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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연 May 23. 2024

임자있는 수건에 대하여

사람은 당황한다. 언제? 예상치 못한 일에 부딪혔을 때. 오늘의 계획은 이랬다. 운동을 하고 목욕을 하고 스타벅스 쿠폰으로 맛있는 커피 마시기. 때를 밀고 나와 마시는 커피(물론 맥주가 더 맛있다)는 얼마나 맛있게요? 신나게 몸을 씻고 탈의실로 나가려는데 어라? 수건이 없네? 정확히는 수건을 넣어 온 비닐만 덩그러니 있고 수건은 사라진 것이다. 아오-!!! 내가 이런 일을 다시 겪을 줄이야!! 때는 바야흐로 코로나가 발발하고 운동시설이 재개되었던 21년쯤이었던 것 같다. 수건을 처음 도둑? 맞았을 때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럴 수도 있지.(물론 아주 이기적이고 몰상식한 행동이긴 하다) 그런데 두번째 도둑? 맞았을 때는 대응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목욕탕의 입구 즉, 탈의실로 건너가는 입구에는 개인 물품을 놓을 수 있는 선반이 길게 있는데 다들 그 곳에 수건을 놓고 탈의실로 가기 전에 몸을 닦는다. 나 역시 그 곳에 수건을 놓는데 그런 불상사?가 두 번이나 일어난 것이다. 게다 두번째는 현장에서 범인?을 잡았었다. 남의 수건으로 몸을 한참 신나게 닦던 아주머니에게 “그거 제 수건인데요?”라고 하니 ”공용인 줄 알았어요.“라고 말씀하셨다. 이 사태를 어떻게 해야할까. 수건에다 이름을 대문짝만하게 써놓을 수도 없고 특이한 수건 색으로 바꿀까 하다가 수건 위에 작은 명판을 놓기로 했다. 뭐라고 쓰면 좋을까. ‘주인 있음‘ 너무 딱딱해. ’가져가지 마시오‘ 너무 부정적이야. 내 꺼라는 걸 알리면서도 위트가 담겼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그래서 결국 생각해낸 6단어. ’임자있는 수건‘ 꺄- 너무 마음에 들어. 역시 작가 선생?이야. ㅋㅋㅋ 자화자찬으로 명판을 만들어 꽤 오랫동안 들고다녔고 수건이랑 한 세트로 자리를 했으며 그 명판을 본 아주머니들에게 소소한 웃음을 선물했다. 그런데 명판이 필요없어진 지금 또 그런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아오- 정말 남의 수건을 가져가면 나는 어떻게 닦으라고요~~~(물론 일하시는 여사님께 부탁해 비상용 수건을 받을 수 있었지만 작고 얇아 뽀송뽀송하게 닦기엔 무리였다. 그래서 머리카락에선 물이 뚝뚝) 도둑이 그것까지 생각하진 않겠지만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스트레스다. 여사님한테 수건을 빌리는 것도 번거롭지만 누가 내 수건 가져가나 의심의 눈초리로 탕안에서의 여유를 즐길 수 없어지기 때문이다. 의심하고 싶지 않다. 속박되고 싶지 않다. 자유롭게 내 시간을 즐기고 싶다. 이 모든 것을 한 큐에 해결해준 ‘임자있는 수건’ 명판이 다시 그리워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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