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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연 Dec 21. 2016

50가지 사소한 글쓰기 워크북(12) 동물

지금부터 시작하는 글쓰기

에피소드(1) 막장 드라마의 시조(鳥)?


어쩌다 새를 키우게 된 건지 기억나진 않지만 아빠랑 언니랑 새장을 사러간 것이 기억난다. 새를 두 번 키웠던 것 같은데 한 번은 십자매 한 번은 금화조였다. 언니랑 여동생이 있는 나였지만 동물을 키우는 건 또 다른 경험이었다. 신문지를 갈아주고 물과 모이를 주고. 특별히 애교스럽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그냥 그들의 생김새(작고 똥똥하다!)에서 풍겨나오는 특급 귀여움이 자꾸 나를 새장 앞으로 이끌었다. 사람에게는 없는 털의 부드러움도 한 몫했다. 보드랍고 작고 똥똥한 새들은 그렇게 우리와의 동거를 시작했다. 


충격적인 일은 그 장면만 캡쳐된 것처럼 기억될 뿐, 그 뒤의 정황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기억이 없다. 새를 키우면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일은 금화조가 알을 다 깨?먹은 일이다. 아마 알을 3개 정도 낳았던 것 같다. 언니와 나, 여동생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알이 부화하길 기다렸는데 다음 날 아침 금화조는 자기가 낳은 알들을 다 깨먹어 버렸다. 내 기억은 거기서 멈춰있다. 그저 깨진 알들의 잔해를 쳐다보는 것으로 끝이다. 그 뒤 어떻게 했는지 궁금한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금화조를 검색해봤더니 원래도 알을 잘 품지 않는 종이란다. 


더 충격적인 사실! 우리 집의 최강 기억력자인 언니한테 진실을 물어봤더니 진실은 이랬다. 새장은 새 문을 위로 여는 형태로 되어 있다. 특별한 잠금 장치가 없이 그저 쇠의 무게만으로 아래로 닫히는 형태였는데 어느 날 금화조 수컷이 그 문을 부리로 열고 도망을 간 것이다. 그래서 암컷 금화조는 혼자서 알을 낳았는데 수컷이 도망간 충격(언니 말로는 그런 것이 아닐까)에 알을 다 깨버린 것이란다. 아~~~ 모성애의 부족으로 일어난 막장이라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수컷의 이기심이 만들어낸 파국이었던 것이다. 


그냥 왜곡된 기억을 갖고 있을 걸 그랬나보다. 도망갈려면 같이 도망가야지 갑자기 수컷 금화조가 미워진다. 하긴 얼마나 자유가 그리웠으면 혼자서 도망쳤을까. 지금의 나라면 수컷 따라 가라고(아니지. 너도 너 삶을 즐길 권리가 있으니!) 암컷도 날려보냈을 것 같은데 그 땐 그저 아무 생각없는 꼬맹이였다. 언니의 기억에 따르면 혼자 남겨진 암컷은 팔았다고 한다.  


에피소드(2) 전생에 비둘기였는지도.


비둘기는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동물이다. 지금에야 날아다니는 쥐라며 유해동물 취급을 받고 있지만 난 그게 다 인간들(나도 인간;;;)때문이라 생각한다. 비둘기가 서식할 만한 깨끗한 곳이 도시에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88 올림픽 때 평화의 상징이라며 수입해 올 땐 언제고 그 이후로는 방치되버린 비운의 새가 바로 비둘기이다. 인간들이 자신을 더럽게 보거나 말거나 아무렇지 않을 비둘기인데 그냥 나는 비둘기가 신경 쓰인다. 마을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비둘기가 차선을 걸어다니면 차에 치이지나 않을까 쳐다보게 되고, 뭔가를 먹을 때 주변을 얼쩡거리면 음식을 주고 싶다는 욕망에 휩싸인다. 


대형 할인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이다. 밥을 안 먹었는지 빵을 먹으면서 출근하고 있었는데 지상 주차장에 들어온 비둘기 한 마리를 보았다. 넓디 넓은 주차장을 방황하고 있는 비둘기 한 마리. 손에 쥐고 있던 빵을 나눠주었다. 잘 먹는다. 양이 많지 않았기에 내가 먹을 양을 조절해서 적당히 몇 개 더 뿌려주었다. 알아서 잘 나가겠거니 비둘기의 무사한 탈출?을 기원하며 사무실에 들어왔는데 누군가 내 모습을 보고 사무실에 이야기를 한 모양이다. 그 날 주임님들은 나를 하루종일 비둘기 소녀라 불렀다. 별로 기분 나쁘진 않았다. 대학생이 주차장에서 비둘기에게 빵을 주고 있는 모습이 일반적이진 않으니까 주임님들에겐 하나의 이야기거리를 선물한 셈이다. 


어쩌면 사람들이 비둘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그 반대급부로 더 신경이 쓰이는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이 날지 않고 걷거나 뛰는 것은 사람들이 날아다니는 걸 싫어해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인간들과 공존하기 위한 선택적 퇴화는 아닐지 심히 비둘기들이 염려된다. 사람들이 싫어해도 비둘기들이 나는 법을 잃어버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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