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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연 Oct 06. 2022

#12 (여성들에게) 관대함이란 무엇인가?

우리 동네에는 유일한 여자 마을버스 운전기사님이 있다. 운전기사님을 성별로 구분하고자 '여성'을 붙인 건 아니지만 여자 운전기사님은 다른 남자 운전기사님들과는 좀 다르다. 남자 승객들이 이런 차이를 아는진 모르겠지만 여자 승객들에게 물어본다면 아마 80%는 여자 운전기사님을 선호할 것이다. 이유는 1) 약자라고 하대하지 않는다. 2) 합리적인 화를 낸다. 3) 믿음?이 간다. 이다. 그렇다고 모든 남자 운전 기사님들이 별로인 건 또 아니다. 하지만 일부 남자 운전 기사님들은 어떤 상황에 닥쳤을 때 상대방이 할머니, 아주머니나 아이들인 경우 반말을 하거나 언성을 높이기 일쑤다. 성인 남성이었어도 그렇게 큰 소리를 냈을까?


여자 운전 기사님이 좋은 이유는 운전 외의 것들이 승객을 편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운전을 하다가 화가 난다고 욕을 하거나 운전을 거칠게 하지 않는다.(가끔 화가나면 그게 운전으로 느껴지는 기사님들이 있는데 그건 정말 위험한 거라고 생각한다) 비교군이 이 여자 기사님밖에 없기 때문에 이런 성향을 남,여의 차이라고 보는 것은 아마 위험할 것이다. 기억에 남지 않아서 그렇지 남자 기사님들 중에도 괜찮은 분들은 있다. 그래도 여자 기사님을 보면서 좀 더 여자 기사님이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뚜벅이는 마을 버스를 자주 이용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 좀 더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주는 기사님이 좋기 때문이다.


오늘은 마을 버스 특집인가. 또 마을버스 속 이야기를 해보면, 가끔 마을 버스에서는 도착지를 물어보는 승객이 있다. 대부분이 5,60대 아주머니들인데 특이한 점은 기사님한테 묻지 않고 가까운 자리의 여성들에게 묻는 것이다. 그러면 물음을 당?하지 않은 근처의 아주머니들이 하나둘 이야기를 보탠다. '거기 가려면 OO 정류장에서 내리면 되요. 한 4정거장 남았어요.' 어떤 때는 버스를 잘못 탄 아주머니에게 길을 알려준다. 8800번을 탔어야 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 아주머니는 8100번을 탔다. '아이구 잘못탔네.' 이러면서 안절부절 못하는 아주머니에게 건너편 자리의 아주머니가 '다음 정류장에 내려서 지하철 타면 한 번에 가니까 나랑 같이 내려요.'라고 하신다.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의 성비를 조사해본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남학생들이 자리를 양보하는 건 어쩌다 봤지만 남자 어른이 자리를 양보하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할머니나 할아버지에게 자리를 가장 잘 양보하는 사람들 역시 아주머니들이다. 그녀들의 선한 오지랖이 사회의 윤활유같다는 느낌이 들면서도 때로는 유교 문화로 인해 살아온 방식(남자는 대우받고 여자는 헌신하는)이 사회적인 배려로 표현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씁쓸함도 공존한다. 그래서 나 역시 나이 든 여성들을 보면 엄마가 먼저 생각나고 그녀들이 약자인 것도 있지만 누군가의 엄마라는 마음에 자리를 양보한다.


강의를 하면 자신의 장점에 대해 발표하거나 자기 옷을 가지고 앞에 나와서 이야기를 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러면 여성들은 자기의 장점을 발표할 때는 많이 부끄러워하고 이런 걸 이야기해도 되나 하는 표정으로 발표하면서도 다른 수강생이 발표하면 고개를 끄덕이며 장점을 하나둘씩 보태준다. 그래서 본인에게 본인의 장점을 적으라고 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봤을 때 어떤 점이 장점인지 롤링페이퍼처럼 하나씩 적어달라고 하는 것이 훨씬 좋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녀들의 관대함은 타인에게 한정이다. 코칭을 하면서도 느끼는 거지만 꽤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몸과 자신에게는 냉정한 편이다. 타인의 뱃살에 그 정도는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뱃살은 용서할 수 없다. 타인의 비주얼에서는 작은 장점도 찾아내는 정성을 보이지만 자신의 비주얼에서 찾은 작은 장점은 초라하고 옹색하다 느낀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생각을 깨는 것에 많은 공을 들인다. 남에게 관대한 만큼 스스로에게도 관대하라고. 누구나 못난 부분은 갖고 있지만 그 부분에 대해 너무 야멸차거나 야박할 필요는 없다고 말이다. 어쩌면 그들이 스스로에게 야멸차게 구는 이유는 남들로 하여금 '그 정도면 괜찮아.'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가 아닐까.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지만 쓰담쓰담 훈련은 안 된 그런 말들. 타인으로부터 나의 장점을 듣는 훈련은 그래서 더욱 필요하다. 내가 나에게 해주지 못하니 타인으로부터 들었을 때 '내가 그런 점도 있구나'를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물론 이런 게 잘 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필요없다) 그래야지 약간의 자신감과 함께 새로운 스타일(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약점에 매몰되지 않는)을 시도하게 된다.


예전에 퇴직한 남성을 대상으로 스타일 워크숍을 기획했었는데 모객이 안되어서 무산되었지만 담당자분의 우려가 기억에 남는다. 내가 하는 모든 강의나 워크숍은 수강생끼리 이야기를 많이 한다. 한국의 5,60대 남성들은 여성에 비해 이런 훈련이 한참 덜 되어있다. 자랑이나 자존심을 내세우는 이야기는 잘 할 수 있어도 솔직한 자기 이야기나 타인에 대한 칭찬을 잘 할 수 있을지는 우려를 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행이 되었다면 신기한 액티비티(과연?)를 주도할 뻔 했겠지만 퇴직한 남성들을 한 자리에 모으다니(과연?)! 무산될 수밖에 없는 기획이 아니었나 싶다. 남성들에 비하면 여성들은 훨씬 관대한 것이 맞다. 그녀들은 다른 여성에게 관대하고, 아이에게 관대하며, 노년에 관대하다. 이제 자기 자신에게만 조금 더 관대하면 된다.


글쓴이 이문연

옷문제 해결 심리 코치

행복한 옷입기 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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