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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연 Jan 11. 2017

50가지 사소한 글쓰기(15) 학원

지금부터 시작하는 글쓰기

에피소드(1) 엄마, 전 피아노가 싫어요!


내가 잘 먹어서 언니보다 컸던 것도 있지만 언니는 유난히 또래보다 작았다. 그래서 어디 같이 다니면 어른들이 내가 밥 다 뺏어먹은 거 아니냐는 농담을 하시곤 했는데 밥이 부족하면 엄마한테 더 달라고 하면 되거늘, 굳이 언니껄 왜 뺏어먹어야 하는지 도통 이해는 안 갔지만 그러려니 넘어갔다. 그런 언니가 가장 좋아하는 게 있었으니 피아노였다. 작고 짧은 손가락으로 어려워보이는 고난이도의 악보를 잘도 연주했다. 피아노를 사달라고 할 정도로 언니는 재능도 있고 피아노를 좋아했다. 피아노를 잘 쳤던 언니가 공부까지 잘했으니 엄마는 피아노가 두뇌발달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셨을까?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집 앞 상가 1층에 있었던 피아노 학원에 나를 등록시켰다. 


피아노가 두뇌발달에 좋은 영향을 준다면 그건 아마 좋아하는 감정이 즐기는 감정으로 치환됨으로 생기는 '기쁨'때문일 것이다. 여러모로 긍정적인 감정을 자주 갖는 건 아이의 정서 발달에 도움을 주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는 피아노를 1년 정도 배웠을 때 이미 내가 재능도 없고 즐겁지도 않다는 것을 간파했다. 하지만 엄마는 왜 인지 피아노 학원을 다니기 싫다는 내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으셨다. 언니가 사용하던 악보에 연습용 동그라미 5개를 치고 연습한 숫자만큼 선을 그어나갔다. 피아노를 치기 싫어서 한 번 연습하고 선을 한 3개 정도 그은 다음 시간이 가기를 기다린 것 같다. 그걸 5년동안 했다. 그렇다. 난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5학년 때까지 피아노 학원을 다닌 것이다. 체르니 50까지 배웠지만 실력은 체르니 30에도 미치지 못하는 부끄러움은 다 엄마 때문에 생긴 나의 흑역사다. 


지금 생각해보면 피아노 학원 다니기 싫다고 좀 더 악다구니를 썼어야 했던 것 같은데 난 너무 순한 자식(노노 엄마가 너무 무서웠다!)이었던 것 같다. 


에피소드(2) 언니와 나의 차이


언니는 공부를 참 잘했다. 우리 학교 전교 1등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공부때문에 언니랑 차별당한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차라리 맏이라는 권위때문에 차별당했으면 당했지) 지금 생각해보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사실 피아노 말고 태권도 학원을 다니고 싶었다. 그래서 피아노가 지겨워진(아이의 말을 잘 들으면 금전적 손실을 예방할 수 있다.) 나는 태권도 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용기를 내어 의사전달을 했다. 그러자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지금 다니는 학원 다 그만둬!" 얼마나 뇌리에 박혔으면 아직도 기억이 날까. 엄마의 강력한 한 방에 아무 말도 못하고 찌그러져야 했다. 


때는 바야흐로 몇 년이 지나고 중학생이 된 언니가 '성악'이 배우고 싶다고 엄마한테 이야기를 했다. 영문도 모른 체(아마 딸 셋이 있는 걸 보고 성악 선생님께선 3명 같이 하면 DC가 가능하다고 영업력을 펼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성악을 배워야했다. 성악은 피아노보단 재미있었다. 사실 처음 배우는 '신기하다'의 단계에서 성장으로 인한 '재미있다'의 단계를 넘어야 정당한 비교가 가능한데 '금액'적인 부분때문인지 3개월하고 대학생 선생님과는 헤어져야 했다. 만남은 짧았지만 그 당시 생소했던 성악의 추억은 내 목에 우렁찬 성대를 남겼다. 그리고 언니의 한 마디는 나의 한 마디와 꽤 달랐구나라는 것을 이제?서야 깨달아본다.


