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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연 Dec 29. 2016

50가지 사소한 글쓰기 워크북(13) 영화

지금부터 시작하는 글쓰기

에피소드(1) 비디오 플레이어가 뭐→죠↗


난 영화를 좋아한다. 그렇다고 매니아처럼 어디가서 내세울 수준은 아니고 여가 시간이 생기면 영화를 보는(어쩌면 이건 기질적, 금전적, 환경적 영향을 다 고려했을 때 선택된 취미일 수도 있겠다) 정도이다. 아빠는 일하느라 바쁘셨지만 아빠께서 장만해주신 비디오 플레이어덕분에 우리는 주말이 심심하지 않았다. 토요일만 되면 근처 비디오 가게에 가는 것이 일상이었고 거기에서 우리는 80년대를 풍미한 홍콩 영화와 일본 애니메이션을 용돈의 허용치 안에서 빌려볼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결코 저렴한 금액이 아니었다. 비디오 대여료는 2,000원 애니메이션은 1,500원이었으니 애니메이션을 보기 위해선 500원어치 떡볶이 3접시를 날려야 했다. 


그렇게 빌려온 비디오는 지겨움이라는 단어를 증명이라도 하듯 지겨울 때까지 봐보자는 심리로 계속 돌려봤다. 어려서 그런지 아무리 봐도 지겨웠던 영화는 없다. 성룡, 왕조현, 구숙정, 여명이 나왔던 시티헌터(진짜 재밌음)가 30회라는 최고 횟수를 찍었고 그 밖에도 토요일과 일요일 밥 먹을 때나 심심할 때나 비디오 플레이어는 게임기와 함께 아빠가 사주신 최고의 여가 파트너였다. 비디오 플레이어를 사고 처음 빌려본 비디오가 터미네이터 1이었는데 잘리고 찌그러지는 와중에도 죽지 않는 기계의 불사조 몸뚱이는 어찌나 무섭던지. 나중에 눈에 불이 꺼지고 나서야 나도 안도할 수 있었다. 


학원을 다니는 길에 비디오 가게가 있었다. 비디오 가게는 새로 출시된 영화의 포스터를 가게 유리면에 도배하는 것으로 손님을 끌었다. 가끔 무서운 영화의 포스터가 걸릴 때면 난 비디오 가게를 지날 때마다 손바닥으로 가게를 보이지 않게 가리곤했다. 특히 무서웠던 포스터(더 무서웠던 포스터가 있었을 것 같은데 기억 속에 남은 건)는 플라이 1의 포스터이다. 알같이 생긴 커다란 기계 안에 사람이 들어가면 똑같이 생긴 다른 기계로 이동(정확히 말하면 분자 형태로 분해 후 다시 생성)되는데 기계안에 파리가 같이 들어가면서 생기는 현상을 공포스럽게 연출한 영화다. 지금 다시 찾아보니 지나 데이비스가 여주인공이었네. 여튼 참 88년 개봉해 초등학교 1학년 때 봤으니 학원갈 때마다 나를 너무 힘들게 했던 영화였다.



에피소드(2) 내가 사랑한 주말의 명화 & 토요 명화


사실 영화에 대한 애정은 비디오 플레이어가 생기기 전부터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왜냐하면 80년대생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프로그램은 몰라도 오프닝 음악은 모를 수 없는!) 주말의 명화와 토요 명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난 주말의 명화와 토요 명화 빠순이였다. (명화 빠순이. 좀 색다른데?) 그래서 금요일이면 주말의 명화를, 토요일이면 토요 명화를 늘 기다렸고, 신문을 받으면 어떤 영화를 방영하는지 색깔 펜으로 네모를 쳐두곤 했다. 어디 그 뿐이더냐.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의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 책상 옆 벽지(한 번 보면 잊어버릴까, 늘 보고 상기?시킬 수 있는)에다 브루스 윌리스, 실버스타 스탤론, 지나 데이비스, 맥 라이언, 마이클 J 폭스(진짜 완전 좋아했는데!), 케빈 베이컨 등등의 이름을 적어 놓았다. 엄마는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외국 배우 이름으로 도배된 벽지를 보고 혼내지는 않으셨다.


여기서 잠깐 토요 명화와 주말의 명화 오프닝 음악을 듣고 가보자.


https://youtu.be/Xww77wVQric


https://youtu.be/U9Ga2sesxWQ


이게 아마 외국 영화사에서 판권을 사와서 방영을 하는 거라 지금은 볼 수 없지만 정말 좋은 '명화'를 TV에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꼬맹이들의 영화적 상상력에 큰 도움이 된 프로그램이 아니었나 싶다. 여름 시즌에는 공포영화 특집을 해주기도 했는데 이불을 뒤짚어쓰고 꺅꺅 거리면서 애청해 마지 않았다.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던 포세이돈 어드벤처(72년작) 내가 본 영화 중에 슬픈 영화 Top3 안에 드는 로빙화(93년작) 그리고 벌레가 드글드글하는 구멍에 손을 집어 넣어야만 살았던 인디아나 존스(82년작) 등 그 때 본 영화는 뽑기처럼 이번 주엔 어떤 영화를 하려나 하는 기대감을 갖게 했다. CG의 발전에 따라 영화의 스케일과 리얼리티는 높아졌지만 내가 모르는 보석같은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옛날의 명화 프로그램이 그립긴 하다. 


에피소드(3) 내 인생에 영향을 준 영화


자기소개 30이라던가, 자기소개 100문 100답 이런 것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질문 하나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라는 질문이다. 이 에피소드를 쓰기 위해 생각해보니 내 삶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준 영화들을 떠올리게 되더라. 첫번째는 죽은 시인의 사회이다. 중학생 때인가 고등학교 1학년 때인가 영화를 보게 되었고 한창 감수성(난 그다지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가 아니었음에도)이 예민한 시절에 내 머릿 속에 박혀 버린 2줄 'Seize the day, Carpe Diem'이다. 책상을 보호하기 위해 하드보드지로 만든 책상 커버를 사용했는데 고 1때부터 3학년 때까지 내 책상 커버 왼쪽 상단에는 저 말이 적혀 있었다. 그 당시에는 단순히 '현재를 즐겨라'라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오늘을 잡아라'라는 직역이 좀 더 와 닿는다. 


두번째는 밴디트라는 밴드 영화이다. 각자 저마다의 사정을 가지고 있는 여자 복역수들이 밴드를 결성해 탈옥을 감행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려낸 영화이다. 이 영화의 OST는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데 그도 그럴 것이 메인 기타 & 보컬인 배우가 실제로도 밴드의 보컬이기 때문이다. 10대의 나와 20대의 나는 굉장히 이상적인 면모가 강했는데 그런 감성을 여러모로 충족시키는 영화였다. 주인공의 기타 치는 모습에 반해 대학교 입학이 결정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해서 악기 학원에 등록, 기타를 배웠고 동아리도 기타를 칠 수 있는 동아리를 선택했다. 주인공 이름이 루나였는데 이 때부터 내가 들었던 영어 회화 수업에서 나의 이름은 루나였다. 영화 주인공의 모습에 반해 시작한 기타지만 나름 심심할 때 (쉬운 코드 위주로)셀프 반주가 가능해 나의 샤우팅 감성을 충족시켜주곤 한다.


* 이 글을 쓰면서 옛날 영화를 검색해보고 나오는 옛 추억에 혼자서 배실배실 웃는 나를 발견했다. 너무너무 무서웠던 한국영화도 기억나는데 그 이름은 '깊은밤 갑자기'(81년작)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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