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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연 Oct 19. 2022

#17 (옷장 발란스를 위한) 쇼핑 리스트란 무엇인가?

쇼핑 코칭을 할 때 의뢰인과 함께 쇼핑 리스트를 짠다. 말 그대로 그 계절에 필요한 아이템들을 목록화하는 것인데 쉽게 비교하자면 장 보러갈 때 냉장고에 채워야 할 목록같은 것이다. 내가 냉장고 살림을 본격적으로(해본 적은 없지만) 하게 된다면 일주일치 식단을 미리 생각한 뒤에 그에 맞는 장을 볼 것 같은데 위와 머리는 동상이몽인지라 계획대로 될 리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그렇게 해야 버려지는 식재료를 최소화할 것 같다. 쇼핑 리스트 역시 옷장 속 소외?되는 아이템을 최소화하기 위한 실천이다. 물론 쇼핑을 하다 보면 이것도 예쁘고 저것도 예뻐서 이것저것 장바구니에 담게 되지만 그럴 때마다 정신줄을 놓치면 안 된다. 그래야만 옷장 속 아이템을 정리하면서 '대체 이건 왜 샀는지 전-혀 기억이 없다'라는 쇼핑기억상실증을 고칠 수 있다. 사실, 접신해서 기억이 없는 거다. 지름신과의 조우.


그런데 이 쇼핑 리스트란 것이 습관이 되어 있지 않다보니 생각보다 뭘 사야할지 모르는 분들이 있더라. 왜 안그렇겠는가? 지금까지 편한 것만 사고, 옷이 없다고 생각될 때 즉흥적으로 사고, 누가 예쁘다고 해서 샀다면 스스로 쇼핑 리스트를 짜는 일은 '지금 배가 고픈데 뭘 먹고 싶은지 생각할 겨를이 어딨어?!! 당장 눈에 보이는 걸 주문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갈구한다. 제발 머스트해브 아이템을 알려주세요.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란, 반드시 갖춰야 할 기본템 리스트를 말한다. 그러니 '머스트 해브 아이템을 사면 옷고민이나 코디 걱정같은 건 하지 않겠지?' 혹은 '사놓고 안 입게 되는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겠지?' 등의 사고로 이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라 하더라도 변주된 디자인이 얼마나 많은가? 예로 트렌치 코트만 하더라도 트렌치 코트가 봄이나 가을 휘뚜루마뚜루 입기 좋은 아우터인 건 맞지만 견장 달리고 허리 묶는 클래식 스타일은 요즘 잘 입지도 않을 뿐더러 그런 스타일이 어울리는 이미지도 대체로 한정적이다. + 화이트 셔츠 포함


쇼핑 리스트를 짤 때는 기본적으로 옷장 속 기본템에 의거해 짜지만 라이프 스타일을 반영해야 한다. 가을 아우터는 3가지에서 4가지 정도면 되는데 갖춰 입을 일이 없다고 점퍼만 4종류를 갖고 있다면 세련되고 깔끔한 느낌으로 입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니 쇼핑 리스트를 짤 때는 우선 러프하게 신발 1, 겉옷 1, 상의 1 이렇게 정리한 후 그 다음 내가 갖고 싶은 이미지/분위기/느낌을 내려면 어떤 품목을 채워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운동화밖에 신을 일이 없고 운동화만 신고 싶다면 같은 운동화라 하더라도 심플하고 깔끔한 디자인의 운동화를 채울 경우 다른 느낌을 낼 수 있고, 편하게 입고 싶어 점퍼만 고집했어도 재킷이나 코트도 얼마든지 편한 디자인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옷장 속 나의 니즈와 취향을 파악한 후 내가 이동하고 싶은 스타일로 가기 위해서는 어떤 품목을 선택해야 하는지 품목의 변화(이동)를 고민하는 것이 바로 쇼핑 리스트를 짜는 일이다.




어떤 분들은 옷에 비해 신발이 많고, 어떤 분들은 이너(상의와 하의)에 비해 겉옷이 많다. 어떤 아이템을 더 많이 갖고 있냐 하는 것에 정답은 없지만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간 균형잡힌 식단이 있듯, 균형잡힌 옷장템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단연 이너가 많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겉옷이나 신발은 세탁을 자주 하지 않지만 우리 몸에 닿는 옷은 세탁을 많이 하므로 갈아입는 횟수와 코디 조합을 생각하면 이너를 제일 많이 갖고 있는 것이 맞다. 한 계절에 입는 상의와 하의 개수의 합이 신발이나 겉옷의 4배수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발이나 겉옷을 각각 4개씩 갖고 있다면 옷의 개수는 20가지는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에 따라 약간씩 달라지긴 하겠지만 옷을 관리하는 것에 서툴고, 쇼핑 리스트를 짜는 것을 어려워하며, 옷에도 관심이 적은 편이라면 이 정도 기준은 갖고 옷을 채워나가는 것이 좋다. 가방도 4계절 함께 쓰므로 3-4개면 충분하다.


그리고 적은 아이템으로 다양한 스타일을 내고 싶다면 비슷한 아이템을 하나 더 사는 것보다 디자인이 조금 다르거나 품목이 아예 다른 아이템을 채우길 추천한다. 그래야 같은 이너, 같은 신발에 겉옷만 바꿔도 느낌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2020년부터 퀼팅 재킷이 유행이다. 그래서 지금은 아주 쉽게 길에서 퀼팅 재킷을 볼 수 있는데 퀼팅 재킷이 나한테 너무 어울리고 효율성이 좋아 2개를 장만하고 싶다면 색깔이 아예 다르거나 디자인이 아예 다른 걸 고르는 것이 옷장 발란스를 위한 선택이다. 반대로 퀼팅재킷이 안 어울리는 사람도 있으므로 유행이라 하더라도 어울리지 않는 아이템을 구매하는 건 바보같은 짓이다. 쇼핑은 개인의 선택이고 유행에 동참하는 것도 개인의 선택이지만 어울리지 않는 유행템의 구비는 유효기한이 짧을 수밖에 없다. 유행이 지나도 나에게 어울린다면 계속 입어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여기까지가 끝인가보오. 이제 나는 돌아서겠소-'(김광진의 '편지')가 되는 것이다. 


겨울 코트를 사야돼서 요즘 어쩔 수 없이? 쇼핑 어플을 구경 중인데 플랫폼의 할인쿠폰 소용돌이에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오기가 어렵더라. 그래도 반품 수비로 잘 막아내는 중이다. 옷이 많고 적음을 떠나 옷 관리를 내 마음에 들게 잘 하기 위해서는 쇼핑 리스트를 잘 짜서 그에 맞게 쇼핑하는 습관을 길러야 할 것이다. 그래야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간 음식을 먹고 건강해지듯 발란스가 맞는 옷장을 통해 건강한 옷생활을 지속할 수 있다. 앞에 이야기한 몇 가지를 마지막으로 정리해 보면 1) 겉옷은 3-4가지면 충분하다. 2-1) 더 살 경우 품목의 다양성을 생각하자. 신발도 마찬가지다. 2-2) 같은 품목을 여러개 구비하는 것보다 다양성에 초점을 맞춰야 폭넓은 스타일과 분위기의 연출이 가능해진다. 3) 옷장 속 기본템이라 해도 내 라이프 스타일에 맞아야 한다. 4) 겉옷과 신발, 이너의 개수를 세어보고 발란스를 생각하자. 5) 오늘부터라도 당장 쇼핑 리스트를 작성해보자. 


글쓴이 이문연

옷문제 해결 심리 코치

행복한 옷입기 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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