체육을 가르치는 입장인 동시에 2학년 담임이며 생활교육 및 체육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나를 '원칙주의자', '깐깐한 교사', '꼰대'라고 부르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나 자신부터 학교 규정과 수업 규칙을 준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학생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을 옥죄고 있다고 여길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이다.

한편, 난 지난 6월부터 두산백과에서 운영하는 두피디아여행기의 여행작가로 활동 중이면서 동시에 브런치 작가로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여행과 글쓰기란 취미가 그 이상의 의미를 두는 가치가 높아진 활동이 되었다. 이 공간에서는 내가 경험했거나 생각했던 바를 글로써 최대한 솔직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나'란 존재를 드러내는데 너무나 좋은 도구이기 때문에 늦은 밤에도 아들을 재우고 타이핑을 하고 있다.


Real과 본캐?

나는 가족들 사이에서 어릴 적부터 불혹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불리는 별명 하나가 있었다.

'마이너스(-)의 손'

내 손길이 닿는 곳이라면 그것이 뭐가 됐든지 부서지고 깨졌다는 것에 만들어진 그 닉네임이 요즘에는 형태가 바뀌었다. 바로,

'똥손'

그래서 내가 뭐라고 할라치면 다들 버선발로 말렸었고 손사래를 치며 만류하고 있다. 그런데, 더 대단한 건 주위에서 그렇게 불신하는데도 난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기회가 주어지면 일단 저질러본다. 그게 뭐가 됐든.

그래서 나의 프로필에도 '저질러스트'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맞다. 난 나이키의 슬로건인 'Just do it' 즉, 일단 해본다.

난 미국의 진보주의 교육자인 존 듀이가 외쳤던 "Learning by doing"을 믿는 것을 넘어 신봉한다.

어떤 행위를 하거나 선택을 할 때 길게 고민하지 않는다. 그렇게 시간을 허비할 시간에 일단 시도해서 차츰 다듬어가면 된다는 생각에 일단 해본다.

이 같은 성향이 100% 좋은 결과를 얻는 건 아니다. 후회할 때도 참 많다. 하지만 더 고민한다고 해서 결과가 좋아진다는 보장도 없기에 우선 해보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본캐(Real) = 부캐(Fake)

교사라면 상황에 따라서 불가피하게 학생들에게 일부러 선의의 거짓말 또는 큰소리를 쳤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당연히 맥락 상 학생들의 신변이나 성적 등 큰 타격을 주는 경우는 제외하고. 분위기 전환 혹은 특정 사건 등을 강조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하얀 거짓말과 화를 내기도 한다.

그럴 때면 학생들은 종종 나를 오해하곤 한다. 100% 오해라고 하기엔 자기 합리화인 것 같지만 적어도 진심이거나 사실은 아니다.

또, 나는 학교에서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까지 원칙주의자는 아니다. 털면 먼지가 많이 나오는 편에 속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부끄럽거나 떳떳하지 못한 행위를 한 것은 없다. 최소한 학생들이 보는 '나'와 일상생활에서의 '나'는 다소 차이가 있다.

하지만 두 상황 모두 '나'임은 분명하다. 우리는 맥락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에 그 속에서 최선의 선택과 적절한 행동을 해야 한다. 처한 상황이 다른데, 같은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은 강박관념에 가깝거나 무리한 요구다.


사실, 교사가 되기까지 2번의 낙방이 있었다. 운동부 출신인 난 공부란 것을 대학교에 와서야 시작했고 그리 머리가 특출한 편도 아니기에 남들보다 도서관에서 보내는 절대량을 높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생각에 대학교 3학년 1학기부터 틈만 나면 도서관에서 임용고시 준비를 했다.

당연히 주위에서는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가족은 물론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큰 기대를 걸진 않았다. 어쩌면 그들의 예상이 확률적으로 높았을 것이다. 3수, 4수가 기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치열한 임용고시에 한 번도 공부를 해본 적이 없는 놈이 도전한다니까 코웃음을 치는 게 맞았다.

