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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연 Sep 20. 2022

#7 (나약한 인간에게) 지름신이란 무엇인가?

멋쟁이들에게 멋쟁이의 계절(4계절 모두 멋내기 좋은 날~)이란 없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멋 내기 좋은 계절은 단연 가을이다. 이유는 덥지도 춥지도 않기에 적당히 가릴 수 있으며 적당히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노출이 너무 많으면 사람들은 몸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반 포기 상태로 옷을 입으며 너무 추우면 추위 때문에 멋을 낼 엄두를 내지 못한다. 영하로 내려가면 그냥 따뜻한 게 (나에게는) 최고다. 그래서인지 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지름신이 바빠지는 계절이기도 하다. 



백화점에 예쁜 물건이 없어 다행인 건 지름신을 소환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납득할 만한 금액에 괜찮은 아이템도 꽤 많았던, 정확히 말하면 패션 어플이 계발되기 이전의 - 대체 얼마나 옛날인거야?) 예전의 백화점에서 사전 쇼핑을 하다보면 어느새 내 옷을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었다. 그러면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의뢰인의 옷을 고르기 시작했는데 요즘은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어쩌면 옷에 대한 욕망이 예전같지 않아서 그럴지도, 어쩌면 40대에 맞는 옷을 커버가능한 가격대로는 더 이상 백화점에서 찾을 수 없어서 그럴 수도 있다. 고정 수입이 없는 프리랜서에게 백화점의 브랜드 옷들은 너무나 먼 그대랄까. 



하지만 쇼핑 어플은 다르다. 아울렛에 직접 가지 않아도 쇼핑 어플은 그들만의 아울렛 카테고리를 만들어 재고떨이에 열심이다. 소비자는 다소 저렴(하지만 원래 가격이 워낙 높아 50% 할인을 해도 고가다)한 가격에 제품을 겟하고 기업은 재고를 다 털어버릴 수 있어 둘 다 윈윈이다. 그래서 [가을 아우터]로 들어가서 구경하다 보면 1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옷에 관심이 없고, 나에게 어울리는 옷을 잘 모르는, 옷을 살 때 무엇을 봐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은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누구에게는 책이, 누구에게는 그릇이, 누구에게는 식물이, 누구에게는 그림이, 누구에게는 피규어가 될 것이다.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게 되는 순간. 



하지만 나에게는 이미 여름과 가까운 선선한 가을에 입는 재킷이 2개가 있고 겨울과 가까운 쌀쌀한 가을에 입는 점퍼가 2개가 있다. 참, 17년에 코엑스에서 사전쇼핑하다가 구매한 마시모두띠의 재킷도 있구만. 하지만 너무 예뻐 구입한 재킷은 갖고 있는 가을 아우터 중에 가장 고가임에도 가장 적게 입었다. 이유는 단정한 느낌의 크롭 재킷을 입을 일이 없음;; 그래도 친구 결혼식 때 요긴하게 입었다. 그렇게 총 5가지의 아우터(봄/가을 같이 입음)가 있으니 개수는 충분하다. 하지만 늘 그렇듯 우리에게 개수는 중요하지 않다. 심리적 결핍이 중요한 거지. 개수가 부족한 것보다 심리적 결핍(원츠)이 작동할 때 지름신은 강림하신다.



사실 갖고 있는 옷이 다 오래되다 보면 지름신이 강림할 수밖에 없다. 가장 최근에 구매한 퀼팅 점퍼가 19년 구매로 4년째니까 슬금슬금 새로운 옷이 입고 싶어지는 것이다. 게다 나는 귀차니즘이 강해서 평소에 캐주얼하게(간혹 험블하게) 입고 다니기는 하지만 예쁜 옷을 좋아하는 기본 성향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런 기질로 인해 다른 사람이 입었을 때 어울리고 자신감 뿜뿜할 만한 옷을 추천해주는 일을 좋아하는 거고. 그래서 고백하건대 내가 이번 가을에 사고 싶은 아이템은 3가지다. 청바지, 셔츠, 가을 재킷 또는 코트. 하지만 청바지와 셔츠 모두 결제라인까지 갔다가 취소했다. 아직 완벽한 가을(더위를 많이 타 아직 반팔 선호)이 되지 않았는데 미리 사는 것은 나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름신과의 밀당이다. (게다 대체 아이템이 있어 한 번 더 고민하기로 했다)



적은 아이템으로 충분하게, 오래오래 멋스럽게 입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의 지향점이고 나 또한 그런 옷생활을 지향한다. 그리고 이런 습관은 옷을 더욱 신중하게 구매하도록 한다. 잘 안입게 될 옷을 거르고 잘 입을 옷들만 선별해서 채우는 것. 옷에 신경쓰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이런 패턴이 필요하다. 나이가 들수록 옷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을 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옷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내 마음에 드는 정도로 스타일을 구현하는 것. 그것은 아이템 자체를 잘 채워야만 가능한 일이다. 지름신은 저 아이템을 사야만 내가 원하는 내가 될 수 있다며 부추긴다. 멋진 나, 마음에 드는 나는 외면의 만족에서 오기도 하지만 본질적인 결핍은 자아의 구멍에 있다. 구멍난 자아를 옷으로 메울 수 있을까?


전문가가 알려줘야 하는 것 아니냐구? 자아는 내면과 외면 두 가지 모두로 이루어져 있다. 외면을 채우면 외적 만족도는 올라가고 내면을 채우면 내적 만족도가 올라간다. 겉을 바꾸는 일은 상대적으로 쉽고 빠르다. 속을 바꾸는 일은 시간이 걸린다. 빠른 승부를 보고 싶은 우리는 외면의 만족감을 채우지만 외면의 만족감을 채우고 나면 내면의 구멍이 소리친다. '저기요, 아직 뚫려 있거든요?' 그러면 내가 메우고 싶은 자아의 구멍을 들여다본다. 외면의 구멍은 내면의 구멍으로 이어지는 톨게이트다. 그래서 지름신과의 조우는 숨겨진 구멍을 찾기 위한 시작일 수 있다. 일단 보이는 구멍 먼저 메꾸고, 그 다음에 어디가 뚫렸는지 잘 찾아보길! 그러고보면 지름신은 내면의 구멍으로의 안내를 돕는 착한 신이 아닐까? 



글쓴이 이문연

옷문제 해결 심리 코치

행복한 옷입기 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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