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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절연 후유증

by 이문연

2019년에 연락을 중단한 친구가 꿈에 종종 나온다. 못해도 두달에 한 번은 그 친구 꿈을 꾸는 것 같다. 레파토리도 다양하다. (그 친구가) 건물주가 된 꿈, 같이 밥 먹는 꿈, 유학을 가는 꿈 등. 대부분의 꿈은 현실과 다르게 아주 화기애애하게 흘러간다. 그래서 꿈에서 깨어나고도 즐거웠던 기분이 잔향처럼 남아있다. 대체 그 친구 꿈을 왜 이렇게 자주 꾸는 것일까. 꿈은 무의식의 반영이므로 내가 그 친구를 그리워하는 건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시 연락을 하는 게 맞냐?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본다면 종결어미를 맞냐가 아닌 ‘원하냐’로 바꿔야 할 것이다. 난 그 친구와 다시 연락하길 원하나? 바로 Yes가 나오지 않는다. 같이 있으면 즐겁고 편한 부분이 분명 있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동전의 양면처럼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부딪힘의 구간도 존재한다. 마찰의 구간이 감당할만하다면 괜찮겠지만 그 친구와의 마찰에는 나의 열등감이 자리잡고 있다. 친구 사이에 그런 게 어디 있냐고 할 수도 있다. 맞다. 보통은 그런 게 없거나, 있어도 친구 관계는 유지된다. 하지만 나는 내가 몰랐던 나의 그림자를 그 친구와 함께 있음으로 발견했고 서로 다른 가치관으로 인해 함께 있을 때 나의 약점을 더 크게 느꼈다. 그 친구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 친구가 잘한 부분을 인정해주고 그 친구의 선택을 존중했어야 했는데 나는 내 가치관에 빗대 평가하고 조언했다. 그렇게 서로가 날카로워지는 부분이 있었고 그 부딪힘이 반복되던 어느 날, 나는 친구에게 ‘거리를 두자’고 말했다. 내가 거리를 두자고 말하지 않았다면 우린 절연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나의 선택은 절연이라는 결과를 가져왔고 난 어쩌면 그 감당을 계속 꿈으로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 친구는 모르긴 몰라도 나보다 더 잘 (그리고 행복하게도) 살고 있을 것이다. 20대 때 일찍 결혼해 대출금 갚느라 많이 아끼면서 나한테 쿠사리도 많이 받았는데 40대가 되니 그 친구의 행보는 (부모니의 영향이 컷겠지만) 남들보다 앞선 경제적 자립의 첫단추였다. 그 친구의 꿈을 꿀 때마다 ‘잘 살고 있겠지’라고 중얼거리며 같이 놀던 옛날을 떠올려본다. 같이 놀러갔던 것, 같이 먹었던 것, 같이 만화책봤던 것 등등. 내 오랜 시간의 그리움이 아직 해소되지 않아 그렇게 꿈으로 나오는가보다. 5년이나 지났는데도 꿈 속의 친구는 헤어질 때 모습 그대로다. 지금은 또 달라진 모습이겠지만 꿈에서도 만나지 못할 그 때쯤, 다시 보게될 날이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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