그래도 일단 질러봤다. 하긴 다른 선택지가 보이지도 않기도 했었다. 농구만 10년 이상 해왔던 사람이 사회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기에 그나마 다른 운동부 출신보다 '임용고시'라는 초이스가 있다는 것이 행운이라고 여기고 도전했던 것이다.

결국 난 총 4년의 시간 동안 임용고시를 준비한 셈이었고 2010학년도 시험에 단, 0.5점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턱걸이로 합격했다. 이 점수 차이면 3차 실기시험에서 실수 하나면 떨어지는 것이었다. 참 운도 좋게도 붙어서 지금까지 교사생활을 이어져 오고 있다.  


한편, 내가 여행작가가 되고 싶다고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했을 때 반응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응~해봐...."

"그래~도전하는 건 좋은 거지...."

"잘해봐!..."

뭐 대충 이런 느낌의 격려 아닌 격려였다.

나 역시 그들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도전만 계속하는 형국이었다.

그래도 계속 저질렀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과 글쓰기가 최적인 활동이 바로 여행작가였기에 확신까지는 아니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묵묵히 글을 써 내려갔다. 그렇게 1년, 2년, 3년 정도 지났을까? 나도 지쳐갈 때쯤 조금은 다른 방식의 여행작가 공모전이 열렸고 다시 시도했다.

긴 고민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냥 썼다. 재미없진 않아서(아주 재밌다고 말하기엔 찔리긴 하다).

결국 합격 통보 메일을 받았고 드디어 필명 The Answer란 이름을 건 내 작품을 업로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갓 한 달이 지나서 계약서에 잉크가 다 마르지도 않았지만 그 생각만 아이디어가 샘솟는 걸 보면 아직은 즐겁다.

무한도전 사진전 로고

본캐 = 무한도전

나는 소히 '무도빠'다. 시간이 날 때면 어김없이 난 유튜브에서 무한도전을 시청한다.

수많은 특집들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200회 특집에서의 오프닝 멘트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우리들의 시작은 무모했다.

그러나 우리는 답한다.

비인기 스포츠에 도전하고

1년에 걸친 장기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사진을 찍어 기부하는 일들이

예능프로그램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순간

아무것도 새로워질 건 없다고

우리는 믿는다.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만이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누군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건 매우 제한적이거니와 그 일에서 반드시 성과를 낼 필요는 없다.

내가 도전할 수만 있다면 그 결과에 상관없이 무척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임에 틀림없다. 주위 시선이나 우려를 모두 무시할 수도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없지만 적어도 우선은 나의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


나만 알아도 되는 본캐(=부캐)

결국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은 내 필명에서 보듯 '나 자신'이 '답'이었다.

인생의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나는 본능에 충실했다. 어릴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똥손이라고 손가락질을 받고 무모한 도전이라고 괄시받아도 일단 질러봤던 지난 과거가 현재의 나를 있게 만들었다. 교사와 여행작가를 예로 들었지만 그밖에 무수히 많은 도전과 실패가 있었고 그것들은 내 마음과 머리, 내 몸에 스며들어 있다. 아무도 몰라줘도 나 자신이 알아주면 그뿐이지 않을까?

근데, 이 생각이 반드시 나만의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는데, 지난해 JTBC [캠핑클럽] 프로그램에서 이효리가 남편 이상순에 대해 말한 장면에서 이 같은 말을 했었다.

또, 이상순이 이효리에게 했었던 저 말을 약 600여 년 전 머나먼 바티칸 내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그렸던 미켈란젤로도 같은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아도 좋아. 저 보이지도 않는 새 한 마리에 정성을 들였던 나 자신이 알고 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네. 친구


우리는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을 너무 멀리서 찾지 말자. 책 [연금술사]에서 산티아고가 그토록 찾고 싶었던 보물이 자신이 매일 앉아서 쉬었던 나무 그늘 밑 바위 아래였지 않은가. 우리 안에 그 보물이 있다.

이전 01화 변화의 시작은 글쓰기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