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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연 May 09. 2024

등밀이에 대한 고찰

* 다소 더러운 내용을 담고 있으니 일독에 주의를 바랍니다.


운동을 하지 않아도 헬스장에 가게 되는 요인이 있으니 그건 바로 온탕과 냉탕의 웬만한 목욕탕 저리가라의 시설때문이다. 원래는 사우나까지 운영해 사우나에 앉아서 들을 수 있는 아주머니들의 별별수다를 듣는 재미도 있었는데 코로나 때 폐쇄되더니 다시 개장할 기미가 안 보인다. 하지만 난 사우나보다 탕을 좋아해서 사우나 운영이 요원해 보이지만 크게 아쉽진 않다. 어린시절부터 엄마를 따라 목욕탕을 다녀버릇해서 정기적으로 때를 미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래서 목욕탕 퀄의 샤워 시설(사실 목욕탕이나 마찬가지)에서 종종 때를 민다. 이게 밀어버릇한 사람만 느낄 수 있는 때민 후의 쾌감이 있어서 목욕탕이 사라지지 않는 한 때는 계속 밀 것 같다. 피부 건조화의 주된 요인이라 할지라도. 온탕에서 멍을 때리니 오늘도 느낌이 왔다. ’It’s time to scrub!‘ 안타깝게도 사람의 팔은 등을 다 커버하지 못한다. 그래서 혼자 등도 못 긁고 등에 로션도 혼자 못 바르며 때 미는 것도 미션임파서블이다. 어찌어찌 손에 닿는 곳만 민다고 해도 팔이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각도에서 미는 때는 영 시원찮다. 아마 헬스장 목욕탕에서 발견하는 안쓰러운 장면이 있다면 top3 안에는 들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렇게 분투를 하는데 옆옆 자리에 앉은 아주머니께서 등을 밀어주신단다. 둘 다 헬스장을 오래 다녔고 얼굴 본지는 4,5년 됐으니 모르는 사이는 아니지만 누군가가 등 밀어준다고 하면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 속을 스친다. 때를 미는 건 죽은 피부를 벗겨내는 일인데 2주만 지나면 나의 피부들은 극락(사실은 하수구)으로 떠날 차비를 마친다. 누군가 때를 밀어주는 건 상당히 고마운 일이나 과한 때의 양으로 인해 민폐를 끼치는 건 아닌가 걱정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또한 도움을 주시는 분들은 모두 엄마뻘이라 기운도 나보다 다 없으신 분들인데 여동생과 언니의 말을 빌자면 내 등은 작용과 반작용이 심하게 일어나는 높은 탄성도를 자랑해 때 미는 사람의 엄청난 에너지 소모를 일으킨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때를 밀어준다는 도움의 손길을 넙죽 받기에는 내 몸뚱아리가 호락호락하지 않고 너무 많은 때를 양산?해냈다. 하지만 그 아주머니는 한 카리스마 하는 분이라 나의 거절을 거절하고 등을 밀어주셨는데 손이 안 닿는 가운데 부분만 밀어주신다고 해놓고 어깨부터 엉덩이까지 꼼꼼하게 밀어주셨다.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과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상당히 조심스러운 개인주의자가 되었지만 어린시절 자주 접했던(요즘은 거의 사라진) ‘모르는 사이지만 서로서로 등밀어줍시다’의 경험이란, 참으로 좋았고 따뜻한 오지랖이 있던 시절로 느끼는 것이다. 아주머니께서 등을 밀어주는 동안도 내 뇌는 쉬지 않고 어느 타이밍에 STOP을 외쳐야 할지를 주시하고 있었다. 너무 빨리 외치면 등이 시원하게 밀리지 않을 것이고 너무 늦게 외치면 아주머니가 쓰러지실 수도 있기에 적당한 타이밍을 노려 잽싸게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그 동안 몸은 쾌적해도 등의 찝찝함은 어쩔 수 없이 목욕을 마쳤던 바, 아주머니의 고마운 제안에 상쾌함은 배가 되었다. 기브 앤 테이크를 따지는 개인주의자는 또 아주머니의 등을 밀어드리려고 했으나 오늘은 아주머니의 scrub day 가 아니었다. 고로 나는 또 목욕탕에서 아주머지를 만나면 고민하게 될 것이다. 때를 미시는지 안 미시는지 주시하고 내가 받았던 상쾌함을 한 번은 되돌려드려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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