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나를 괴롭혀온 것이 있다. 그건 바로 본캐, 부캐와 필자의 싱크로율이라고나 할까. 김훈 작가는 글에서 그 사람의 비주얼을 통해 그 사람이 하는 일을 유추할 수 있다면 그건 상당히 이상한 일이라고 했다.(뉘앙스가 그런거지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는다. 쏴리- 나중에라도 찾게 되면 정확한 워딩을 찾아서 올리겠어용) 그 말에 위안을 받은 나는 내 비주얼이 옷과 썩 어울리지 않아도 그러려니 했다. 게다 비주얼 뿐 아니라 성향 자체도 썩 어울리지 않아도 그러려니 했다. 그래도 내가 옷이라는 도구를 통해 사람과 세상에 조금이라도 유익한 영향을 주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걸로 충분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세상은 냉정한 것. 김훈 작가가 아무리 네임드라고 해도 김훈 작가의 말은 그 말에 해당하는 사람들만 좋아하는 말이 아니었나 싶다. 나 역시도 글쓰기 수업을 할 때 더 편하고 재미있고 옷습관 수업은 뭐랄까 내가 이 길을 선택했으니까 꾸역꾸역 하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이제는 알겠다. 나는 글쓰기 수업을 더 좋아한다. 그리고 더 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그렇다고 옷습관 수업을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다. 엄밀히 말해 좋아하기보다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니까 내가 하는 것이다. 원해서 하는 거랑 필요해서 하는 거랑은 체감이 다르다. 옷을 살 때도 원하는 옷을 더 사고 싶어하지 필요한 옷을 더 사고 싶어하진 않는다. 필요한 아이템을 채우는 것이 실로 어려운 이유다. 그래서 이제는 인정해야겠다. 그래, 나라는 사람은 글쓰는 걸 더 좋아하고 옷 입는 건 나에게 맞는 최소한의 옷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도 그 '최소한의 옷'은 심리적으로는 만족감을 주고, 환경적으로는 덜 파괴하는 쪽이었으면 하는 바램이라 옷습관 수업은 의무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꾸역꾸역하면 어때. 하고 싶은 것도 하고, 해야 하는 것도 하다보면 어딘가쯤에서 그 길이 합쳐지거나 만나지 않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