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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연 May 20. 2016

성공보다 실패가 각광받는 시대가 온다.

실패의 짜릿함을 이야기할 때 - 2012.05 작성

내 나이 서른두살. 성공하기에 빠른 나이인가? 아니면 늦은 나이인가? 자기다운 길을 가는 가는 사람들을 보면 분명 '젊은 축'에 속하지만 주변의 청년 창업가들을 보면 20대가 수두룩하니 그렇다고 빠른 건 아닌 듯하다. 28살이라는 나이에 직장을 그만두고 내 일을 시작했다는 주변 사람들의 용기어린 시선(나는 정작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은 나를 자신감에 차게 만들었고 소소하지만 대학생 때나 직장다닐 때 느껴보지 못했던 스스로 어떤 것을 기획하고 해내는 것에 대한 성취는 뿌듯함을 넘어 가능성에 대한 무한 동력으로 작용했다. 그래서 난 겁도 없이 들이댔고 선택받았으며 나름대로 열심히 한 블로그의 결과로 능력 이상의 경험을 해 보기도 했다. 이것 또한 처음 경험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처음'하는 것에 스스로 가혹한 잣대를 대지 않는 이상 두번째 할 때 더 잘하면 될 뿐. '처음'에 대해 큰 성과를 바라는 것에는 약간의 무리는 있다. 이런 근거없는? 관대함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건지도 모르겠다. 


작은 성취에 대해 실패와 성공의 잣대를 들이대기 어렵다. '칼럼'을 처음 요청받았을 때도 클라이언트가 '요청'한 기획이 있으면 최대한 그 기획에 맞추면서도 내 개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사실, 나 같이 기사 작성을 정식으로 배우지 않은 사람에겐 '틀에 박히지 않는 자유스러움'이 강점이기도 했다. 기사를 요청한 쪽이 그 자유스러움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마감 기한만큼은 꼭꼭 지켰기에 암울하게도 '폐간'되기 전까진 기사를 요청받았었다. 방송은 생방송이 아닌 이상 '재촬영'과 '편집' 기술이 난무하기에 물론 방송 경력과 능력이 있으면 금상첨화겠지만 '처음'이라 해도 그렇게 떨 필요는 없다. 물론 나도 처음에는 엄청 떨었다. 가정 집에 가서 스타일링해주는 방송이었는데 다행히 집과 가까운 거리였고 촬영도 1시간만에 끝났다. 방송은? 한 5초 나갔다. 3시간 촬영하면 한 15초 나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처음 방송할 때는 신기하기도 했고 재미있기도 해서 룰루랄라했었는데 어느 정도 경험이 쌓여서 그런지 PD와 작가들의 배려없음에 화가 나기도 했다. 물론 촬영하는 것을 지켜보면 같이 일하는 작가와 PD 사이에도 소통이 잘 안 되는데 섭외는 작가가 한 출연자를 지방 촬영과 야근이 많은 PD들이 무슨 에너지가 남아돈다고 신경쓰겠는가? 나중에는 그러려니했다. 당연히 '인지도'를 알릴 필요가 있는 무명 출연진에게는 출연료도 없다. 


그렇게 칼럼 요청과 방송 촬영을 할 수록 본질에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사실이다. 칼럼은 글쓰기가 재밌어서 쓰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미디어와의 접촉은 커리어를 위해서도 있지만 홍보의 수단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본질에 충실하고 싶어도 부족한 '일'에 대한 갈망은 '미디어'에 기댈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만들어냈다. 미디어에 나온다고 금방 전세가 역전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유명세'는 나에게 성공은 이렇게 다가오는 구나 라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내가 갈팡질팡한 부분에 있어서 브랜드를 뾰족하게 만들지 못한 것이 이런 부분에 있어서의 뚝 끊김으로 작용했지만 어떤 사람이 알려지는데는 많은 시간과 인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사람의 능력이나 내공에 비해 허울만 부풀려 졌다면 금방 사라질 수도 있겠지만 대중을 설득하는데 있어서는 미디어의 힘만한 것이 없기에 공인인증 시스템처럼 너도나도 방송출연의 기회를 얻고 싶어하는 것도 있다. 처음이라면 무조건 하는 것이 좋다. 그 다음부터는 소신대로 행동할 것. 빨리 유명해지고 싶다면 소신보다는 다다익선을 추구하는 것도 고려해볼 일이다. 나의 경우 '할까말까' 고민하다 거절했는데 다시 하게된 일은 결국 끝이 안 좋았다. 


