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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연 Sep 29. 2022

#10 (30대부터) No염색 & 흰머리란 무엇인가?

요즘 여동생과 친구들이 흰머리에 대한 고충을 털어놓는다. 그들보다 10년 일찍 흰머리를 경험한 나로써는 반갑?기 그지 없는 일이다. 어서오게나- 웰컴 투 흰머리 월드! 30대 초반 정확히는 31살쯤부터였던 것 같다. 원래도 염색을 즐겨 하는 편이었는데 흰머리가 나니 한 2년 동안 꾸준히 염색을 했던 것 같다. 초코 브라운, 와인 브라운, 퍼플 브라운 등등. 하지만 평생 이렇게 염색을 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좀 끔찍했다. 염색하는 비용도 비용이었지만 미용실에 앉아있는 시간하며 염색약으로 인한 두피 통증까지! 아직 30대 초반인데 남은 50년(80살까지 산다고 가정할 경우)을 이런 삼종세트와 함께 해야 한다구?!!



사실 No염색의 시작은 염색에 대한 불편도 조금 있었지만 스스로에 대한 테스트가 컸다 그 당시 외적 자존감에 관심이 많아 흰머리가 나의 자존감에 어떤 영향을 줄지 궁금했다. 그래서 스스로 테스트를 해보기로 했다. 나는 과연 자존감이 낮아질 것인가, 자존감을 유지하게 될 것인가. 그 당시 내가 듣고 있던 글쓰기 수업에는 40대 여성분들이 꽤 있었는데 그 중 10% 정도도 염색을 해서 어두운 머리색을 유지하는 중이었다. 그걸 어떻게 알게 되었냐면 시간이 지났을 때 그녀들의 정수리에서 희끗희끗한 흰머리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블랙 앤 화이트 룩은 시크하고 도시적이며 세련된 감성의 상징인데 어째서 머리카락에서는 그 느낌이 나지 않는 것인가?!! 그녀들의 머리를 보면서 다짐한 것이기도 하다. 염색을 하지 말아보자고 말이다. 



처음 1년이 가장 힘들었다. 흰머리가 가장 적은 시기이기도 했지만 흰머리는 빠르게 영토?를 확장해갔다. 보는 사람마다 흰머리가 왜 이렇게 많아졌냐며 물었고, 덤으로 왜 염색하지 않냐고 물었다. 첫번째 질문에는 유전의 힘에 굴복했다는 대답을 했으며 두번째 질문에는 염색약으로 이 세상을 더럽히기 싫었다는 다소 거창한 거짓말로 응수했다. 원래도 만나는 사람이 많지 않아 몇 번의 모임을 거치고 나니 더 이상 저런 질문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 첫 만남에서 흰머리 어쩌고 질문하는 사람은 잘 없었기에(하지만 나는 느낀다. 그들의 시선이 내 눈과 내 머리카락을 번갈아 보고 있다는 것을) 1년을 잘 보냈던 것 같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나니 흰머리로도 꽤 살만하다고 느껴졌다. 그렇게 10년 넘게 흰머리를 고수하는 중이고, 이제는 누가봐도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흰머리가 많아졌다.



개인적인 느낌일 수 있지만 몇 년전 부터 흰머리를 염색하지 않고 다니는 여성이 더 많아진 걸 느낀다. 예전에 버스를 타면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들의 머리카락도 까맣거나 갈색이거나 했는데 요즘은 할머니들은 할머니대로, 4,50대는 또 그들대로 No염색을 유지해 동지애를 느낌과 동시에 나만의 시그니처(남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할)가 사라지는 것 같아 약간 아쉽다. 나는 이것이 남들 눈을 신경쓰지 않는 시대의 흐름이 있다고 보지만 강경화 전장관이나 배우 문숙의 영향도 있다고 보는 편이다. 나이 들어서 염색도 안 하고 자기 관리를 안 하는 것이라고 보는 시선에서 이제는 흰머리를 자연스럽게(물론 그 분들의 진짜 속내는 모르지만) 받아들이며 나름대로의 스타일로 고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만한 롤모델이 등장한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그들을 따라하는 건 무리일지라도 그들의 프런티어 정신은 높이 산다. 흰머리가 저렇게 분위기 있을 수가 있다니!



