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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써니 Aug 06. 2015

알록달록 티비다보 TIBIDABO

바르셀로나 #2

여행을 떠나기 전 여행지가 배경인 된 영화를 찾아보거나, 책을 읽고 가면 아무 의미 없는 골목길도 나중에 한번 더 생각나기 마련이다. 항공사 채널 담당자도 이런 마음을 느끼는 건지 장기 비행을 할 때면 그 도시의 배경이 된 영화들 몇 편을 비행기 안에서 미리 보게 된다. 그런데 찾아보니 의외로 바르셀로나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엔 영화 세 편을 노트북에 담아 가고 비행기 안에서는 바르셀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읽기로 했다. 이름도 멋있는 <바람의 그림자>.


바. 람. 의. 그. 림. 자.

제목이 흥미 유발 그 자체였다. 집에서 다 읽지 못하고 스페인까지 가져오는 바람에 도서관의 반납일을 지키지 못해 느끼는 죄책감조차 날려버릴 수 있을 만큼 인상 깊은 책이었다. 꽃할배들이 보여줬던 해맑은 바르셀로나가 아닌, 뭔가 음침하고 비밀스러운 바르셀로나를 보여 준 낯선 소설.


소설은 1945년의 바르셀로나를 배경으로 한다. 오래되긴 했지만 왠지 열심히 찾아보면 소설에 등장했던 실제 거리를 지금도 찾아볼 수도 있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시간이 많지 않은 여행자였기에 소설의 주 무대가 됐던 ‘티비다보(TIBIDABO)’를 가는 것으로 소설에 대한 예의를 다 하기로 했다. 출근하는 것만큼이나 바쁘게 지내던 날들에 지쳐갈 무렵 우리는 그렇게 바르셀로나의 북쪽 끝을 향해 버스를 탔다.


사시사철 변함없는 푸른 소나무 마냥 ‘나 여기 있어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은 티비다보의 교회 첨탑은 바르셀 시내 어디서나 목격할 수 있다. 관광을 하다 보면 ‘저긴 어디지?’하고 누구나 생각하게 되는 그곳이 바로 티비다보 유원지(?)다.


<바람의 그림자>를보면 티비다보를 향하는 길에 자리한 대저택들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베일이 벗겨지면서 사건의 중심에 있는 저택도 티비다보 거리에 있다. 그래서 그런지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창 밖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저 집들 중 하나가 바로 그 소설 속 집이겠지’하는 막연한 추측을 하며.


소설 속에서 음침하기 그지없던 그곳은 너무나 맑은 하늘 덕분에 쨍하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고, 버스 종점에서 트램을 타고 올라가서 만난 티비다보의 공기는 바르셀로나 시내가 모두 보일 정도로 깨끗했다. ‘티비다보에 가겠다’는하나의 목적만을 지닌 우리였기에 막상 그곳에서 할 일은 딱히 없었다. 겨울이라 움직이는 놀이기구도 많지 않았고(작동을 해도 타지는 않았을 테지만), 멀리서만 봤던 교회에 올라 시내를 바라보고 여유롭게 광합성을 하며 맥주를 즐기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눈부신 태양을 등지고 바르셀로나 시내를 안주 삼아 마시는 맥주 한잔과 출출함을 해소해 주는 가벼운 핫도그. 오후의 여유를 즐기는 그 순간에 이 보다 더 좋은 건 있을 수 없었다.


관광을 마치고 내려올 때는 트램 대신 튼튼한 두 발을 이용하기로 했다. 내 키 보다 훨씬 높은 담벼락들을 스치며, 1945년 어느 날, 굳은 비를 맞으며 한밤 중에 이 거리를 지나 시내로 내달리던 소설 속 주인공을 다시금 떠올려봤다. 일행과 둘이 걷고 있지만 혼자만 즐길 수 있는 이런 상상이야 말로 내 여행의 기억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일일 것이다.

한참을 그렇게 걸어 겨우 버스 정류장을 찾아내 시내로 돌아왔다. 항상 사람들로 붐비는 대성당 앞 광장에서는 토요일이라 그런지 마을 오케스트라 같은 연주자들의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분명 현지인보다 관광객이 많을 거라 추측됐지만, 음악에 맞춰 다 같이 손을 잡고 추는 춤은 현지인이 아니면 소화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스페인어를 할 줄 알았다면 홈페이지를 뒤적거리든, 사람들에게 물어봐서든 이 작은 축제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었을 텐데, Hola! 밖에 할 줄 모르는 우리는 사진이나 몇 장 찍고 묵묵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때가 나의 무식이 가장 한스러운 순간이다.


마음은 가봐야지 하지만 모두가 놓치고 그냥 발길을 돌리는 티비다보. 워낙 날고 기는 볼거리가 많아 열외 취급을 받는 곳이긴 하나 이래 봬도 유럽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놀이공원이라는 역사를 지니고 있는 곳이다. 바르셀로나는 일주일, 열흘을 있어도 시내 관광을 하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의 수 없이 많은 사람들에 치여 마음이 힘들다면 티비다보에 올라 깊은 숨을 내뱉으며 잠시 쉬어 보자.


©502ugni



# 놓칠 뻔했던 그곳, 영화 <향수> 속으로– 미로공원 Parc del Laberint


숙소에 있던 바르셀로나 사진집을 넘기다 우연히 발견한 곳. 가우디 투어를 하며 바르셀로나에서 영화 <향수>의 일부분을 찍었다는 얘기를 접하고 영화를 찾아서 본 다음 날 사진집에서 영화에 나온 곳과 똑같은 공원을 보았다. 혹시나 하고 검색해 봤더니 역시나!!


우리에겐 유심칩과 구글맵이 있었기에 어디든 못 갈 곳이 없었다. 어지간한 관광지는 다 섭렵했기에 새로운 무언가를 찾던 어느 날 즉시 방문. 미로에서 빠져나오느라 고생 좀 했지만 한적한 분위기의 공원은 그야말로 휴식 자체였다. (입장료 있음)

©502ug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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