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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연 Jul 05. 2018

서른 번의 거절, 무명의 설움

거절당하는 건 무명의 숙명이라 말해보자.

초고를 마무리했지만
진짜 복병은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스타일 북에 들어갈 이미지 협찬이었다. 이미지 협찬이란, 스타일 북에 들어가는 이미지(저작권에 걸리지 않는)를 구하는 작업을 말한다. 옷에서부터 신발, 가방, 액세서리 등 스타일링에 필요한 이미지를 구하기 위해서 내가 생각한 방법은 브랜드 홍보팀에 전화를 걸어 나에게 필요한 옷을 가져와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후 돌려주는 것이다. 심플하고 단순한 작업을 좋아하는 나에게 ‘정말 소모적이고 하기 싫은’작업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전화를 건 브랜드마다 족족 퇴짜를 놓는 것이 아닌가.


백화점에는 다양한 브랜드들이 입점해 있다. 그리고 검색 몇 번만 하면 그 브랜드를 소유한 본사(브랜드 이름과 회사 이름이 같은 경우도 있고 다른 경우도 있다.)의 전화번호를 알 수 있는데 협찬 건은 대부분 홍보팀에서 처리하므로 대표 번호로 전화를 걸어 ‘이러이러한 일로 협찬을 하려고 합니다. 누구랑 통화를 해야 하나요?’라고 물어보면 친절하게 홍보팀으로 전화를 돌려주거나 담당자 이름과 전화번호를 알려준다. 그러면 나는 다시 정성스럽게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나의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것이다. ‘스타일 북을 준비하는 사람인데 책에 들어갈 이미지를 구하고 있으니 이 부분에 대해 협조가 가능하겠소?’라고.


브랜드 협찬의 조건 1순위는
매출로 이어질 수 있느냐다.


왜 안 그렇겠는가? 그렇기에 홍보팀은 시즌 옷 중의 일부를 연예인에게 협찬해줌으로써 매출로 이어질 수 있도록 열을 올린다. 2순위는 패션 잡지다. 방송 쪽 만큼 파급력이 크진 않지만 패션 잡지 역시 스타일링에 필요한 아이템들을 협찬해가는 것으로 매출에 도움을 준다. 그런데 방송도 아니고 잡지도 아니고 책? 내가 책 출간을 준비 중이라니 과반수 이상의 담당자는 그런 소리는 처음 듣는다는 반응들이었다. ‘그 책이 언제 나오는데요?’ ‘아......올해 말쯤이요?’ S/S, F/W 등 패션 업계가 어떤 곳이냐? 2015년에 이미 2016년의 트렌드를 준비하는 곳 아니던가? 그런데 지금 당장도 아니고 다음 달도 아닌, 올해 말? 내가 담당자여도 황당할 법한 소리가 아닌가 싶었다.


그러니 그들이 협찬을 해줄리가 만무하지. 게다 시공간 초월 장치라도 있어서 ‘뿅’하고 스튜디오로 옷을 가져다가 촬영을 한 후 원상태로 고이 돌려준다는 보장도 없고.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는 무명인에게 매출에 도움은 커녕 책이 나왔을 때 이미 트렌드에서 뒤쳐질 수도 있는 아이템들을 빌려준다는 것은 그들이 1초의 망설임없이 거절할 수 있는 당연한 이유였다. 나 역시 그들이 이해가 되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있었다. 공짜로 책에 넣어준다는데? 하지만 그들에게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홍보 효과는 없는 것과도 같았고 최초 컨택한 10군데 브랜드를 넘어 디자인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쉬운대로 해볼 수 있는 차선 브랜드 10군데, 차차선 브랜드 10군데 총 서른 개의 브랜드에 연락을 했다.


스타일 북에는 옷 말고도
다양한 아이템 사진이 필요하다.


그런데 개별 브랜드에는 신발과 가방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고 디자인 역시 한정적이기때문에 신발 브랜드와 가방 브랜드를 따로 컨택해야 했는데 그런 추가적인 컨택과 컨택 후 협찬이 가능해졌을 때 해야 하는 과정 역시 소모적이라 생각했기에 어떻게 하면 한 큐에 가장 적은 노동력으로 내가 원하는 바를 달성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고 그 고민의 결과물이 바로 SPA브랜드였다. 그래 SPA브랜드라면 2군데 정도만 허락을 받아도 내가 원하는 이미지를 충당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타겟은 스웨덴의 H&M, 스페인의 ZARA, 스페인의 MANGO 였다. 어떻게 거절 당?했는지 잘 기억은 안나는데 H&M과 ZARA 협찬은 실패했다. 그래도 평소 내가 좋아했던  MANGO는 허락을 해 주었고 불가능하진 않구나라는 생각에 힘을 내기로 했다.     


초보 저자의 한 줄 생각


책 출간의 길은 깨기 어려워 보이는 게임 한 판을 하나씩 클리어해가는 과정과 닮았다. 게임에는 가끔 부딪히기 싫은 괴물이 나오기도 하지만 한 판을 클리어했을 때의 쾌감은 꽤 짜릿하다.


* 이 매거진의 글은 2013년 출간한 ‘스타일, 인문학을 입다’란 책의 3년간의 출간 과정을 담은 에세이(2015년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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