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미러에는 'SNS의 좋아요' 점수로 자신의 사회적 위치가 결정되는 에피소드가 있다. 사람들은 최대한 좋아요 점수를 받기 위해 노력하고, 좋아요가 높은 사람은 자연스레 권력을 획득하게 된다. 오늘 무쓸모에 대한 글을 쓰려고 보니 그 에피소드가 생각이 났다. 모두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려고 애쓰는 삶.
존재 자체로 가치를 인정받지 않고, 무언가를 이루어야 인정해주는 삶은 사회가 그렇게 만들기도 하지만 보통은 부모로부터 많이 물려받는다. 하지만 존재 자체로 가치가 있으려면 함께 있을 때 정서적 기쁨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유는 그들의 존재가 그들에게 쏟는 금전적 가치와 에너지를 뛰어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 역시 그냥 존재만으로 보호자를 좋아한다. (갑자기 코천이가 보고 싶다. 근데 얘도 내가 고구마를 줘서 좋아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고로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기브 앤 테이크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정서적 가치를 무시하고 눈에 보이는 것들만 쓸모로 여긴다. 그러니 드라마나 영화에 클리셰로 나오는 인간상 중의 하나가 정서적 재산이 마이너스에 수렴하는 돈 많은 자식 또는 부모가 아닐까. 드라마나 영화로 갈 것도 없다. 최근에 자기 아들을 사제 총으로 쏘아죽인 아버지도 그러하다. 매달 640만원을 전 부인과 아들에게 생활비로 받은 그는 정서적 재산을 스스로 만들지 못해 아들을 죽이고도 억울해한다. 돈이 많으면 정서적 재산이 뿜뿜할까? 많은 사람들은 착각한다. 돈이 많으면 정서적으로도 행복할 거 같다고. (물론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생산성 없는 인간'이라는 건 금전적인 것만 다루었을 때를 말한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주위 사람들에게 어떤 정서적 나눔을 행하는가. 난, 자신을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생산적이지 못한 스스로를 무쓸모하다고 격하시킴으로써 주변 사람들로부터,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단절시키고 위축시키는 것이 가장 큰 위험'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자기비하는 '자신의 일부가' 주류에 속해 있었고, 그 주류에 속함을 자랑스러워 하며, 그러한 대우와 자신을 동일시한 분위기에 오래 머물었을수록 강화된다. 혹은 주위에 '소위 사회에서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포진해 있고, 그 사람들을 우대해주는 분위기(대화의 패턴이 늘 비슷)에 머물러도 영향(상대적으로 인정받지 못함)을 받는다.
좋은 학교를 나오는 것, 좋은 기업에 다니는 것, 좋은 직업을 갖는 것, 돈을 많이 버는 것 등 누구나 부러워할 속성을 지니는 것은 사회를 이루는 하나의 집단이다. 하지만 그러한 집단에 속하지 않았다고 무쓸모 하다고 여기는 것이 언젠가부터 너무 자주 보인다. 그러니 내가 가진 쓸모 있는 것을 잃어버렸을 때 무가치하게 여겨지지 않을까 쭈구리가 되며, 사람들 역시 그러한 분위기를 당연하게 여긴다. 직장이 없어도, 번듯한 일을 하지 않아도, 돈을 적게 벌어도 개인의 가치는 성과물로만 판단할 수 없다.
뭔가를 해주지 않으면 상대방이 떠날 것 같은 마음. 상대방은 당신이 뭔가를 해주기 때문에 당신 곁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다) 당신에게 받는 정서적 가치가 좋기 때문에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다. 잘은 모르지만 정서적 가치를 모르고, 정서적 재산이 적은 사람들이 대부분 보여지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거기에만 매달린다고 생각한다. 돈을 많이 벌면 사람들이 모이겠지. 좋은 직장에 다니면 인싸가 되겠지. 좋은 학교를 나오면 우러러 보겠지. 이러한 생각이 강할 수록 정서적 가치를 소홀하게 여긴다.
실제로 드물긴 하지만 영화 감독 중에 오랜 세월을 무명으로 지내다가 늦게 빛을 본 사례를 보면 정서적 재산이 엄청나게 많은 게 느껴진다. 함께 있을 때 즐겁고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들에게 사람들은 자신의 시간(돈이라고 해도 무방)을 쓴다. (물론 정서적 가치의 힘을 아는 사람들만.) 우민호 감독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40살 될 때까지 어머니한테 용돈 받으면서 집에서 시나리오 쓰면서 지냈다고 했다.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있었지만 40살이라는 나이를 생각하면 어머니도 우민호 감독도 정서적 재산이 평균 이상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쓸모없는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 내 아들이 쓸모없는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 정서적 측면에서 괜찮은 인간이라는 생각. 존재만으로도 괜찮은 인간이라는 생각. 이러한 것들이 무쓸모 인간 속 가치를 찾아내는 힘이다. 한 명의 사람으로서 우리는 돈 말고도 다양한 나눔을 하며 살아갈 수 있다. 돈(혹은 보여지는 것)이 아닌 것으로 나눔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인간을 생산이 멈추면 폐기해야 하는 기계처럼 볼 것이다. 왜 당신의 가치를 생산적인 것으로만 따지는가. 왜 우리는 이러한 분위기에 잠식당해 스스로를 무쓸모 인간으로 취급하며 살아가는가.
대중적 코드를 바꾸는 건 어렵다. 하지만 당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주눅들 필요는 없다. 보이지 않는 손가락이 계급을 만들고, 권력을 만들고, 등급화하더라도 거기에 매몰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존중하자. 정서적 재산은 누가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스스로가 만들 수도 있다. 지금 사회에 진짜 필요한 것은 돈 많다고 자랑하는 이들이 아닌, 정서적 재산을 가진 이들이다. 주변을 보자. 정서적 재산을 가진 이들이 한 두명씩은 있다. 그들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을 새롭게 이식하고, 내 머릿 속의 무쓸모 기생충을 박멸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