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가 한국 초연 10주년을 맞았다.
두꺼운 책은 읽지도 않은 채 '풍차', '산초', '돈키호테' 등의 키워드로만 그 작품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다 만나게 된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10년 공연되는 동안 세 번을 봤는지, 네 번을 봤는지, 다섯 번을 봤는지 사실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류정한, 황정민, 정성화 배우의 공연은 확실하게 본 것 같긴 한데 조승우와 서범석 배우의 공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본 듯, 안 본 듯.
공연은 <돈 키호테> 작품에 작가인 세르반테스를 등장시켜 작가가 직접 이야기를 풀어 가며 두 개의 이야기로 흘러간다. 세르반테스와 돈 키호테 그리고 돈 키호테가 되기 전의 알론조까지. 어찌 보면 1인 3역을 해야 하기에 배우의 역량이 공연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믿고 보는 류정한, 캐릭터의 맛이 살아있는 김호영, 여리한 몸에서 강함을 뿜어낸 전미도 배우까지. 이번에 보게 된 캐스팅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 사진 출처 : 오디뮤지컬컴퍼니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ODMUSICAL
오디뮤지컬 공연은 가끔 앙상블이 아쉬운 경우가 많은데, 이번 공연의 앙상블은 정말 최고라고 하고 싶다. 남자 배우들만의 하모니가 어찌 그리 좋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운 음색과 목소리에 귀가 호강했던 시간이었다.
특히 신부님 역할의 조성지, 안셀모의 김영완 배우의 목소리가 기억에 남는다.
<맨 오브 라만차>는 무대 전환이 전혀 없다. 하나의 무대에서 계단만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고 배경이 바뀌며 다른 상황을 연출한다. 대부분의 공연이 1막의 마지막을 웅장하게 막을 내리며 스토리를 전환하는 반면, 이 공연은 1막의 마지막 장면이 2막 시작 때 그대로 재연되어 극의 흐름을 차분히 이어간다. 또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지하감옥과 허름한 여관을 같은 공간에 사용하지만 그게 거슬리지도, 지루하지도 않게 느껴진다.
물론 700페이지가 넘는 이야기를 두 시간으로 줄이다 보니 뜬금없는 장면이 간혹 있긴 하지만, 그 정도가 공연을 흐트러뜨릴 정도는 아니다.
사랑스러운 멜로디의 <둘시네아>, 재치가 돋보이는 <그분의 생각뿐>,
산초가 아니면 소화할 수 없는 <좋으니까>, 그리고 공연의 주제를 담고 있는 <이룰 수 없는 꿈>
<맨 오브 라만차의> 노래는 그 어느 곡 하나 버릴 것이 없다. 보는 내내 마음을 움직이는 가사와 멜로디는 공연이 끝나도 기억에 남아 공연의 여운을 쉽게 가져가지 않는다.
들어라 썩을 대로 썩은 세상아
죄악으로 가득하구나
여기 깃발 높이고 일어나서 결투를 청하는도다
나는 나 돈키호테 라만차의 기사
운명이여 내가 간다
거친 바람이 불어와 나를 깨운다
날 휘몰아가는구나
그 어느 곳이라도 영광을 향해 가자
황당한 꿈보다도 더 말도 안 되고, 비정상적으로 돌아가는 현실. 어느 것이 상식이고, 누가 옳은지도 점점 희미해지는 요즘 사회나 책이 나왔던 400년 전이나 별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그 안에서 작은 몸뚱이 하나로 버텨내야 하는 우리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에서 나만의 방법으로 꿈을 쫓는 돈키호테는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진짜 영웅일지도 모른다.
이상 없이 살 수 있는 용기, 난 그런 거 없소이다.
이전에 공연을 봤을 땐 일을 안 하고 있을 때였는지, 공연을 보면서 울컥울컥 했던 지난 감정이 떠올랐다. 무언가 마음속에 서러움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번엔 서러움보다 안타까움이 더 밀려왔다. 세르반테스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 돈키호테의 꿈에 대한 안타까움, 알돈자의 순결에 대한 안타까움. 아마도 그들처럼 용기가 필요한 현실 속 많은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전해 진 탓이리라.
명작의 아름다움, 고전의 힘을 느낄 수 있는 <맨 오브 라만차>
다시 볼 땐 또 어떤 감정을 전해 줄지. 다음 시즌이 벌써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