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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연 Oct 21. 2022

#18 (50대 남성에게) 등산복이란 무엇인가?

우스개 소리는 대개 약간의 비하를 담고 있다. 해외 여행 가서 한국인을 찾으려면 등산복 입은 무리를 찾으면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등산복 패션은 중년들(남성이 좀 더 일상복으로 입긴 하지만)의 애정템이었다. 과거형으로 쓴 이유는 코로나로 인해 이제는 예전만큼 단체 여행객이 많지도 않고, 저런 이슈?로 인해 '중년의 여행 패션 = 등산복' 공식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이 조금씩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50대 남성들의 옷차림을 보면 등산복을 꽤 많이 발견하게 된다. 사실 거의 10년 전부터 스포츠 업계는 등산복의 일상룩 화를 염두해 옷을 만들어 왔다. 어떻게 하면 편하면서도 일상룩으로 입을 수 있을지 거듭된 연구로 인해 등산복 바지임에도 위에 재킷만 걸치면 아무도 등산복인지 모르는 패션으로 진화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스포츠 브랜드의 열일이 아니라 왜 50대 중년 남성들이 등산복을 선호하게 되었느냐다. 사람들이 '아 등산복 보기 싫어, 왜 이렇게 해외 여행에 등산복을 입고 다니냐.'라고 말만 했지. 그들이 왜 등산복을 선택하고 입는지에 대해서는 시원하게 분석해주는 사람이 없더라. 일단 50대 남성들은 자기 옷을 자기가 사는 것에 연습이 되어 있지 않다. 요즘 2,30대는 안 그렇지만 10년 전의 30대(내가 남자 쇼핑 코칭을 할 때)만 해도 그들의 옷은 엄마가 사주거나 인터넷에서 사거나였다. 매장에 가서 옷을 고르고 나에게 어떤 옷이 어울리는지 고민해 보는 환경은 80년대생 이전의 남성에게는 다소 생경한 경험이었던 것이다. 물론 옷을 좋아하고 잘 입는 사람은 제외다. 그러니 일찍이 그런 패셔니스타 남성(대표적으로는 배정남)들이 쇼핑몰 시장에 뛰어들어 패션에 무지한 남성들의 지갑을 열게 한 것이리라.



50대 남성들이 백화점이나 아울렛에서 혼자 쇼핑하는 것을 본적이 있는가? 어쩌다 한 번씩 옷잘러 아저씨들이 구경하는 걸(몇 년전까지만해도 드문 일이었기에 확실히 눈에 띈다) 본 적은 있지만 부인과 같이(정확히는 부인이 골라주는) 쇼핑하는 광경이 좀 더 익숙하다. 게다 80년대 이전의 남성들은 '멋'이라는 개념에 다소 약한 부분이 있다. 남성들도 분명히 더 멋져 보이고 싶은 욕망이 있고 가꾸면 충분히 달라질 수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남성이 꾸미는 것'에 대한 약간의 남사스러움을 갖고 있는 연령대가 바로 70년대, 60년대, 50년대생인 것이다. 지금 2,30대들에게는 외적인 부분을 가꾸는 것으로 나의 개성을 표현하는 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지만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러니 남성 쇼핑 코칭을 할 때 노란색, 보라색, 분홍색 등의 색깔만 제안해도 눈이 왕방울해지면서 '어찌 이런 색깔의 옷을 남자가'하는 눈빛으로 쳐다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입어보면 안다. '어? 나 좀 괜찮아 보이네?'



50대 남성들은 빠른 퇴직의 기로에 서 있다. 운이 좋아 다른 일을 찾지 못하면 은퇴라는 이름으로 남은 생을 살게 된다. 금전적 여유가 있다면 상관없지만 그런 이들이 얼마나 있으랴. 그래서 난 등산복 패션은 어쩌면 은퇴한 남성들의 현실을 반영하는 와이프와의 관계적 소원 또는 심리적 해방을 표현하는 자주적 선택이라고 봤다. 패션에 관심이 있어서 알아서 잘 입고 다니는 남자가 아니라면 결혼 후에는 부인이 옷을 봐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은퇴한 남성이 옷이라도 잘 입고 다녔으면 하는 마음에 같이 옷을 골라주는 부인이 많이 있을까? 아이들은 20대가 되고 각자의 라이프 스타일이 있다면 부인이 옷을 사주더라도 직장 다닐 때만큼은 아닐 거라는 추측이다. 남편 역시 마찬가지다. 직장 다닐 때 세미 정장 혹은 셔츠에 면바지를 실컷 입었다면 이제는 내 맘대로 입을 수 있는데 굳이 불편한 옷을 찾아서 입을까. 50대 중년의 멋을 찾기에는 방법도 모르고, 자신감도 약해졌다. 그래서 은퇴 후 어떤 옷을 입을까에 대한 고민은 멋진 옷보다는 다른 옷이었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보면 안다. 기능성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 하지만 계속 비슷한 등산복만 입다보면   좋은,   예쁜 등산복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그러니 등산복을 입는 사람들에게 '등산복 말고 일상복  입으세요.'라고 말하는 것보다   멋지고 예쁜 등산복을 추천해주는 것이 훨씬 실현 가능한 조언이라 생각한다. 게다 이제는 등산이나 트래킹을 즐기는 연령대는 점점 젊어지고 어려지고 있기에 다양한 색깔과 트렌디한 디자인의 제품이 나오고 있다. 덩달아 등산복을 즐겨입는 중년 아저씨들과 아주머니들의 안목도 달라질 것이다. 내가 무언가를 찾아 배우는 것보다 내가 속한 세계가 달라지면 시야는 넓어지기 마련이므로. 해외 여행에서 만난 중년들의 옷차림이 등산복이 많았던  지치지 않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몸이 힘들면 여행을 즐기기 어렵다. 최대한 여행을 즐기기(걷고, 보고, 먹고, 싸고 - 미안하다. 임을 맞추려면 어쩔  ;;) 위한 옷차림으로 몸이 편하게 느낄  있는 등산복을 선택한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2년여의 휴식기?를 거쳤다. 이제는 이런 이슈가 그리울만큼 마스크에서 벗어나고 싶은 심정이다. 나를 꾸미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내 몸이 편한 게 제일이라는 사람도 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든 신경쓰지 않는 사람도 있고,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반듯하고 깔끔하게 신경써서 옷을 입는 사람도 있다. 병원에 가면 간호사든, 의사든 크록스를 신은 걸 볼 수 있다. 아마 처음에는 편한 신발을 찾아 신었을 테지만 그 대표격이 크록스가 되면서 병원 신발로 자리 잡았을 것이다. 등산복은 이런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회 속의 포지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선택 가능한 옷차림. 패션에 센스도 관심도 없는 자의 최적의 여행룩. 40대가 되고 50대가 되고 60대가 되면 나의 외향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바뀐다. 나는 어떤 패션 스탠스를 취하며 살아갈 것인가. 지금의 20대가 중년이 되면 또 어떤 패션 현상이 나타날지 자못 궁금하다.



글쓴이 이문연

옷문제 해결 심리 코치

행복한 옷입기 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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