빨리 성공한 20대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그들은 블로그나 트위터, 페이스북을 통해 여기저기서 등장할 것이다. 앞으로는 더더욱. 그것이 자뻑일 수도. 정말 공인된 성공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린 그것의 진실여부를 파헤치기 어렵다. 예전의 책들을 보면 성공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지의 노하우만 죄다 적어놓았다. 내가 그 사람이 아닌데 어떻게 5시에 일어날 것이며, 내가 산을 싫어하는데 매일 2시간씩 등산을 할 것인가? 타인의 성공비법을 따라하다간 금방 지쳐버린다. 그런 후 난 성공할 수 없는 운명인가봐 자책한다. 자기계발서는 사람들의 자기계발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자기계발에 실패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란 생각도 든다. 성공만을 적어놓은 자기계발서. 성공만을 이야기하는 강연가들. 이제는 지겹다. 우리는 어쩌면 성공에서 배우기보다 실패에서 배우는 것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성공한 사람들은 실패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해줘야 하며 그것을 듣고 저 사람도 저렇게 많이 실패했는데 성공하기 위한 실패는 당연한 거구나란 인식을 심어줘야 할 것이다. 지금의 우리는 성공을 위해서는 80%의 성공과 20%의 실패를 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데 몇일 전 광고전문가 서경덕 교수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이제까지 실패와 성공을 어느 정도 한 것 같냐고. 대답이 참 마음에 든다. '한 30%의 성공과 70%의 실패를 한 것 같다. 실패를 통해 성공의 확률을 높이는 중이다.' 전문가 역시 50:50도 아니고 무려 성공의 2배 이상을 실패에 쏟는데 일반인인 우리는 그만큼도 실패하지 않고 성공을 원한다. 다음 생애 천재로 태어나는 수밖에 없다.


한 2년 전 책을 처음 쓰고자 목차를 정리했을 때 '실패'에 대한 이야기도 쓰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1인 출판을 도와주는 분이 사람들은 '성공'에 대한 이야기만 듣고 싶어할 뿐, '실패'에 대한 이야기는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란 답변을 하셨다. 그 당시에는 흠 그런가?하며 수긍했지만 난 갈수록 '실패'가 각광받는 시대가 올 거란 생각이 든다. 성공에 대한 스토리는 이제 지겹다. 게다 약간 천편일률적으로 마케팅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임파서블이 파서블이 되는 순간이다.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는 순간은 짜릿하다. 전등을 갈다가 위험할? 뻔했던 순간처럼 손가락으로 들어와 발가락으로 관통하는 전율이 인다. 하지만 그 전율도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기 위해 실패했던 수많은 순간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성공할 뻔했던 짜릿한 실패들이 모여 지금의 성공이 된 것이다. 이제는 실패의 짜릿함을 이야기할 때다. 실패없이 성공한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아마 당사자는 그것을 실패가 아니고 성공을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여겼을 테지만 과정이든 뭐든 성공을 위한 중간과정만큼 매력적인 것도 없다. 김밥을 처음 마는 사람은 발에 김을 놓지 않고 밥을 얹는다든가, 재료의 양을 너무 많이 넣어서 옆구리가 터진다던가, 햄을 빼먹는다던가 하는 자질구레한 하지만 나름 중요?한 실패를 한다. 그러한 과정을 몇 번 겪다보면 완벽하게 김밥을 말아먹을 수 있다. 역시 실패없인 성공도 없다. 앞으로 실패가 더욱 주목받아야 하는 이유다. 실패에 대해 더 관대해지자. 나에게도, 주변 사람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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