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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자 글쓰기] 127. 상처를 연화시키는 편지

by 이문연

상처를 주는 사람 중에 상처를 주려고 그런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특히 가족 관계는 그 특유의 복잡한 애중관계로 생각지도 못한 생채기를 낸다. 이럴 땐 상처를 받은 사람만 있을 뿐, (의도적) 공격자는 없다. 그렇다면 상처를 받은 사람은 이 상처를 어떻게 해야 할까. 스스로 연고를 바르고 상처를 낫게하는 능력이 있다면 그렇게 하면 된다.(그런 사람이 있다면,) 하지만 그렇게 발생한 상처는 생각보다 쉽게 아물지 않고, 가족이라는 상황 속에서 같은 곳을 계속 긁힐 확률이 높으므로 그런 일방적인 상황이라면 거리를 두는 것이 맞다. 하지만 거리를 두는 것만이 또 상책은 아닌 것이 어쨌든 계속 보게 될 상황에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고, 그럴 때마다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건 또 용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이런 솔루션을 주고 싶다. 편지를 쓰라고. 하지만 감정을 토해내선 안된다. 시간을 충분히 갖고 나의 입장에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한 번씩 생각해보고 나의 상처를 최대한 보듬을 수 있는 단어를 신중히 선택해 써내려가야 한다. 그런 다음 읽고 또 읽는다. 이 편지를 받은 상대방이 어떻게 나올지도 떠올려보고 반응에 따른 나의 기분도 생각해본다. 그렇게 정성?들여 쓴 편지를 카톡에 옮겨 담는다. 전송을 누르지 않고 쳐다보다 다시 메모장으로 옮겨 온다. 희한하지만 그 편지를 보낸 것 같은 기분에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다. 그렇게 작성된 편지가 내 상처에 후시딘이, 마데카솔이 되어준다. 상처를 튕겨내는 법은 아직 배우지 못했다. 다만, 상처를 연화시키는 법은 조금 알 것 같다. 후시딘과 마데카솔이 필요하다면, 부치지 않을 편지를 담담히 써보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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