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뛰는 모습을 바라보던 혜진이 입을 열었습니다.
말발굽이 왜 U자 모양인지 아세요?
말의 발톱은 원래 U자 형태로 자라는데, 갈라진 발톱 사이로 흙이나 자갈 같은 이물질이 껴서 불편함을 느낀데요. 그래서 서서히 발톱이 하나로 합쳐지도록 진화했다는 거에요.
그런데 오래 달리다 보면 진화한 U자 형태의 발톱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대요. 갈라지려는 발톱의 대안으로 지금의 U자 형태의 발굽이 생겨나게 된 거래요.
이야기를 마친 혜진의 눈은 불안해보였고, 눈가에 작은 눈물 방울이 맺혔습니다.
목장의 울타리를 수선해 달라는 친구의 요청에 혜진과 함께 제주도를 방문했습니다. 보조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동행을 요청했지만, 사실 보조 같은 건 필요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초에 울타리를 수선해달라는 것도 무엇하나 내려놓지 못하고 점점 야위어가는 나를 잠시라도 곁에 두고 살피려는 친구의 구실이었습니다.
친구는 제 얼굴과 혜진의 얼굴을 번갈아 가며 살핀 뒤에 함께 목장을 돌며 수선이 필요한 위치들을 설명해 주고는 무심하게 제 일을 하러 가버립니다.
작업은 간단합니다. 오래되어 갈라지고 약해진 부분들을 확인하고 틈을 메우고, 사용이 어려워진 부분은 자르고 새로운 나무로 이어주는 것.
친구가 시야에서 멀어지자 나는 혜진을 정면으로 살핍니다.
작업을 시작하고 얼마되지 않아 변덕스러원 제주 하늘은 비를 뿌렸고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누군가를 곁에 둔다는 것. 곁을 내어준다는 것. 말로하면 간단하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것까지 참 어려운 일입니다.
나라는 일인칭의 존재만으로는 가질 수 없는, 그러니 나 이외의 너만이 가질 수 있는 영역. 옆 보더는 조금 깊이. 나와 옆 사이의 어딘가.
한 번 안아봐도 될까.
# 혜진_사랑이 그렇다
그런 건 안 물어봐도 되요. 부끄럽게.
그래도 물어봐줘서 고마워요.
그 사람으로 인해 나의 불안이 비워지고 내가 나로서 다시 채워지는 일. 내가 채워짐으로 인해 그 사람이 비워지고 우리가 다시 채워지는 일. 그날 밤 우리는 서로의 살을 맞대고 오래도록 사랑을 나누었다.
내 손길이 닿을 때마다, 또 내 몸을 만질때 그의 손끝이 떨리는 것이 귀엽고 아련하게 느껴졌다.
사랑은 이렇게 둘이 함께하는 것이다. 그날 밤 꽃샘 추위에 웅크려 잠이 들었던 그 사람. 이 남자도 이렇게 여린 모습이 있구나를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 우진_사랑은 그렇다
나한테 여성적인 매력이 느껴지지 않아?
걸어서 5분 거리에 서로의 집이 있어 저녁을 함께 먹고 초아는 어젯밤 내 방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가 일어나서 내게 물었었다.
조금 천천히 알아가고 싶었고, 소중해서 아끼고 싶다는 내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조금 전 카톡 메세지가 왔다.
’오빠. 나 지방흡입 하려고 아는 병원에 예약을 해뒀어. 한 천만원 정도가 든다고 하네. 오빠도 좋지. 그러고 나면 나를 매일 안고 싶어질 껄!!!‘
마음이 이상합니다. 연애 시작 전에는 너무나 잘 맞아서 아니면 맞게 보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느껴지기 시작한 균열에 덜컵 겁이 납니다. 우린 합쳐진 순간, 종속시킬 무언가에 얽매여야 갈라지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섹스를 하고나면 나는 여자친구에게 종속될 수 있을까.
우리를 종속 시킬 수 있는 것이 섹스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이미 뜯어져버린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섹스가 접착제가 되어버린 몹쓸 사랑.