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마지막날과 8월 첫째날을 부산에서 보냈다. 매년 여름과 겨울 부산에 간다. 이만큼 자주, 습관처럼 부산에 가야만 하는 이유는 부산이 편하면서도 새로운 도시이기 때문이다. 부산은 내 고향인 동시에 엄마, 외할머니의 고향이다. 엄마 쪽 가족들은 모두 부산에 뿌리가 있다.
부산이 새로운, 낯선 느낌을 주는 이유는 부산이라는 도시 자체와 나 자신에게서 찾을 수 있다. 인구가 340만이 넘는 대도시 부산은 갈때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비어있던 곳에는 새 건물이 들어서고, 낡은 건물이 밀집해 있던 곳은 비워진다.
동시에 반년에 한번씩 부산을 찾는 '나'도 매번 달라진다. 기대로 부풀어 있는 나, 이런저런 일들로 지친 나, 서울이 답답해 도망쳐 내려온 나 등 부산에서 다양한 나를 만난다.
함께하는 사람들도 매번 달라진다. 혼자일 때도 있었다. 언젠가 부산은 어떤 사람과 잊을 수 없는 시간을 보낸 공간이었다. 또 다른 언젠가 부산은 그 사람을 잊으려고 찾은 공간이었다. 그 여행 둘째날 남포동 어떤 미용실에서 머리카락을 싹둑 잘랐다.
결국 부산은 나에게 '관광'을 위한 여행지가 아니다. 나를 지키기 위해 또는 나를 비우기 위해,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찾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장소를 굳이 찾아간 적은 없었다. 같은 장소를 방문해도 늘 다르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23살 여름의 부산
이번 부산은 조금 달랐다. 새로운 곳을 찾았고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했다. 좋은 친구들과 다녀왔다. 출발 며칠 전 결정한 번개 여행이었다.
작년 겨울 부산을 방문한 나와 며칠 전 나는 많은 부분에서 다른 사람이다. 그 사이 많은 일들이 지나갔고 그 중 일부는 예상치 못한 형태로 마음에 남았다. 예전의 나처럼 그 흔적들을 마냥 외면하지 않겠다 다짐했다. 낯선 장소에 서서, 지나간 것과 남아있는 것을 인정하고 동시에 달라진 점들과 마주하려 했다.
광안리 수변공원
숙소는 해운대 근처였다. 광안리에서 회도 먹고 바다도 봐야지, 하며 친구들과 택시를 잡았다. 기사님은 우리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광안리?'하고 물으셨다. 확신에 찬 목소리에서 세월이 느껴졌다.
기사님은 정치 토론 라디오를 듣고 계셨다. 모든 내용이 친숙하게 느껴지는게 오히려 이상했다. 국회에서 하루를 보내다보니 토론과 논쟁에 익숙해졌다.
옆 돗자리와 거리가 멀다보니 우리끼리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광안대교를 보면서, 파도치는 소리를 들으면서 회를 먹었다.
쓰고 보니 순서대로 시각, 청각, 미각과 관련있는 일들이다. 이런저런 잡생각에서 벗어나서 감각에 집중적으로 에너지를 쏟았다. 평일 내내 감각 같은 건 잊고 있었는데, 수변공원 돗자리 위에서 모든 감각이 되살아났다.
비가 지나간 뒤라 공기가 눅눅했지만 숨을 마시고 내쉴때마다 속이 맑아졌다. 역시 부산, 역시 바다, 이런 생각을 했다.
보수동 책방골목
비프광장, 국제시장은 매번 갔지만 바로 옆에 있는 보수동 책방골목은 처음이었다. 책에 죽고 책에 사는 내가 왜 이때까지 여기를 안왔나 의문이었다.
나에게는 새로운 장소지만 누군가에게 책방골목은 거의 반세기를 함께한 삶의 공간이었다. 좋아하는 소설의 몇십년 전 판본이 눈에 들어왔다. 빛바랜 표지와 오래된 종이 냄새가 광안리 바다가 그랬던 것처럼 감각을 휘저었다.
LP판, 카세트테이프, 종이사전, 제목이 한자로 쓰인 명화집도 눈에 띄었다. 필름카메라를 준비했어야 했다. 20세기와 21세기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책방과 카페를 동시에 운영하는 가게가 있어 들렀다. 바깥과 잠시 단절된 듯 했다. 다음에 올 때는 사고 싶은 책, 찾아내야 할 책 목록을 써와야겠다, 생각했다.
이번 겨울도 여지없이 부산에 오게 될테니까 이 목록 작성은 일종의 숙제인 셈이다. 몇 달동안 천천히 생각해 봐야겠다. 그리고 몇 달을 단단한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그렇게 살다보면 새로운 겨울이 올 거고, 그럼 부산에서 새로운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