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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사이시옷 Jan 23. 2022

18년 고생한 해외생활
그 길은 여러 갈래였다

프로 N 잡러 '스더 언니' 님


청소년기를 중국에서 보냈고

인도에서 한국 대기업의 유통업에서 일을 하다가

프랑스에서 학업을 완전히 마쳤던 18년의 해외 생활이었어요.




학생 때 연대 작곡과에 들어가는 게 저의 꿈이었었어요. 뭔가 폼나 보이고, 그나마 잘한다고 생각을 했었던 게 음악이었죠. 중학교 1학년 때 학교를 마치고 집에 왔는데 엄마가 집을 이렇게 싸고 계시더라고요


"중국 가야 된다"


아버지가 사업을 중국에서 이어나가시길 원하셨어요. 형편이 좋으면 국제학교를 보내주셨고 그냥 뭐 그럭저럭이라면 중국 학교를 보내주셨고 그것도 안 되면 학교를 못 갔고. 이게 반복적이었거든요


중국 학교를 갔는데, 저는 나름 연대 작곡과를 원하던 고상한 음대생 지망생이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비듬이  어깨에 수북이 있고, 왜 발톱이나 손톱을 교실에서 깎는지.. 그런 모습들이 너무 싫어서 귀를 닫았어요.

그렇게 계속 생활을 하다 보니까, 제가 귀를 닫고 문화를 거절하다 보면 그게 제 손해더라고요.

'나한테 실속 있는 걸 찾아야 되겠다' 생각했어요. 


그러자 다른 세상이 보였어요. 

한국의 경쟁하는 입시에 치열하게 공부만 했었는데 염색을 하고, 스타일리시하고, 스타벅스에 가고, 파티를 하고, 거기다가 3개 국어를 막 자유롭게 하는 중국의 생활을 보게 되었어요.


'어? 내가 알던 세상이 다가 아니네'

'연대 작곡가, 그거 아니어도 되겠네'라는 생각을 처음 했었던 거 같아요






나 이렇게 살아도 되나?

인도에 있었을 때 한국 유통 대기업에서 일을 했었는데 중국에서 물건을 소싱해서, 인도 고객에게 파는

핸들링을 했었어요. 그런데 데 대기업에서 생활을 하다 보니까, 몸이 아프게 됐어요.

그때 처음 생각을 했었던 거 같아요


"나 이렇게 살아도 되나?"라는 생각을 처음 했었고 70살까지 내가 이런 대기업에서 일을 하는 선적서류를 맨날 이렇게 만지고,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을 때 대답은 아니었거든요.


'그럼 난 뭘 해야 하지?' 그때가 저의 터닝포인트였던 거 같아요


중국에 다시 가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해 보자.

학비는 벌어야 되는데 당시 제가 할 수 있는 게 블로그 밖에 없었어요.

피아노를 쳐서 업로드를 했는데 그걸 어떤 분이 보시고 '같이 합주합시다'는 제안이 왔죠.

그렇게 정기적으로 호텔에서 공연을 하게 되기도 하고, 미술을 전공을 했기 때문에 미술 칼럼도 쓰게 되고, 그러면서 계속 일이 많아지게 되는 거예요. 자연스럽게 N 잡러 가 된 거죠





N 잡러 가 EU에서 일하게 된 이유  "Why Not?"

'한국 사람이 필요한데 EU 관련된 일을 할 수 있냐?'

국제 교회를 계속 다니다 보니까 sps 프로젝트라고 해서 'EU 국가에서 나오는 농산물을 한국에서 한번 프로모션을 해 보고 싶다. 그런 행사 기획을 하는데 네가 도움이 될 수 있겠느냐?'


Why Not?


EU에서 나오는 농산물들이 안전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프로모션이었는데, 유명하신 이재훈 셰프 님도 섭외를 하게 되고, 아나운서 님도 섭외를 하게 되고 기자회견이나 이런 것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했던 것 같아요.

국가적인 프로젝트지만 예산이 엄청 짜요. 아나운서님도 섭외를 해야 되고, 사진 기사님도 섭외를 해야 되는데, 또 퀄리티 있는 분들의 섭외를 원하세요.


국가 정상들이 오시는 건데, 차나 이런 것들도 다 제가 대절을 해야 되잖아요. 그분들을 모시고 식당에 가는 것도 그렇고, 핸드폰을 한국에서 개통을 해야 된다던지, 긴박한 그 스케줄 안에서 모든 것들을 다 해결해 나가야 된다는 게 좀 어려웠던 거 같아요.


행사가 끝난 후에 셰프님과 출연분 분들께서 국제적인 행사에 연락을 많이 받으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게 뿌듯했어요 제가 도움을 드릴 수가 있어서





그 길은 여러 갈래였다

'차가운 물' 하고 '뜨거운 물'이 동시에 나올 수 있는 그런 집에서 산다라는 것은 축복이에요.

보통 인도에서 생활을 하면 보통 한국 사람들은 좋은 집에서 살아요, 제가 지냈던 곳이 물을 틀면 벌레가 나와요. 그 물로 샤워를 할 수가 없어서 새벽에 일어나서 물을 길으러 가야 해요.


'따뜻한 물을 하고, 차가운 물이 동시에 나오는 곳에서 살고 싶어요' 이게 제 소원이 왔어요


집안 사정이 나아지면서 프랑스에 가려고 하는데 집을 일단 구해야 했는데 출국 3시간 전에 그 집이 사기였다는 걸 알게 됐어요. 당시 저한테는 편도 티켓밖에 없었거든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땅이고, 나를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땅이지만 '거기 가서 죽더라도 죽어야지'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절벽 끝까지 가는 그런 경험을 너무 많이 하다 보니까 이런 경험들이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언니처럼 얘기를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망해봤던 이야기의 썰을 풀죠


중국으로 처음 이민을 가기 전까지는 입시라는 게 정답인 줄 알았어요. 경쟁을 했었어야 됐고, 잘해야 된다고 생각을 했고, 좋은 학교에 들어가야 된다고 생각을 했고, 딱 그냥 정해진 길이라고 생각을 했었던 거 같아요.

힘든 해외 생활이었지만 그런 경쟁에 대해서 이제와 생각을 해 보면 '내가 외국을 갔던 게 다행이다'라고 생각해요. 꼭 1등을 하지 않고, 어떤 일을 그렇게까지 잘하지 않아도 외국에서는 먹고살 수 있는 방법이 굉장히 많아요.


한국은 "넌 이것만 해야 돼"라는 게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한테도 강요가 돼요

내가 잘하는 건 이건대 이건 "나중에 해" 이렇게 미루게 하는 그 사회가 저는 좀 너무 마음이 아파서

조금이라도 이런 경험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 바뀔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어요.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사람들이 비전하면 큰 그림을 이야기하고, 그 목적에 맞는 목표를 세우는 것이 계획이라고 얘기를 하잖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많은 계획을 세웠지만 안 되는 게 더 많았었어요. 비전이란 과연 무엇인가? 계획은 어떻게 세워야 되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했을 때 멀리 있는 것보다는


당장 오늘을 잘 살아 내는 게 비전이더라고요

'나에게 주어진 것을 먼저 하자'라는 것을 비전으로 삼고 있어요


인생에서 중국에 갈지도 몰랐었고, 인도에 갈지도 몰랐었고, 프랑스에서 졸업을 할지는 더더욱 몰랐었어요.

근데 열심히 살다 보니까 그 점들이 하나의 선이 되더라고요





https://www.youtube.com/watch?v=z0sxUvntDY8

본 콘텐츠는 경기도 1인 크리에이터의 지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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