사실 이 글에서 주장하고 싶다. 강경화 전장관이 2017년부터 외교부 장관을 했지만 나는 30대 초반인 2012년부터 흰머리였으니 그녀에게 영감?을 받은 건 아니라고. 그렇게 흰머리를 고수하다가 딱 한 번 머리에 검은 칠(마스카라처럼 머리에도 바르는 염색약이 있더라. 물론 실제 염색이 되는 게 아니므로 샴푸하면 다 지워짐)을 했는데 언니의 결혼식에서였다. 영원히 사진으로 박제될(하지만 한 번 다시 볼까말까한) 결혼식 사진에, 게다 모든 인맥이 총 동원되어 참석하므로 나 또한 기꺼이 검은 머리로 변신해주었다. 그 때 이후로 계속 흰머리로 살 수 있는 이유는 어쩌면 내가 회사에 소속되어 있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 스스로 흰머리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해서인지 공적으로 일을 진행한 모든 곳에서 흰머리를 문제삼지 않았다. 



당연히 강의할 때도 내츄럴하게 한다. 어차피 강의할 때는 '선생님' 마인드로 하기 때문에 수강생이 40세든, 50세든, 60세든 개의치 않는데 어쩌면 흰머리 덕분에 좀 더 그녀들과 친근?해졌을 수도 있다. 가끔 흰머리가 어떻게 그렇게 '예쁘게 났냐?'는 신박한 칭찬을 듣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기분이 좋으면서도 의아하다. 예쁘게 났다는 건 뭘 말하는 것일까. ㅡㅡ;; 엄마에게 물려받아 흰머리가 일찍 났지만 엄마는 염색을 하고 딸은 염을 안 한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씩 염색하는 엄마는 피곤하고 염색에서 자유로운 딸은 너무 편하다. 통념적인 비주얼을 포기하고 자유를 얻은 셈이다. 



흰머리가 나면 당연히 염색으로 가려야 하는 시대는 지났다. 개인의 자유가 더욱 존중받고 타인의 오지랖의 규모는 점차 줄어들었다. 물론 내가 어떤 모습을 하던 그 모습을 나로 받아들이고 긍정할 수 있을 때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나는 늘 시선을 받는다. 지하철의 아주머니로부터, 길에서 지나가는 어린이로부터, 같은 엘리베이터에 탄 아저씨로부터. 얼굴과 머리색의 싱크가 (아직은) 안 되니 놀라서 쳐다보는 것이리라. 그들 각자의 이유야 어떻든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은 염색하지 않는 것이 편해서 이렇게 다니고 있지만 죽기 전에 애쉬그레이로 한 번 염색해보고 싶어 염색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중요한 건 그들의 시선이 내 삶에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렇게 흰머리와 사이좋게 지내는 중이다. 흰머리가 노화의 상징이라지만 흰머리가 나고부터는 '노화'를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그냥 검은 머리보다 좀 더 잘 빠지는 머리라고나 할까. 방바닥에 떨어지면 찾기 힘든 머리라고나 할까. 30대에 테스트 해본 자존감에 대한 결론은 무엇이든 자기 아이덴티티로 긍정체화되면 자존감에 나쁜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것이든 부정체화된다면 스스로의 자존감을 깎아먹는 일이 될 것이고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신경이 쓰일 것이다. 세상을 좀 더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는 부정체화의 방향을 긍정체화로 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제일 중요하지, 누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본다. 나는 이제 흰머리와 점점 싱크가 맞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다. 남들의 시선은 줄어들겠지만 나는 여전히 나대로 살아갈테니 검은 머리로 살든, 흰머리로 살든, 파뿌리 머리가 되든 노 프로블럼이다!



글쓴이 이문연

옷문제 해결 심리 코치

행복한 옷입기 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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