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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연 May 03. 2016

50가지 사소한 글쓰기 워크북(9) 요리

설거지가 제일 쉬웠어요.

에피소드(9) 요리


나는 요리를 못한다. 뭔가를 잘 하고 못 하고를 논하기 위해서는 몇 번의 시도와 실패 끝에 나온 본인만의 기준이 있어야 할 진대, 그 '몇 번'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나는 요리를 못하는 것 같다. 정확히는 요리에 감이 없다. 운동이나, 운전이나, 요리나 뭔가를 하는데 있어 사람마다 타고난 감이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개인적으로 운동과 운전에는 감이 발달한 반면, 요리에 대한 감은 없는 것 같다.


내가 말하는 요리 감은 요리에 대한 호기심이 아닌 요리를 잘 하는 능력이다. 원재료와 양념을 적절하게 배합하여 맛있게 내놓는 능력이다. 대신 요리에 대한 호기심은 있는 편이라 나중에 내 부엌을 갖는다면 퓨전 요리에 열을 올리지 않을까 싶다. 내 첫번째이자 마지막 요리(그게 과연 요리였나 싶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요리라고 했다간 요리사분들께 맞을 것 같다)는 한 입 먹고 버린 '미숫가루 라면'이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얼굴을 찡그릴 수도 있지만 고등학생 시절 호기심 충만했을 때의 일이니 너그러이 용서를 빌고 싶다. 


그런 호기심은 애기 때부터 발현되곤 했는데 6학년 때까지 살았던 서울집 안방 바닥에 있던 다리미 자국이 그 증거다. 엄마는 잠깐 자리를 비웠고 안방에는 나와 일회용 샴푸(이게 왜 거기 있었는지도 의문) 하나 그리고 다리미가 있었다. 일회용 샴푸를 다리미로 지지면 어떻게 될까. 지금 생각해보면 참 기특?하게도 생각으로 그치지 않고 바로 실행에 옮겼고 그 결과?물은 우리가 이사할 때까지 다리미 모양으로 방바닥에 남아 있었다. 뭐 더 이상 위험한 일이 발생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ㅡㅡㅋㅋㅋ


사실 좀 똑똑하지 않음에서 오는 호기심같기도 하다. 애기 때야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지만 라면에 미숫가루라니. 맛있는 미숫가루와 맛있는 라면의 합은 슈퍼 맛이 나오려나?하는 단순한 생각이었는지, 그 맛은 정말 슈퍼 맛(없음)이긴 했다. 그리고 한 입 먹고 버린 걸로 기억한다. 지금도 많은 요리프로를 보며 우리집 요리사(여동생)가 없을 때 아쉬움을 뒤로하며 스스로 뭔가를 해보려고 하지만 엄마나 여동생의 만렙 요리에 길들여져 있는 입맛을 만족시키기에 나의 요리 실력은 너무 쪼렙이다. 게다 간장, 설탕, 고추장에 따라 달라지는 1큰술의 계량과 익힘의 정도 등 기본적인 '감'이 필요한 요리 블로거들의 설명이 나에겐 너무 어렵다.


이런 요리 쪼렙도 만들어보고 싶은 요리가 있는데 그건 내가 좋아하는 안주이다. 엄마가 해주시는 닭똥집, 동생이 해주는 골뱅이를 먹을 때면 '이 맛은 포기못해'라는 요리 집념이 생기곤 한다. 만들어보고 싶은 요리는 적어도, 만들어보고 싶은(정확히는 만들어서 먹고 싶은) 안주는 많나니, 나중에 독립하게 되면 나를 위한 음식(먹는 것이 건강의 기본이므로) 리스트와 안주 리스트를 작성해 요리해봐야겠다. 


* 글을 쓰다가 궁금해서 안주 레시피 책을 검색해 봤더니 꽤 많이 나왔네. 최근(2016.04)에 [안주의 법칙 - 가사하라 마사히로 저]이라는 책이 나왔고, 우리 나라 요리연구가 및 푸드 스타일리스트가 쓴 [안주 예찬 - 한명숙 저] [안주 노트 - 이진희 저] [탐나는 술안주 - 강지수 저] 가 있는데 음...이 중에 한 권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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