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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연 Mar 17. 2018

사소한 글쓰기(47) 하고 싶은 [캠페인]

공공 호칭과 백팩 문화에 대하여

에피소드(1) 공공 호칭 캠페인


버스를 타다보면 운전 기사 아저씨를 불러야 할 때가 있습니다. 언젠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매번 '아저씨'라고 불렀던 저에게 충격을 안겨준 호칭이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기사님'이었죠. 기사님? 저에게 '님'자는 어떤 모임에 갔을 때 서로를 어색하지 부르지 않기 위해 붙였던 단어였습니다. 임금님, 선생님, 작가님 등등 님자는 상대를 높여 부르기 위해 붙이는 단어이기도 하죠. 그런데 '기사님'이라니. 꽤 오랫동안 운전 기사 아저씨는 저에게 그냥 아저씨였습니다. 사실 아저씨가 '운전 기사'라는 직업을 대변하지는 않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불러야 할지 별 고민없이 '아저씨'라 불러왔고 지금은 여성 운전 기사도 많아져서 더 이상 '아저씨'라는 호칭이 적합(원래도 적합하지는 않았습니다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기사님이라는 단어를 들었던 날 저는 호칭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 '아저씨'로 불러온 호칭이 쉽게 '기사님'으로 바뀌지는 않더라고요. '기사님'은 입에서만 맴돌뿐 입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차 하기 전에 벨을 꼬박꼬박 누르는 것으로 우수 탑승객을 꼽는다면 저는 1%안에 드는 VIP 탑승객일 겁니다. 간혹 벨을 누른 걸 깜빡하고 운전 기사 아저씨가 지나치기도 하는데 저는 그 때마다 이번엔 '기사님'으로 불러야지 다짐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기사님, 내려주세요!'라고 이야기했고, 한 번 터진? 호칭은 그 다음부터는 쉽게 나오더라고요. 그 날 이후 저에게 남성 운전 기사나 여성 운전 기사는 모두 '기사님'이 되었습니다. 호칭이 주는 힘은 참 대단합니다. '님'하나 붙였을 뿐인데 제가 만약 여성 운전 기사라면 '아저씨'나 '아줌마'보다는 '기사님'이 훨씬 듣기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기사님'으로 부르는 것이 제가 처음 느꼈던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전파(될지 모르지만)할 수 있을 거란 착각이 좋습니다. '기사님'은 어떤 직업적 능력을 드러내기에도 좋은 호칭이라 생각합니다. 기사는 기술 자격 등급의 하나로 실제로 어떤 자격이 있는 사람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니 어떤 전문적인 기술로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부분의 사람을 '기사님'으로 지칭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러면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마치 이런 호칭이 '공공 문화'처럼 자리잡아야 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죠. 어쩌면 노동 자긍심은 호칭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불려지는지에 따라 나의 직업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체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웹툰 송곳의 작가 최규석은 문화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문화 권력이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게 작가'님'으로 불리우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호칭에 자연스레 '높임'을 붙이는 것으로 대우받고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회의 인프라에서 일하는 분들의 호칭에 '님'자가 붙을 수 있도록 바꾸고 그렇게 부르는 것을 하나의 문화로 바꿔보면 어떨까?란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일했던 곳에서는 건물의 청소를 담당하는 환경 미화 아주머니들을 '여사님'으로 불렀습니다.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고 그 분들을 깔보거나 존중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반복되는 호칭은 사람들의 무의식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여사님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여사님'으로 부르면 된다고 알려준 것이 감사했습니다.


아직도 호칭이 개선이 되어야 하는 직업군은 많습니다. 실제로 어떻게 불러야 할지 애매해서, 몰라서 그냥 아저씨, 아줌마, 저기요 로 불러지고 있는 직업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경찰관, 소방관도 그 직업을 지칭하는 것이지 우리가 경찰관이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또한 경비원도 경비원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경비 아저씨라고 부르지만 편의상 경비라는 일과 아저씨를 합쳐 부르는 것일뿐, 그것이 그 분들의 직업적 가치를 대변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국어를 연구하는 혹은 문화인류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이런 부분을 개선해주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에피소드(2) 당신의 백팩을 안아주세요.


만원 버스나 만원 지하철에서 누구나 부딪히는 문제입니다. 백팩은 어떻게 무기가 되는가입니다. 옛날 책가방은 책 몇 권 가지고 다니는 것으로 충분해서인지 그 부피로 인해 고통받았던 적이 별로 없습니다.(제 기억에는요) 그런데 요즘은 가방에 넣어 다녀야 할 것이 많아서인지 그 부피가 사람 몸보다 더 커지기도 합니다. 버스와 지하철의 통로는 사람 1-2명이 지나다닐 정도의 크기라 대왕 백팩을 멘 사람 1명만 서 있어도 불편하기 그지 없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백팩이 타인에게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홍보가 부족해서이기도 하고, '가해자'는 피해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백팩은 등 뒤에 메는 가방이기 때문에 등 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가방 주인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백팩의 위험성을 우리는 적극적으로 알려야 합니다. 


거대한 백팩에 피해를 당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백팩을 메고 있는 사람 뒤통수를 갈기고 싶은 충동을 느꼈을 겁니다. 등 뒤에서 일어나는 백팩 사태와는 무관하게 백팩 주인은 평화롭기 그지 없습니다. 그래서 지하철과 버스에 있는 모니터에 광고만 가득 방송할 것이 아니라 이런 공익적인 내용을 보여줘야 합니다. 실제로 백팩을 앞으로 메자는 운동이 있습니다. '백 허그 캠페인'이라고도 불리우는데 백팩을 안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저는 '백팩을 안아주세요'라는 우리 말이 훨씬 듣기 좋습니다. 백팩을 한 번이라도 안고 타 본 사람들은 백팩의 부피를 실감합니다. 등 뒤로 메는 백팩의 부피는 타인만이 실감하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백팩을 안고 타면 당사자는 그 부피를 실감하게 되고, 내가 등 뒤로 멨을 때 그게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백팩을 안아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만원 버스나 지하철이 아니라면 좀 덜 하겠지만 사람으로만 꽉찬 대중교통만큼 기분 나쁘고 불편한 것도 없습니다.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환경에서 누군가의 백팩(보통 여성보다는 남성이 많이 메고, 남성의 키는 여성보다 큰 경우가 대부분이다보니)이 내 얼굴을 짓누른다면 혹은 백팩의 어떤 요소로 인해 다치게 된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하나요. 대중 교통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이용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내가 가진 무엇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백팩의 부피가 클 수록 백팩을 안았을 때의 불편함은 커집니다. 뒤로 멨을 때 타인이 경험할 수 있는 불편함을 스스로가 경험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백팩을 책임지는 행위라 생각합니다. 당신의 백팩을 안아주세요. 당신의 백팩이 무기가 되지 않게 해주세요. 당신의 뒤통수를 갈기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게 하지 말아주세요. 우리는 모두 평화롭게 대중 교통을 이용할 권리가 있습니다.


(1) 공공 호칭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해보자.

(2) 내가 남들과 다르게 부르는 괜찮은 공공 호칭이 있다면 적어보자.

(3) 괴물 백팩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해보자.

(4) 내가 하고 싶은 캠페인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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