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의무와 희생
어느날 처럼 유튜브에 뜬 알고리즘 영상을 구경하다 '의외로 많다는 가족문제'라는 쇼츠를 보게 되었다. (낚는/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제목을 공부하기 위해선 이런 쇼츠 제목을 분석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영상보다 영상에 달린 댓글에서 난리가 났는데 이유는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했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파와 부모로 자식을 키우다보면 '희생'한다고 느끼게 되는 대목이 있다는 파로 나뉘어 열띤 논쟁을 벌이는 중이었다. 솔직히 이런 제목에 낚이는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가족 문제'가 있는 사람들일테고, 그러므로 그 영상을 보더라도 나의 감정이입으로 인해 '객관적이기보다 주관적인 감상, 감정'으로 댓글을 달 확률이 높다고 느낀다. 어쨌든 부모가 자식을 내리사랑으로 키우는 게 의무인가 희생인가의 끝나지 않은 싸움(주로 자식으로 산 세월이 많은 이들은 의무를 강조, 부모로 경험을 한 이들은 희생을 무시하지 못한다는 입장이었다. 의무를 강조하는 이들이 치트키로 내세우는 말 중의 하나가 '누가 낳아달래?'였다. - 피곤하여 댓글을 모두 다 읽지는 않았다)을 보다 부모가 아니고 자식도 없는 나는 어떻게 생각하나 생각해보기로 했다.
일단 의무와 희생을 이야기하기 전에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 부모는 자식을 사랑한다. (사랑한다는 전제로 이야기한다)
- 사랑의 형태는 다양하다. (기본적으로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사랑의 모양도 있다)
제대로 된 부모라면 아이를 낳았다면 독립된 개체가 될 때까지 의무적으로 키우는 게 맞다. 하지만 인간이 로봇이 아닌 이상 의무만으로 사람을 키울 순 없다. 식물과 동물에도 애정을 쏟듯이 애정으로 키워줘야 하는데 사실 애정을 제대로 줄 수 있는 부모가 많은 건 아니다. (애정이라 함은 쌍방의 교류와 가족 구성원들의 케미가 맞아야 하므로) 여튼, 그렇게 애정과 책임감(의무를 책임감으로 바꾸자)으로 자식을 한 명의 올바른 성인으로 키워내는데 얘가 어느 순간 말도 안 듣고 내 맘 같지 않으면 '자식을 키우느라 힘들었던 과거'가 스물스물 올라온다. 자식과 부딪히는 상황이 많아지면 부모는 그걸 자식에게 '희생했다'고 공격하는 것이다.(진짜 희생이라 생각하기보다는 속상한 마음을 표현하는 게 서툴러서 그런 건 아닐까) 나 혼자서 인생을 살아가는 게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살거나, 누군가를 책임지게(그것이 생명이라면 더더욱) 된다면 오롯이 나로서 존재하는 삶은 어려워진다. 나의 역할은 확장되며 그 이전의 나와는 다른 사람으로 재정립되어야 하는 것이다.
희생이라는 단어에는 ‘너때문에’가 담겨 있다. 부모가 키워준 고마움을 성인이 되어 알아주면 참 좋으련만, 그 고마움을 알기까지는 진짜 부모가 되어보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부모가 아닌, 자식이 없는 사람이 상상하기 힘든)힘듦이 있다. 가족은 부모와 나만의 문제가 아닌, 부부를 바라보는 자녀, 자식들간의 관계를 지켜보는 부모, 그리고 각 자식들과 부모와의 관계, 또 그 관계를 지켜보는 각 자식들의 생각과 감정으로 각자가 내 마음 같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이해가 쉽지 않은 것 투성이다. 그러므로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걸 상대방에게 갈구(용서, 위로, 배려 등)해서는 안 된다.(물론 갈구해서 좋게 해결되면 베스트지만 그렇게 될 확률이 희박하다는 것에 5백원을 건다) 성숙한 부모는 자식이 속상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들어줄줄 알아야 하며 성숙한 자식은 (부모에게 받은)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아물게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와 ‘희생’은 어쩌면 한 세트일지 모른다. 관계 회복을 원하는 입장이라면 희생이라는 단어보다는 내 마음을 표현할 다른 단어를 찾으려는 심사숙고가 필요해보인다. 자식 역시 (부모가 정말 막장이 아니라면) ‘누가 낳아달래?’라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 쓰다보니 결국 의무냐 희생이냐가 중요하기보다는 파국으로 치닫는 단어 선정이 문제가 아닌가 (글이 정리가 안되는 마당에) 결론내본다.
* 역시 부모가 아니고 자식이 없어서 글로 풀기가 어렵네요. 부모이자 자식을 키워본 경험이 있는 분들의 고견을 여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