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들수록 이불킥할 일은 줄어든다. 이성의 끈을 부여잡고, 이 사회의 일원으로 민폐끼치지 않고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끔 이성을 앞지르는 본성이 강해지면 이불킥할 일이 생긴다. 이불킥할 일이 생기면 잠자리에 들 때까지 가만히 있어야 할까. 잠자리에 들어서 온전히 이불을 킥할 수 있어야만 그 생각을 떨쳐낼 수 있을까. 곰곰히 생각했다. 내가 저지른 그 부끄러움?에 대하여. 부끄러운 일은 뭘까. 부끄러운 일은 상식적이지 않고, 일반적이지 않은 일을 말한다. 그 행동이 정상과 또라이의 경계선 어디 즈음에 위치할 때 우리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내가 왜 그랬지?'라는 생각을 해도 이미 늦었다. 내 안의 작지만 소중?한 또라이 자아는 방심했을 때 튀어나왔고 순간의 정적과 민망한 상황에 대한 부끄러움은 사회적 자아의 몫이다. 그 일이 벌어진 후 머릿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림으로 그려본다면 '사회적 자아'가 방문을 닫고 숨어?버린 '또라이 자아'의 방문을 두드리며 말한다. "야, 너 숨지 말고 나와라. 너때문에 내가 얼마나 쪽팔렸는지 알아?"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둘은 동전의 양면이다. 사회적 자아가 잘 숨기고 살고는 있지만, 언제든 튀어나올 수 있는 것이 또라이 자아인 것이다. 부끄럽다. 부끄럽다. 격렬하게 부끄럽다. 하지만 성숙한 어른이라면 이 부끄러움 또한 숙명으로 받아들여야겠지. 이 부끄러움이 빨리 잊혀지도록 발을 동동 굴려본다. 소용이 없다. 역시 이불을 덮고 이불을 발로 차야만 조금 잊혀질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