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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연 Dec 30. 2015

50가지 사소한 글쓰기 워크북(2) 옷

하얀 니트를 가로지르는 가위의 추억

                                                                                                                      

에피소드(2-1) 싸우자, 옷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나는 어렸을 때의 기억이 많지 않다. 그 중에서 드문드문 내 기억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들은 아~주 기분 좋았던 경험이거나, 아~주 충격적인 경험이거나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옷 욕심이 좀 있었다. 엄마가 언니나 동생 옷을 사줄 때면 입을 있는대로 내밀어 나의 못마땅함을 시전했다. 하지만 엄마는 콧방귀도 뀌지 않으셨다. 초등학교 때의 일인지 나이는 구체적으로 기억나질 않지만 그 옷에 대한 기억만큼은 선명하다. 아이보리 컬러의 보들보들한 감촉의 니트. 엄마가 사오신 옷이었는데 어렸을 때의 나는 언니보다 덩치가 컸기에 같은 사이즈의 옷을 두고 선택할 일이 종종 있었다. 차라리 누구 옷이라고 이야기해줬다면(언니 옷이라고 했던 것 같기도;;) 싸우지 않았을 것 같은데 엄마는 언니와 나 사이에 옷을 놔두고는 다른 볼 일을 보러 가셨다. 우리는 둘 다 그 옷을 마음에 들어했고 '같이 입자' 따위의 평화로운 협상?력을 발휘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그래서 솔로몬의 지혜에 나왔던 진짜 엄마와 가짜 엄마처럼 한 니트를 부여잡고 서로를 째려보는 수밖에 없었고 서로 자기에게 양보하라며 싸우기 시작했다. 얼마쯤 큰 소리를 냈을까 엄마는 어디선가 가위를 들고오셨고 니트를 찢어버렸다. 아니, 잘라버렸다. 반쪽이 난 니트를 허망하게 보며 언니는 울음을 터뜨렸던 것 같고 나는 그저 씩씩 거렸던 것 같다. 그 이후로 얻은 교훈이 있다면 하나의 물건을 두고 서로 갖겠다고 싸우는 짓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것이었다. 한 성격 하는 엄마가 보는 앞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에피소드(2-2) 엄마의 센스


생각해보면 엄마는 스파르타식 교육의 선두주자였던 것같다. 딸 셋을 정갈?하게 키우기 위해서 선택한 최선이라 생각하는데 초등학교 때부터 옷이며 머리며 다 엄마의 센스에 의해 다듬?어졌다. 엄마는 우리 옷을 시장에서 사오기도 하셨지만 아는 아줌마가 옷과 관련된 사업을 하셨는지 방문 판매처럼 옷이 든 상자를 가져올 때면 그 중에서 고르기도 하셨다. 그래서 조숙한 언니를 제외하고 여동생과 나는 쌍둥이처럼 입혀지기도 했는데 예를 들면 이런 거다. 가장 기억에 남는 패션은 무릎까지 오는 5부 바지가 오른쪽과 왼쪽이 색깔이 다른 디자인이었는데 동생의 쫄바지(게다 쫄바지였다!)는 주황색과 녹색이었고, 내 쫄바지는 파랑색과 연두색이었다. 이 휘황찬란한 쫄바지를 입고 동생과 내가 나란히 걸어가면 팔레트 위의 물감이 주는 생동감을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기분이었다. 유치원 시절의 언니는 빨간 색 바탕에 꽃무늬가 그려진(지금 나온다면 복고 유행을 다시 선도할 것만 같은) 잠바를 입고 다녔는데 그 잠바를 개시하는 날 엄마에게 입기 싫다고 말했다가 빗자루로 맞을 뻔했다는 추억을 들려주기도 했다. 여튼 그 시절 엄마는 딸 셋을 되도록 깔끔하게 키우기 위해 노력하셨고 덕분에 사진 속 딸들의 얼굴은 머릿 속 이를 잡던 시대의 아이들 치고는 광?이 났다. 어떤 사진은 머리에 핀이 6개씩 달려있기도 했지만 지금의 스타일 센스는 그 때부터 만들어진 것같아 감사하게 생각한다.


에피소드(2-3) 어쩌면 다행인


스타일에 있어서 취향은 중요하다. 이미지나 체형, 라이프 스타일처럼 고려해야 할 다른 요소들도 있지만 결국 '나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데는 취향의 비중이 가장 높다고 생각하므로 취향을 생각하지 않고 옷을 같이 입는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두 명 이상의 여자 형제가 있는 집이라면 간혹 언니와 여동생이 옷을 같이 입기도 한다. 그렇기에 언니와 여동생이 있는 나는 '옷을 같이 입어서 좋겠어요~' 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셋은 취향이 다 제각각이라 옷을 같이 입어본 적이 거의 없다. 게다 체형까지 제각각이라 한 벌을 사서 형제들과 나눠 입는 것으로 뽕을 빼는 절약형 스타일링은 결코 시도해볼 수 없는 것이다. 스타일에 무감각한 편이라 30대 중반 이후 자신의 스타일을 정립(하지만 지금도 무한 시도 & 실패 중)한 편이라 할 수 있는 언니와 옷에 관심은 많은데 넘쳐나는 관심을 패션 센스가 따라가지 못해 30대 초반에서야 자신의 스타일을 정립한 여동생, 내 스타일에 대한 확신은 있으나 귀차니즘 기질이 강해 편한 옷만 추구하는(특별한 날만 신경쓰는 정도) 나 이렇게 각자 색깔도 다르고 취향도 다른 것은 어쩌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성격도, 체형도, 취향도 다 다른, 그 다름이 어렸을 때는 부딪히는 것으로 표출되었지만 지금은 균형잡힌 형제애?를 발휘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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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머리가 어지럽고 마음은 답답한 제가 뭐라도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시작하는 소소한 에세이입니다. 글을 통해 '자기 이해'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주제를 통해 글을 써 보는 것으로 '자기 이해'를 해보고 싶은 분이라면 매주 주어지는 주제로 글을 써보고 댓글에 링크를 달아주시면 글에 대한 감상(비평을 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ㅡㅡ)도 공유하고 토닥토닥 & 으쌰으쌰 하는 것으로 멘탈을 단련시켜보고자 합니다. 이건 정말 무지개빛 시나리오지만 그렇게 모인 글들을 한 데 엮어 책으로 내보낸다면 그것만큼 므흣한 일도 없겠습니다. 매주 일상 속 아주 사소한 주제로 찾아갑니다. 서른 다섯, 자기 이해를 위한 사소한 에세이 시작합니다. 프롤로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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