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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자 글쓰기] 153. 죽이는 법, 살리는 법

by 이문연

마을 버스에서 맞은 편에 앉아 있던 여성이 급하게 내 앞 자리로 옮겨 앉았다. 내 앞에는 남성이 앉아 있었는데 그 옆자리에 앉은 것이다. 이렇게 급하게 자리를 옮기는 건 100% 벌레인데... 어떤 벌레인지 궁금한 나는(나도 벌레 쫄보라 여차 하면 도망가야 하므로) 건너편 자리를 쳐다봤다. 말벌은 아닌데 꽤 큰 벌이 있었다. 버스 안에 갇힌 벌레를 볼 때마다 어쩌다 들어왔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아마도 차고지에서 문을 열어놨을 때 들어왔을 것이다. 에어컨 바람을 하도 쐬어서 그런지 비실비실하다. 창문을 열어주면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은데 건너편까지 가서 문을 열어줄 용기가 나질 않는다. 그 동안 그 좌석에는 한 명의 여성이 앉았다가 말벌을 발견하고는 급하게 자리를 옮겼고 계속 비어 있었다. 아 몰랑. 문 열어줄 용기는 나지 않지만 말벌이 나갔으면 좋겠는 마음은 있어서 누군가가 창문을 열어줬으면 하지만 그 위용?에 과연 그러한 용자가 나타날까 궁금하던 차에 그 자리에 50대 남성이 앉았다. 안쪽 좌석에 앉다가 창문에 붙은 말벌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고 말벌을 잡기 위해 가방을 뒤적이는 듯 했다. 부채 같은 걸 꺼냈는데 (난 차마 그 광경을 보지 못할 것 같아 고개를 돌렸다) 뒷좌석이 어수선하니 바로 앞 좌석에 앉아 있던 40대 남성이 뒤를 돌아보고는 벌을 발견했다. 고개를 돌려서 중간 과정을 자세히 보지는 못했는데 40대 남성이 잽싸게 창문을 열었고 다행?히 말벌은 누구도 쏘지 않고 죽음도 당하지 않고 살아서 날아갈 수 있었다. 40대 남성 땡큐. 나의 마음과 마을 버스 안은 평화를 되찾았고 역시 죽이는 법보다는 살리는 법을 택하는 자가 위대한 용자라는 생각을 했다.


* 분당 구미동에서 500자 쓰기 워크숍을 진행합니다. 글쓰기가 처음인, 부담없이 써보고 싶은 4,5,60대 중년 여성분들을 초대합니다.


https://blog.naver.com/ansyd/223949807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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