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릴 때가 지났는데 버리지 못하는 옷이 있다. 디자인, 기능이 모두 알맞은 옷. 내 몸에 잘 맞고 입었을 때 마음에 드는 옷은 오래 지낸 친구와 같은 느낌이다. 같이 있기만 해도 편하고 즐거운 기분. 친구는 닳지?(닳기도 할까?) 않지만 옷은 닳는다. 남들이 보면 좀 오래 입은 느낌이 나겠지만 그냥 뻔뻔하게 입고 있다. 예전엔 다른 사람이 봤을 때 닳거나 해어진 느낌이 드는 옷은 버려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막상 좋아하는 옷이 해어지니 버리지 못하겠다. '죽어도 못 보내~'를 옷에게 시전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나에겐 그런 옷이 또 있다. 겨울 야상점퍼인데 소매가 다 해어져서 너덜너덜하다. 하지만 입었을 때 따뜻하고 소매만 잘 가리면 나름대로 그냥 낡은 겨울옷일 뿐, 남들이 나를 험블하게 보던 말던 상관없다. 하지만 그 옷을 입을 때마다 복병을 만나는데 그건 바로 엄마다. 버리라고 할 때마다 옷의 주인은 나라며 엄마와 팽팽하게 맞서 옷의 수명을 늘리는 중이다. 하지만 나도 내 자식이 이런 옷을 입으면 갖다 버리라고 할 것 같다. '돈이 없니?(사실 쪼들린다), 센스가 없니?(보는 눈은 있다), 쇼핑이 어렵니?(아이쇼핑이 취미다)' 모든 것을 다 커버하지만, 그냥 내 마음이 준비가 안 되었다. 여름에 잘 입었던 검은색 티셔츠도 올 여름 지나면 진짜 보내줘야 할 것 같고, 파란색 겨울 점퍼도 올 겨울 지나면 진짜 보내줘야 할 것 같은데 '진짜'가 진짜 이루어지려면 내년이 되어봐야 알 것 같다. (나도 내 마음 몰라)
#500자글쓰기
#버리지못하는옷
#500자글쓰기100일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