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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연 Aug 09. 2020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 – 흰머리

나도 작가다 공모전

30대 빨간 머리와 30대 흰머리. 누가 더 사람의 주목을 받을까? 주목은 똑같이 받겠지만 아마도 주목하는 이유는 다를 것이다. 30살부터 흰머리가 났다. 엄마에게 이유를 물으니 엄마도 머리가 빨리 샜댄다. 자연스럽게 염색을 하게 됐다. 다크 브라운, 와인색 등 다음에는 어떤 색으로 염색해볼까 고르는 재미도 있었다. 하지만 33살쯤 샴푸를 하고 나서 염색을 하는 우를 저지르고 말았으니. (원래 염색은 머리를 안 감은 날 혹은 머리를 감았어도 꽤 시간이 지나고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이유는 샴푸의 성분과 염색 약의 성분이 뭐가 안 맞아 두피에 심한 자극을 주기 때문이었다. 그 날 나는 머리를 감고 염색을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염색하면서 울음을 터뜨린 최초의 30대가 되었고 염색 후 두피의 딱지가 일주일 내내 떨어지는 공포를 경험해야 했다. 그런 일이 있고 나니 스스로에게 묻게 되더라. 누구를 위해 염색을 하고 있나.


그 뒤로 염색을 그만뒀다. 1년 정도는 힘들었다. 30대 중반의 처자의 흰머리란 세상 사람들에게 쉽게 볼 수 없는 기이한 현상과도 같았기에 처음 만나는 사람이면 시선이 머리에 가 꽂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궁금한 것을 못 참는 사람들은 대놓고 흰머리냐고 물어보았고, 궁금해하지만 실례일 것 같아서 물어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빛에도 호기심이 가득했다. ‘왜 저러고 다닐까.’ ‘왜 염색을 하지 않았을까.’ ‘저건 새치일까, 희머리일까 아니면 브릿지일까.’ 일반적이지 않은 비주얼은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하지만 흰머리가 갖는 부정적인 이미지는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위한? 염색을 종용하도록 만들었고 그러한 것들이 은근히 스트레스였다. 하지만 일단 염색을 안 하기로 마음먹었으니 부정적인 이미지에 함몰되지 않도록 나 스스로를 지키는 것도 나의 몫이었다. 그래서 나의 흰머리를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안 해도 크게 불편하지 않더라구요. 돈도 굳고. 염색약 좋지도 않은데 환경 오염도 덜 시키구요.’ 라며 방어력을 펼쳤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어느덧 염색을 안 하고 지낸 것이 7년이다. 33살부터 40살까지 안 하고 있으니 꽤 오래 버텼고 이제 적응도 많이 됐다. 내 주변 사람들도 이제는 내 스타일이라고 받아들였고, 이제 흰머리가 나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가 되서 그런 것도 있다. 단 한 명, 엄마는 결혼하지 않은 딸이 흰머리 숭숭 난 채로 돌아다니는 것을 탐탁치 않아하신다. 그래서 가끔 엄마의 머리 염색을 도와줄 때면 ‘너도 염색 해’라는 말을 하곤 하신다. 흰머리를 염색하는 이유는 흰머리가 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싫기 때문이다. 실제 엄마 나이 대의 분들은 실제 나이보다 더더 늙어 보여서 염색하는 것도 있겠지만 나는 아직 그렇게 더더 늙어보이는 경험은 없는지라 염색을 하는 것으로 드는 시간과 에너지를 생각하면 지금의 모습이 나쁘지는 않다. 게다가 너무 아무렇지 않게 다니다보니 ‘흰머리 브릿지’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고, 젊은 사람들은 부러워하지 않지만 아주머니들의 칭찬과 지지를 종종 받는다. ‘헤어 스타일이 참 멋져요!’ 아주머니들의 오지랖은 코끼리도 춤추게 할 것 같다.


우리는 살면서 나를 위한 것인지 남을 위한 것인지 고민할 틈도 없이 살아간다. 그러다 문득 어떤 계기로 멈춰서서 내가 왜 이러고 있지?라는 각성을 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그 때 고민하고 고민의 결과물을 밀어붙이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다 자기만의 선택이 있으며 선택에 대한 납득을 스스로 할 수 있으면 된 거라고 본다. 염색하지 않음을 선택할 수 있었던 건 내가 정규직 직장을 다니지 않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강의도 하고, 미팅도 하고, 책도 쓰면서 만들어 온 나의 모습이 흰머리와 잘 어울린 것이 가장 크다. 30살 때부터 직장에 소속되지 않고 내 삶을 주체적으로 그려왔다는 자부심과 남다른 길을 선택해 맨 땅에 헤딩하듯 버틴 것이 외적으로도 나를 단단하게 해주었다. 이제 나는 마흔 살이 되었다. 여전히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겠지만 지금 내 모습이 좋은 것이 어느 동안 비법보다 훌륭한 마음가짐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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