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잘 쓰기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일까. 어릴 적 책을 많이 읽고 공부를 잘한 이들은 비교적 글을 잘 쓰게 된다. 이건 머리가 좋아서라기보다는 머리 안에 들어 있는 소스가 많으면 그 소스를 연결하기 좋은 환경이 마련된 것이라 그렇다. 고로 공부를 잘하지 않았어도 내가 가진 소스(정보)가 많고 그걸 연결하는 훈련이 되어 있다면 기본 필력은 갖췄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글을 잘쓰기 위해서는 독서(타인의 경험으로부터 배우기)를 많이 하는 것도 좋지만 영화를 많이 보는 것, 여행을 많이하는 것, 남다른 경험을 많이 하는 것 또한 도움이 된다. 인문학적 소양이란, 나의 경험을 지식과 연결시켜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하는데 글에서 깊이를 뿜어내고 싶다면 흡수한 경험과 지식을 팥빙수 먹듯 휘휘 저어 나만의 것으로 해석하는 과정이 필수다. 인문학적 소양을 키우기에 글쓰기가 적합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글을 쓰려면 끊임없이 생각해야 하고 무엇을 더하고 뺄지 고민해야 하며 전체 글의 완결성을 놓지 않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기본 소스를 가지고 있다는 전제 하에) 글을 어떻게 쓰는 거냐고 묻는다면 꼬리와 가지로 쓴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뭔 말이냐고? 미안하다. 너무 생략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처럼 생각하고 나무의 잔가지를 쳐내는 것처럼 다듬는다. 글이 잘 써질 땐 내가 글을 쓰는 건지 글이 나를 쓰는 건지 모를 정도로 머릿 속에 글이 떠오른다. 그럴 땐 떠오른 글이 도망가지 않도록 손가락을 빨리 튕겨야 한다. 타다닥타닷타다다닷! 하지만 별 생각이 나지 않을 때도 그래야 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처럼 ’이 내용 뒤에는 이런 내용을 써보자.‘ 타다닥타닷타다다닷! 하지만 역시 별 생각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쓰다보면 복불복 장벽을 맞닥뜨리게 되는데 그럴 때 필요한 것이 가지치기다. 더 잘 자라게 하기 위해 혹은 보기 좋은 모양새를 위해 불필요한 부분을 과감히 쳐내는 것. 초심자의 경우 이 부분이 잘 보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그런 부분이 어디인지 검토하고 확인하려 노력해야 한다.(보통 수업이나 모임에서는 글쌤이나 글코치, 동료들이 도움을 준다) 그래서 글 좀 써본 이들은 쓰면서 쳐내고, 다 쓰고 또 쳐낸다. 탁.탁.탁! 탁.탁.탁! (가지치기의 칼날을 휘둘러보자아-) 쉽게 쓰니 쉬워 보이지만 꼬리와 가지의 활용은 결코 쉽지 않다. 게다 이 글이 쉬워 보이는 이유는 쪼매난 핸드폰 화면으로 열나게 엄지를 두드리며 쳤다가 지우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엄지에 굳은 살이 박혀도 이상하지 않을텐데 하루만 쳐도 손가락에 굳은 살이 박히는 통기타에 비해 글쓰기는 정말 티가 안나도 너무 안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의 나열과 나열된 글을, 쓰면서 고치고, 완성해서 고치고, 저녁에 고치고, 화장실에서 고치고, 버스로 이동하면서 고치는 것으로 가지치기를 한다. 그렇게 글쓰기는 완성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글을 백번 정도 읽으면서 퇴고를 한다는데 난 그렇게는 못한다. 쓸데없이 많이 읽는 것도 나와 내 글과의 거리(객관화)를 적당히 유지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글을 쓰고 나서 10번 정도 읽으면서 고치되 글을 쓴 당일에 읽고, 하루 지나서 읽고, 하루 묵혔다가 읽고 하는 것으로 마음게 들 때까지(아무리 고쳐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글이 문제가 아니라 글쓴이의 문제다. 적당한 선에서 펜[정확히는 엄지 또는 손가락]을 놓는 것도 작가의 역량이다) 고치는 것. 그게 바로 가지치기를 효율적으로 하는 요령이다. 꽤 잘 나가는 글쓰기 작가들이 이 글을 보며 코웃음을 칠 수도 있지만 자고로 진정한 작가가 되려면 남의 코웃음 정도는 콧방귀 뀌어줄 수 있는 배포는 지녀야 하거늘. 콧방귀를 좀 더 잘 뀔 수 있게 콧구멍을 벌렁벌렁 거려보자. 이렇듯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작업을 하다보면 엄지뿐 아니라 콧구멍이 바빠지기도 한다. 양 손에 꼬리와 가지라는 균형감각을 쥔 채 글쓰기에 빠져보자. 그러다보면 망나니처럼 글춤을 추고 있는 당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글쓰기에 입문하는 모두에게 꼬리와 가지 신령의 가호가 깃들기를 바라며, 나의 글춤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