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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사이시옷 Jan 10. 2021

아빠는 공부하는 사람이에요

현직 시인, 문학박사 김남규 님 / 인터뷰 4


바쁜 일상을 보내시는데 그렇게까지 힘들게 글을 쓰는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굳이 시인이라서 그런 건 아니지만 현시대가 되게 우울하잖아요. 힐링이라는 말을 하기도 하고 한때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유행해서 책도 많이 팔리기도 했지만 힐링과 위로라는 말을 요즘 많이 씁니다. 글을 쓰던, 시를 쓰던, 소설책을 내든 간에 '힐링이 된다, 위로가 된다'는 식의 마케팅을 많이 하기도 하고 실제로 작가들이 그런 것을 화두로 해서 강연도 많이 하는데요. 저는 이에 동조하지 않습니다. 


내가 쓴 글이 위로가 되고 힐링이 되면 참 좋겠죠. 그런데 거의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봐야 하고요. 


처음부터 힐링이나 위로를 노리고 쓴 글은
얄팍한 상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아프면 환자지, 청춘의 고통이 왜 누군가의 힐링이 되는지 동조할 수 없다

물론 아닐 수도 있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바에 따르면 어떤 글을 쓸 때는 자기 자신과 1:1로 싸우는 것이지 남에게 뭔가 이익을 주기 위해서 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물론, 사후로 자신의 글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도 있고 희망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고요.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가 즐겁고 제가 기뻐서요. 그것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좋은 글, 혹은 계속 글을 써나갈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글을 쓰거나 읽을 때 오로지 나를 위해서 씁니다.


남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건 정말 희망사항이고요. 제가 책을 읽는 게 좋고, 글을 쓰는 게 좋고, 그것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면 너무 좋겠지만 그냥 제가 기뻐요.

그런 시간이 저에게 주어진다는 게 너무 행복합니다. 애아빠다 보니까 충분히 아이랑 놀아줘야 하고 육아도 해야 하기 때문에 나만의 시간을 확보하는 게 솔직히 어려워요. 그렇기 때문에 밤늦게 자는 건데 그 시간에 책을 읽는 게 너무 행복해요. 꿀맛 같은 거죠. 하루 종일 출판사 일을 하거나 강의하고 나서, 애를 보고, 집안일 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이러다 보면 지치잖아요. 그러고 나서 그냥 자는 게 아니고 자기 직전에 책 한 줄 읽는 게 

저한테는 희망이고, 기쁨이고, 즐거움이거든요. 그것보다 더 좋은 즐거움을 아직 못 찾았어요. 만약에 찾으면 그걸 할 거예요. 안타깝게도 혹은 행복하게도 글쓰기 이상의 행복한 걸 아직 못 찾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 자신이 즐겁고 행복하기 때문에 글을 쓰는 것이지, 그다음 목적을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항상 꿈꾸죠.




글 쓰기 외에 어떤 활동을 하시나요?

저는 부케가 많습니다. 출판사 편집장이기도 하고, 대학교 강사이기도 하고, 문학연구자로서 계속 글도 쓰고 있고요. 한국 시조시인협회 사무총장이라고 문학 단체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습니다. 

당연히 애아빠 이기도 하고, 한 아내의 남편이기도 하고,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기도 하고요. 많은 일들을 하고 있으니까 수입도 많이 있긴 합니다. 엄청 많이 버는 건 아니지만 가장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긴 한데요. 안정적인 직장이라고 할 수 있는 출판사에 다니고 있긴 하지만 저는 출판사 편집장에 그치지 않고 더 많은 것을 하고 싶어요. 욕망이 가득하죠. 저는 소박하지만 욕심은 많아요. 출판사의 편집장으로 있다 보니까 책을 만들고 있는데, 작은 규모의 출판사다 보니까 교정, 교열, 편집, 디자인. 인쇄소에 넘어가기 전의 모든 단계를 혼자 하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많은 것들을 배우게 돼서 좋기도 하고, 슬프기도 합니다.


그리고 고려대와 경기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데 글쓰기와 교양을 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최근에 강의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책을 하나 냈죠. '글 쓰기 파내려 가기'라고. 그런 게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남들에게는 중노동이기도 하고 또 UN사무총장보다 바쁘다는 문단의 사무총장을 맡게 돼서 다양한 일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글을 가까이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고, 시인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것 같아서 저는 제 자신이 너무 좋습니다. 





후배 시인들을 위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와 같이 합평회를 하거나 시를 오랫동안 쓴 습작생들이 등단을 하게 되면 그동안 수고했다고 항상 선물을 줬어요. 필통이나 펜을 주는 걸 좋아해서 주면서 항상 메시지를 적어주거나 편지를 주는데 항상 문구는 똑같습니다. 좋은 시를 쓰려고 노력하지 말고, 좋은 시인이 되려고 노력하라고. 좋은 시를 쓰려고 잠 안 자고, 자기 수명을 깎아가면서 글을 쓸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저는 그것보다도 좋은 시인이 먼저 됐으면 좋겠어요.

좋은 시를 못 쓰더라도. 무명 시인이 돼도 좋으니까 자기가 시인으로서 삶을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시인은 모든 사물에 애정이 있는 사람이 좋은 시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를 쓰려면 사물이던, 인간이던, 어떤 상황이든 간에 항상 애정을 쏟고 봐야 하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안보이니까. 그러니까 좋은 시인이 되려면 모든 세상 만물에 애정을 쏟아야 하는 거죠. 정말 미워하는 사람이던 내가 싫어하는 슬픔이든 간에 모든 것을 사랑하고 모든 것을 좋아하면 그것을 시로 쓸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좋은 시인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시를 쓰는 건 두 번째. 그래서 저도 그렇게 살고 싶어요. 후대 몆천 년이 지나도 암송하고 외우는 시를 쓰는 게 중요하지 않고, 그냥 내가 그렇게 시인으로서 살아가는 게 저는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더 행복하다고 생각하고요. 그렇게 후배들이 살았으면 좋겠어요. '시인이 돼서, 등단해서 좋은 시를 써야지, 잘 팔리는 시집을 내야지'

이런 건 두 번째 문제고 내가 먼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자연스럽게 좋은 시를 쓰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문학이 참 좋은데, 시가 참 좋은데 표현을 아직 잘 못합니다. 실력이 부족한 거겠죠. 그래서 앞으로 공부를 많이 해서  "시가 참 좋습니다. 글이 참 좋습니다. 여러분도 글을 써보세요. 시를 읽어보세요"라고 말할 수 있고, 그 말이 신뢰가 돼서 사람들이 "김남규의 말을 들어보니 한번 시를 써봐야겠다"라는 설득력을 갖출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당연히 공부를 많이 해야겠죠. 그래서 저는 다섯 살 아이에게 주입시킨 게 있는데 

"네 아빠 뭐하는 사람이야?, 너희 아버지 뭐하시는 분이니?"라는 질문을 하면 이렇게 대답하라고 합니다. 

"공부하는 사람이에요."


공부하는 사람으로 아이에게 주입하고 있다


실제로 그렇게 살고 싶어요.  무슨 일을 하든 간에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 잘 모르겠지만, 죽을 때까지, 죽기 직전까지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공부를 계속할 수 있는 직업을 가져야겠죠. 계속 공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고요. 그리고 이건 좀 다른 문젠데 사람들은 시조를 나이 드신 분들이 쓴다고 생각하고, 곧 없어질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시조를 아무도 안 쓰게 되더라도 저 혼자는 계속 시조를 썼으면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8msliAGFuA






현직 시인, 문학박사 김남규 님 / 인터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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