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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연 May 24. 2024

거절 잘하는 법

나는 거절을 잘한다. 아니, 잘 하는 편이다. 사람의 행동에는 가치관이 반영되어 있다.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건 이래서야 라는 전제가 깔리지 않으면 행동이 어려운 사람, 하지만 전제가 깔린다면 행동하는 데 시간이 단축되는 사람. 그게 나야~ 빠룸빠두비두밥. 지금은 스팸문자나 전화가 많아져 아예 안 받거나 발신을 차단하지만 예전에는 모르는 번호도 받았다. 대개 보험을 들라는 전화나 텔레마케팅 류였다. 아주 오래 전, 대학교 새내기 때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세상물정 모르고 간 곳이 텔레마케팅 회사였다. 그 때 전철에서 친한 친구에게 '기본급에 성과급이 있다.'라고 신나서 통화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는데 아마 부끄러워서 기억으로 남은 것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그렇게 이틀을 일하고 그만두었는데 전화로 무언가를 설명하고 판매하는 이들에게 통화 시간은 절대적으로 짧을 수록 좋다. 고로 '나는 어떤 말을 해도 넘어가지 않을 것이니 단념하세요.' 라는 뉘앙스를 팍팍 풍기는 것이 관건이다. 선정 어휘가 참 중요하다 생각하는데 그래서 나는 기분 나쁘게 말하거나, 안 합니다. 라고 말하지 않고 '괜찮습니다'라고 거절한다. 그리고 1초 후(하지만 그들은 자기 할 말 중이다) 통화 종료버튼을 바로 누른다. 새삼 기분 나빠도 어쩔 수 없다. 그래야 나는 내 시간을 아끼고 그들도 헛된 시간을 아낄테니. 헬스장 근처에는 모델 하우스가 있어 종종 호객 행위를 한다. 그 곳이 지름길이라 반드시 거쳐야 하는데 아주머니들이 두 손가득 사은품을 들고 말을 걸기도 하고 어떤 날은 정장을 말끔히 빼 입은 20대들이 나오기도 한다. 그들에겐 호객 행위 메뉴얼이 있어 보이는데 1) 동정심 유발 2) 가벼운 방문 이 두 가지다. '첫 출근이라는 둥, 오늘 꼭 한건 해야 한다는 둥, 1분만 들어갔다 나오셔도 된다는 둥, 아무것도 안 하셔도 된다는 둥, 한 번만 살려달라는 둥' 다양한 말로 어필을 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비즈니스'에 입각한 립구라(물론 아닐 수도 있다)라는 걸 알기 때문에 또 '괜찮습니다~' 신공으로 평소 걷기 속도보다 1.5배 빨리 걸어준다. 이 모든 것이 비즈니스라는 걸 알지만 그들의 일(생판 남에게 요청)이 쉬운 일이 아님을 알기에 거절하는 마음도 편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그 일에 따른 부수적인 것들이 있으며 그것을 감당하면서 내 행동을 관철하겠다는 마음을 매번 먹지 않으면 이 세상을 살아가기란 아주 피곤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이런 불편한 감정은 내가 책임지겠으니 내 거절에 대한 당신의 감정은 당신 몫입니다의 자세로 정진?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참된 거절의 증신(정신)!! 그러면 거절을 아주 잘 할 수 있다. 내가 하는 거절이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닌, 당신을 위한 거절이기도 하다는 거. 대신, 표정은 부드럽게 말투는 단호하게 발걸음은 빠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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