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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사이시옷 Jan 15. 2021

국내에선 외면 받는 30년 한복명장

현직 30년 한복 명장 이남례 님 / 인터뷰 1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대한민국의 얼과 혼이 담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리 한복을 전승, 발전시키려고 항상 노력하는 한복 명장 이남례입니다.


한복을 몇 년 정도 만드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제가 보통 일반적인 한복 하는 사람보다는 출발이 굉장히 많이 늦었어요. 보통 친구들은 20대 정도에 일을 시작하는데 저는 30대 중반부터 시작해서 근 30년. 늦었지만 굉장히 열심히 했습니다. 혹시 그 시간 동안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으신가요? 제가 30년 동안 일을 하는 중에 10년은 그냥 했고, 20년은 공부를 한 것 같아요. 활동도 하고, 여러 가지 활동이 많았지만 가장 인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건 2006년도에 독일 월드컵 아시나요? 제가 그때 처음으로 해외 패션쇼를 참가하게 되었는데 그때 평생 잊지 못할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는데 제일 먼저

제가 해외 첫 패션쇼를 하러 간다는 흥분됨. 굉장히 축구 때문에 우리나라 모든 분들의 관심이 거기 있었잖아요? 그런 현장에 제가 가서 보기도 할 수 있고, 일적으로 가는 거잖아요? 그런 것에 대한 설렘이 많았어요. 현지에 가서 처음이라 긴장을 많이 했을 거잖아요?저는 보통 궁중복식을 가지고 주로 행사를 하는데 보통 쇼를 할 때는 옷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아요. 그런데 그쪽에서 예고 없이 옷에 대한 설명을 해달라고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옷에 대한 설명을 쩔쩔매면서 옷에 대한 설명을 했을 때에 (상대의 좋은)반응 있잖아요. 


그리고 저에 대한 뿌듯함. 그런 게 굉장히 (인상 깊었고) 그래서 잊지 못하는 거고. 그다음에 행사 끝나고 나서 

우리도 길거리 응원도하고 다녔거든요. 다 빨간 티셔츠. 목에다 빨간 스카프도 메고 하면서 잊지 못하는 게 대한민국 응원을 재미있게 하면서 애국자가 된(느낌을 받았어요) 한국에서의 대한민국과 다른 나라에서의 대한민국은 엄청 달라요. 콧등이 찡하다고 하나? 그런 진한 느낌. 독일 행사는 아마, 그 뒤로 제가 해외 쇼를 많이 다녔는데 그 느낌이 너무 강하게 있기 때문에 다른 행사도 다 좋아하지만 (그때의) 느낌이 별로 없는. 그러면서 제가 제 자신한테 인천공항 들어와서 생각한 게 


'너 정말 너무 훌륭하다, 멋지다'

그러면서 한복에 대한 애착이라고 해야 하나? 감사함이라고 표현해야 하나? 이런 게 굉장히 진하게 있어서 그 뒤로 더 많은 활동을 하게 된 시작이었어요. 그 뒤로 다양한 일들을 많이 해서 오늘까지 온 거죠.

다수의 한복을 주제로한 해외 패션쇼


그때 정말 재미있고 좋았어요. 누가 물어도 그때 이야기는 아마 하루 종일 하라고 해도 할걸요. 그렇게 좋았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해외 행사를 많이 하셨잖아요? 현지 반응은 어떤가요?

실제 반응 이렇게 말하면 뭐하지만 어떤 분은 제가 화장실 갔는데 쫒아왔어요. 제 한복을 만져보고 싶어서. 너무 예쁘게 봤던 거죠. 미국에 갔을 때인데 (해외 패션쇼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게 그 일인데 미국 현지에서 교육하시는 선생님이 전화가 왔어요. "시간이 되면 한 시간만 한복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교육할 수 있는 시간을 줬으면 좋겠다" 그런 간절함. 말하자면 우리가 국내에서는 한복에 대한 간절함이 없잖아요.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제가 전시나 쇼를 했을 때마다 감사의 말을 그쪽에서 많이 하고 좋아하셔요. 그런데 제가 막상 우리 한국에 들어오면 굉장히 냉랭하다고 표현해도 될까요? 그런 걸 많이 느껴서 제가 어떤 생각을 했냐면 '다른 나라에 있는 친구들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에 있는 친구들한테 어떡하면 이걸 일깨워줄까' 그런 생각을 해서 패션쇼를 꼭 밖에 나가서 할게 아니라 국내에서도 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국내에서 여러 패션쇼를 했었어요.

해외 가면 미국의 교수님이 한복을 입으셨는데 최고. 엄청 좋아하세요.


우리가 우리 옷에 대한 긍지를 가졌으면 좋겠는데 그러지 않다고 느낄 때 서운함이 많죠. 외려 반응은 국내보다 해외 쪽에서 좀 더 그렇죠. 그래서 서운할 때가 많아요. 

'이렇게 좋은 옷을 왜 이렇게 홀대를 할까?' 홀대라고 하면 조금 그런가요? 좀 더 우리 한복에 대한 따듯한 시선이 더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열정적인 해외와는 달리 아이러니하게도 국내의 반응은 냉랭하다는 명장님


우리 옷 정말 예뻐요. 굉장히 그 화려함에 반하는 거죠.

