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하고 샤워하는 시간이 초등학생들의 시간과 맞물리면 어느 정도의 정신없음은 감수해야 한다. 돌고래 주파수와 맞먹는 그들의 목소리톤과 쫑알쫑알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씻느라 목욕탕 안은 금세 시끌시끌해진다. 그들은 모두 수영을 배우는 아이들인데 아직 적응이 어렵고 씻을 때 엄마나 할머니의 손이 필요한 저학년들은 상대적으로 얌전하지만 4학년 위의 고참?들은 어른이 적은 그들만의 리그?에서 장난도 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들의 놀이 시간을 방해할 마음은 없으나 나 역시 오랜 시간 이 시설을 이용해온 사람으로서 어른으로 어디까지 말을 하고 말을 하지 않을지 늘 고민이 된다. 사실 모든 일이 평탄하다면 이런 고민도 하지 않겠지만 어른의 입장에서 아이들의 행동은 미숙하고 정돈되지 않은 부분이 있기에 모든 걸 방임할지 어느 선까지 이야기를 할지 ’사회적인 어른이란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해보는 것으로 고뇌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나도 아무 생각없이 ‘내 알 바 아니오’ 모드로 몸만 씻고 나가고 싶은데 그게 안된다. 5,6학년쯤으로 보이는 여학생 두 명이 온탕과 냉탕에 놓여진 빨간 바구니를 갖고 논다. 좁지 않은 목욕탕 안을 빨간 바구니에 찬물을 담아 친구에게 한 바가지 퍼붓겠다는 일념으로 쫓고 쫓기는 중이다. ‘초딩은 그럴 나이지. 하하하- 예절은 무슨. 미끄러지지나 말기를(뛰어다니므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 그런 생각과 함께 그들이 갖고 놀던 ‘빨간 바구니’를 제자리에 놓을 것인지가 관건이었다. 아이를 키우지 않아서 모른다. 아이들이 사용한 물건을 알고도 제자리에 두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아직 어리기 때문에 학습 중인 건지. 이러한 것들은 싱글인 내가 경험하는 일이며 딱히 아이가 있는 친구와 이야기할만한 에피소드도 아니라 생각해서 ‘어려서 그렇지’ 등으로 결론내리고 만다. 하지만 4학년부터는 쫌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5,6학년이면 기본적인 규칙에 대해서는 알만한 나이이며 그걸 지키는 것도 알만한 학년이라 생각한다. 그 둘은 실컷 놀고 엄한 곳에 바구니를 놓고 갔다. 일주일이 지나 어쩌다보니 또 같은 시간에 몸을 씻게 되었다. 꺄르르 거리며 빨간 바구니를 들고 쫓고 쫓기는 여학생 둘. ‘이 장면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아! 지난 주의 걔네구나.’ 이러면 자연스레 또! 그들의 행보를 주시하게 된다. 과연 빨간 바구니는 제자리를 찾을 것인가. 예상은 했지만 역시 빨간 바구니는 엄한 곳에 있었고 그 둘은 나갈 채비 중이었다. “바구니 갖고 놀았으면 제자리에 갖다 놓아야죠-‘ 가급적 부드럽게 말하고 싶었으나 중음의 보이스는 학생주임같은 목소리로 목욕탕 안에 울려 퍼졌다. 무슨 상황인지 어리둥절해하며 빨간 바구니를 원래 있던 온탕, 냉탕 근처에 갖다 놓았다. 그들이 진짜 몰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공공장소에 있는 물건에 대한 생각이 그렇게(아무렇게나 사용) 정립되어 있어서 그런 건지 알 길은 없다. 하지만 그들이 갖고 놀다가 엄한 곳에 바구니를 갖다 놓으면 타인은 그 바구니를 찾거나 거기서 일하시는 여사님이 바구니를 제자리에 갖다 놓게 된다. 그건 분명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이다. 초딩들이 목욕탕 안에서 어떻게 놀건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싶다. 나도 ‘내 알바 아니’라는 개인주의적인 어른으로 살고 싶지만 공공장소이며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라는 개념을 알만한 나이에는 적어도 타인에게 피해를 줘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아마 웬 아줌마가 자기네들한테 뭐라고 해서 기분이 나빴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한마디로 그들이 빨간 바구니를 갖고 논 후 제자리에 갖다 놓는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다음에도 이 시간에 와서 바구니를 갖고 노는 그 둘을 보게 된다면 또 주시할 것이다. ‘I see You’
* 7/11 글을 못 써서 이 글로 대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