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라퍼빌러티가 상승하고 있다. 오지랖+ability. 오지랖도 능력이라면 능력일 수 있을까. 내향형 인간이지만,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라는) 바라는 인간상이 결합해 오지랖을 발생시킨다. 마을버스 정류장. 부슬비가 내린다. 퇴근 시간이라 사람들이 정류장에 옹기종기 기다리는 상황. 한 8명쯤 되었을라나. 퇴근한 젊은 직장인들 무리와 나 그리고 60대의 아주머니. 퇴근 시간이라 마을버스가 분명히 만원일텐데 걱정이 되어 버스 어플을 확인했다. 어쩐 일인지 마을버스가 연달아 오고 있는 상황. 앞의 마을버스는 분명 만원일테니 조금 더 기다렸다 뒤에 오는 버스를 타자라고 생각했다. 역시 사람으로 꽉 차 있다. 앞의 마을 버스 기사님이 손짓으로 뒤쪽을 가리킨다. '뒤차를 타세요.'라는 제스처.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알아들은 듯 했지만 어쩐 일인지 아주머니만 마을버스를 졸졸졸 쫓아간다. 그냥 지켜보기 뭐해서 '뒤에 마을버스 온대요.'라고 알려드렸다. 아무도 나서지 않자 근질근질한 입이 떨어진 것. 또 다른 날, 옆에 앉은 여성이 벨을 눌렀는데 벨이 먹히지가 않는다. 그 여성이 누른 벨은 위치상 쓸데없이 눌릴 수 있는 곳에 있어 마을버스 측에서 막아 놓은 벨이다. 그 여성을 보자 내 옆에 있는 벨에 손을 대고 '눌'이라고 하자 그 여성이 '네 감사합니다.'라고 답했다. '눌러드릴까요?'도 아니고 '눌'이라니... 나의 척수반사(그것은 알기 싫다의 UMC가 사용하는 표현인데 마음에 들어 써먹는 중)가 놀라우면서도 순간 알아보고 감사인사 해준 그녀에게도 고맙다. 원래 이러한 선의의 오지랖은 때로는 무응답으로 일관될 때가 있는데 그러기에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는 선의의 척수반사를 자제시키기도 한다. (고마운 일은 '고맙다'고 좀 합시다.) 물론 난 대부분의 소극적인 한국인들이 고마운 마음이 없어서라기보다는 말로 꺼내는 연습이 잘 되지 않아서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하여간, 오지라퍼빌러티가 상승하는 중인데 내향형 기질과 바라는 인간상 사이의 괴리가 있다 보니 선의의 행동임에도 막 나서는 게 쉽지 않다.(웬만하면 가만히 있고 싶다) 그래도 우리 사회가 선하게(사실 내 행동은 선한 축에도 못 들지만) 작동하는 꽤 많은 부분은 선의의 오지라퍼빌러티에 있다고 믿기에 존재감을 드러내는 오지라퍼빌러티에 약간은 자부심을 가져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