(한복은 만든다는게) 사실 일반인들이 생각할 수 없을 만큼의 노력이 들어가는 것도 맞고. 그렇죠. 그래서 전통복식을 공부하려고 하면 이 매장이 작은지 이해가 가셨죠? 그만큼 연구와 재료비에 많은 투자가 되는 거예요. 

한복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보석이나 집이나 땅에 투자하지 아니하고 다(재료나 연구비에 투자해요) 돈이 되고 안되고 가 아니라 내가 좋아서 하는 거라서 그런(힘듦이) 있죠. 일 많이 해서 다 재료비에 넣어놨어요. 


최근에 명장이 되셨습니다. 일반인이나 복식을 배우려고 하는 사람이 명장 타이틀을 취득하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고 어떻게 될 수 있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무형문화재를 하던 명장을 하던 아마도 최소한 30년 이상은 해야 될 거예요. 왜냐하면 무형문화재 하시는 분들을 보면 보통 4~50년이 되어야 그만큼 경지에 오른다는 것은 한복뿐만 아니라 어느 직종을 마다하고 마찬가지일 거예요. 기능 쪽에서는 그만큼 오랜 시간이 되어야만 기술과 곰삭은 맛이라고 해야 하나? 

이런 게 나와야 되는 거거든요. 명장의 경우도 보통은 이렇게 말하거든요. 15년 이상에 기준에 필요한 점수를 가진 사람이 신청을 하게 되어있는데 15년 이상이라고 하지만 명장이 되신 분들을 보면 거의다 30년 이상이에요. 취득 경쟁을 할 때에 많은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바느질 하나만 가지고 명장이 되는 게 아니에요. (해당분야의) 지위향상이라던가 발전을 위해서 노력한 여러 가지를 보거든요. 쉽게 표현하면 저 같은 경우는 산업현장 교수도 있고, 우수 숙련인도 있어요. 그게 왜 필요하냐면 점수를 얻으려고 하면 학생들 지도 같은 걸 해야 하는데 아무데서나 교육해서 되는 게 아니라 기준에 준하는 사항이 있어요. 우수 숙련인이 되면 진로교육을 할 수 있어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어디를 가던 그런 진로지도 교육을 많이 해야 해요. 그리고 한복이지만 특허라던가 디자인, 여러 가지 공모전, 서적, 상을 책으로 250 페이지 정도 한 게 있어야(삭제) 그 정도 분량의 활동이 있어야 돼요. 


그 정도로 여러 가지 일을 했을 때에 자료를 가지고 '이 사람이 명장이라는 타이틀을 줘도 역할을 잘할 수 있는 분인지'를 보기 때문에 쉽지 않아요.  그리고 명장을 뽑는 과정에서 거르고 걸러서 선정이 되는 거예요. 경쟁이에요. 굉장히 경쟁률이 강해요. 어제도 처음으로 명장 되신 분 다섯 분과 모임을 가졌어요. 분야가 다 다르지만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시더라고요.

 

'그 정도 해야 명장이라는 타이틀을 얻는구나'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만큼 힘들다고 하죠. 정말 준비하시는 분들은 그게 꽃이잖아요. 제가 되고 보니까 되기 전날과 된 날의 차이는 굉장히 커요.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하는데 이름은 남겼다.

(명장이 된 후) 제일 먼저 저희 어머니한테 복사를 해서 어머니한테 가져다 드렸어요. 엄마 딸 이런 거 했어.

엄마가 살아계셨다면 너무 많이 좋아하셨을 거잖아요. 그래서 그거 받고 그다음 날 엄마한테 다녀왔는데 부모님은 자식이 잘 되는 게 최고잖아요.


가계 앞에 특이한 게 붙어있어요. 네 저희 선생님. 재작년에 돌아가신 것 같아요. 이렇게 옆에 앉기가 되게 어려웠어요. 왜냐하면 너무 기품 있고 멋진 선생님이신 거예요. 이렇게 선생님 흉내 낸다는 생각조차 못할 때 (교육과정을) 다 수료하고 그다음에 선생님한테 따로 선생님한테 1:1로 공부하러 가서 이수를 했어요. 우리 선생님은 모든 제자들이 선생님을 너무 귀한 분으로 모셨어요.


무형문화재 (故) 박광훈 님과 무형문화재 이수자 이남례 님의 사진


그만큼 그 선생님이 그만한 인품을 가졌다는 이야기죠. 아마 우리 선생님을 나쁘게 이야기하는 분은 없을 만큼 정말 조용하시고  바느질 솜씨도 아주 좋으시고, 누가 선생님에 대해 묻지 않아도 기품이 느껴지는. 그래서 제가 선생님 같은 느낌이 나오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선생님을 보면서 했어요. 제가 선생님 나이 때에 선생님 같은 느낌이 나오려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살고 싶은 게 꿈이었어요.  


2부에서 계속


https://www.youtube.com/watch?v=DvU-ZOE96Qg&t=6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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