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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왜 그럴까?(딸은 왜 그럴까?)

by 이문연

친구들이 재밌다며 추천해준 드라마가 진짜 재밌어서 헬스장에 핸드폰을 가져갔다.(평소엔 운동할 때 운동에 집중하느라 모든 짐은 락커에 보관한다) 내가 좋아하는 파란천 매트에 누워 복근운동을 하는둥마는둥 귀에 이어폰을 꽂고 드라마 삼매경에 빠져 있는데 카톡이 왔다. ‘저녁에 순대국 먹으러 갈까요?‘ 산에서 눕방(산의 흙바닥에 누워있는 것)중이라는 엄마의 카톡이었다. ’좋아요‘ 먹는데는 빼지 않는 먹순이인 나는 곧바로 답장을 했다. 내가 좋아하는 최애 순대국집의 순대국은 언제 먹어도 맛있고 공기밥을 추가로 시키지 않아도 밥이 부족하다 말하면 한공기(요즘 공기밥은 온전한 한공기가 아닌 60%만 담아주므로 내 식욕에는 100% 부족하다)를 더 준다. 그렇게 맛있게 순대국을 먹고 마을버스(순대국 집이 좀 거리가 있다)를 타고 집에 왔다. 배는 부르지만 바로 삶아 따끈따끈한 옥수수는 그냥 지나칠 수 없지. 이웃 아주머니가 주신 삶은 옥수수를 한입 물었다. 그러자 엄마가


”왔다갔다 차비가 3,000원.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맛있게 먹고 왜 그런 말을 해?”

“아니, 말도 못하냐?”


그래 말은 할 수 있지. 다만 맛있게 먹고 굳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의도를 나는 이해하기 어려울 뿐이라 더 이상 말을 하지는 않았다. 엄마의 언어 방식과 나의 방식은 아주 다르다. 나는 말에는 대부분 의도가 담겼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말이 많은 편도 아니지만 특히 쓸데 없는 말은 삼가하는 편이다. 게다 맛있게 먹고 ‘비싸다는 둥’ ‘뭐가 어떻다는 둥’ 그 상황을 부정하는 말은 가급적 하지 않는다. 나에게 중요한 건 ‘사실’보다 말의 효용 가치이며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서는 꼭 짚고 넘어갈 일이 아니라면 가타부타하지 않는 편이기 때문이다. 게다 말의 효용성에 대해서도 의미를 두는 편이라 가급적 필요한 비판이라면 어떻게 말하는 게 가장 좋을지도 신중히 생각하는 편이다. 커피를 좋아해 편의점 커피를 쟁여두고 마시는 나에게 엄마는 ‘중독’이라는 말도 거침없다. 벌써 몇년째인지 모른다. 5년 넘게 편의점 커피를 쟁여놨다 아아로 바꿨다를 반복하는 중인데 오늘도 아침부터 엄마가 ‘중독, 중독’해서 심기가 불편했다.


“딸이랑 아들(딸은 커피, 아들은 술이다)이 중독이라 좋겠다.”

“중독을 중독이라 그러지 뭐라고 해.”

“어차피 마실 거 기분좋게 놔두면 안돼?”

“이렇게 말해도 기분좋게 마시면 돼지.“


아오- 그렇게 중독중독 한다고 커피를 끊냐고요. 엄마딴에는 그렇게 말하면 딸과 아들이 ‘어머니, 제가 중독이었군요. 소자, 깨닫지 못한 부분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부터 커피를 끊도록 하겠나이다.’ 이렇게 나왔으면 하는 바람에 이야기하는 것이겠지만 내가 보기엔 효과도 없고 기분만 나쁘다. 정말 최악의 소통 방식인 것이다. 하지만 아들은 무대응(아들은 출근하면 그만)으로 일관하고 딸은 대응으로 일관하는데 무엇으로 보나 무대응이 훨씬 현명해 보이긴 하다. 그래서 정말 엄마가 저렇게 이야기할 때는 목구멍을 틀어막아 나의 대응 체계를 무력하게 만들고 싶다. 나는 왜 무대응을 하지 못하는가. 앞으로는 나 또한 무대응으로 대응해봐야겠다(글을 쓰면서 또 깨달았는데 우리 모녀의 말싸움 패턴 중 하나라는 점이다. 반복된다는 건 서로의 발작 버튼이라는 점이고 그 버튼은 내가 누르지 않으면 터지지 않는다)는 늦은 깨달음을 얻어본다. 엄마는 이렇게 투닥투닥 하면 무슨 생각을 할까. 나처럼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지는 않아(물론 엄마가 공격하는 입장이라 그렇겠지만 - 하지만 엄마 말처럼 사실을 말하는 것일뿐, 공격의 의도는 정말 없는 것일까)보여서 별 생각 없으신 것 같지만 나는 그런 아무 효용가치도 없고 기분만 안 좋아지는 말을 하는 게 세상 무의미하다고 느낀다. 내가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만큼 엄마도 나를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엄마를 통해 내가 싫어하는 소통의 방식을 깨달으니 이건 나름의 장점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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