에피소드(3) 하나를 가르치면 하나만 알던 시절


1명보다 2명을 등록시키면 가르치는 학원에서는 이익이기에 우리는 늘 한 쌍씩 학원에 등록당?했다. 그 때 배운 것 중에 배우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서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4학년 때까지 한 1년 정도 다닌 것 같다. 처음에는 언니와 그 다음에는 여동생이랑 다녔는데 굉장히 나이 많으신 할아버지가 선생님이셨다. 한 손에 호두 두 알을 맨날 돌리시던 게 아직도 생각이 난다.(혈액순환때문에 그런 건지 그 때는 어려서 몰랐다.) 처음에는 선을 배우고 그 다음에는 한자 하나씩을 배우고 어느 정도 습득이 된 다음에는 사자성어 위주로 썼다. 한 쪽에 있는 화선지를 펼쳐서 양 쪽이 4X4칸이 나오게 접는다. 그런 다음 고무 문진으로 화선지 위 쪽을 움직이지 않게 고정시킨다. 벼루에 먹물을 붓고 먹으로 간다. 그 다음에 서예 붓에 먹물을 묻혀 글씨를 쓴다. 다 쓰고 난 뒤에는 붓을 잘 빨아서 벽 한 쪽에 붓 걸어두는 곳에 걸어둔다. 연습한 화선지는 집에 가져가면 된다. 나는 몰랐지만 서예를 배우기 위해 구매했던 서예 붓(당시 1만원)이 너무 비싸다며 엄마와 아빠가 언성을 높였다는 후일담을 언니에게 들었다.


그렇게 매번 연습했던 화선지를 집에 가져가면 엄마랑 아빠가 언니와 나의 한자를 흐뭇하게 바라보셨다. 누가누가 더 잘 썼나. 자기만의 스타일이었는지 아니면 연세때문에 손이 떨려서 그랬는 건지 할아버지 선생님의 한자는 물결무늬가 넘실대는 필법이었다. 나 역시 그런 필법을 따라해야 되는 줄 알고 한자를 죄다 물결 무늬화 했는데 선생님께서는 매끈한 언니의 한자보다 내 한자가 더 잘썼다고 엄마한테 이야기했다. 서예 학원에는 한자를 따라 쓰기 위한 사자성어 책이 늘 구비되어 있었는데 어느날 보니 언니는 한자를 쓰면서 그 한자를 다 외웠던 것이다. 나는 그냥 한자만 따라 썼다. 서예를 하는 건 고도의 집중력과 인내력이 필요한 일이기에 사자성어 암기에 쓸 여분의 집중력 따위는 나에게 없었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 한자를 잘 쓰기로는 언니보다 내가 늘 상위를 차지했지만 나는 써놓고도 그게 무슨 의미인지 까막눈인 상황에 당연한 1패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사자성어를 쓰면서 그 의미까지 익혀야 하는지 몰랐(진짜루! 왜 나한텐 가르쳐주지 않은 거냐!)다. 동생이 잘 외우고 있는지 확인하지 않았던 언니 탓을 해본다.(일부러 그런 거 아냐? ㅋㅋㅋㅋㅋㅋㅋ)


* 서예 도구를 기억하면서 도무지 서예 붓이랑 먹물 밖에 생각이 안나서 검색하는데만 한 10분 쓴 것 같다. 서예 도구라고 검색하면 쉬웠을텐데 서예로 검색했다가 벼루로 검색했다가 생각도 못한 '문진'이란 것도 발견했다. 그리고 '연적'이란 것도. 연적은 먹물에 물을 섞어 농도를 맞추기 위한 도구이다. 물을 한 방울씩 똑똑 떨어뜨릴 수 있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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