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 이어폰을 쓴다. 무선은 충전하기 귀찮아서 유선으로 갈아탔다. 가끔 뭔가를 듣지 않아도 귀에 꽂고 있는데 소음을 적당히 차단해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늦은 귀가길의 좌석버스. 라디오에서 노래가 울려 퍼진다. 그런데 목소리가 겹쳐 들리는 것이 아닌가. '엥? 기사님 혹시 노래 부르시나?' 귀에서 이어폰을 살짝 뗐다. 노래는 2000년대에 20대였던 이들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벌써 1년>이다. 2001년에 나온 이 노래는 노래만큼이나 뮤직비디오가 유명한데 노래를 듣다보면 자동적으로 뮤비 장면이 떠오른다. '기사님이 내가 있다는 걸 모르나?' 승객이 있는 줄 알면서도 노래를 부른다면... 입이 간질간질한 것을 참지 않은 것일테고, 승객이 없다고 생각하고 노래를 부른다면... 가끔 승객 없을 때 샤우팅을 즐기는 기사님일텐데. 이유야 어쨌든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는 1인으로 기사님과 2000년대의 감성을 공유하는 것 같아 기분이 (즐거운 쪽으로) 묘했다. 집이 종점 근처라 뒤를 돌아보니 아무도 없었고, 나 역시 기사님 쪽 좌석이어서 기사님 자리에서는 잘 안 보였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기사님의 흥을 중단하지 않기 위해 내릴 때까지 몸을 잘 숨기고 있었다. 그러면서 상상했다. 나까지 노래에 합세하면 어떨까? <벌써 1년>의 후렴구는 누구나 다 알고 있으니까. 라디오속 브라운 아이즈와 기사님 그리고 나까지 3중창으로 노래를 부르는 상황은 현실에선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기에 궁금하고, 그렇기에 일어난다면 짱 웃기겠다란 생각을 했다. 그런 낭만적이고 외향적이며 흥 많은 또라이(긍정적 의미의)가 있을까?란 생각을 하면서 어느덧 내릴 때가 되었고, 기사님께 조금 더 밝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흥을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